<나의 돈키호테>를 읽고
16년차 윤리 교사의 사적인 책 읽기. 책 속 한 문장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씁니다.
작가가 되니 겁이 납디다. 아니 원래 겁쟁이라 작가가 됐는지도 모르지. 이제 알겠슈? 작가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책 뒤에 숨는 겁쟁이라니까.
<나의 돈키호테>
<나의 돈키호테> 오디오북이 방금 끝났다. 작가가 된 주인공 장영수의 독백을 담은 에피소드를 끝으로, 주인공들의 길고 길었던 꿈을 향한 행진이 끝났다.
이 소설은 전작 <불편한 편의점>과는 결이 다르다. 문체가 조금 다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읽는 순간 '김호연 작가'가 썼구나라고 단번에 느껴지는 건 <나의 돈키호테>다. 간결하며 위트 있는 문장과, 작가의 삶의 여정을 담은 것 같은 내용 때문이다.
김호연 작가의 삶의 여정은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에 잘 드러난다. 이 책은 저자의 첫 산문집으로, '20년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작가의 생존기'라는 설명 다운 책이다. 저자가 20년 동안 시나리오, 만화 스토리를 거쳐 소설을 쓰기까지 눈곱만큼의 희망과 태산만큼의 실패를 반복하며, 지질이 궁상맞지만 끈질기게 생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속에 담긴 그의 이야기는 분명 안타까운데 웃긴다. 영화나 드라마로 나오면 참 재밌겠다 싶을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로 먹고사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다. 이 부분에서 김호연 작가의 영민함을 본다. 그저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작가가 된다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의 기쁨과 슬픔, 숭고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면 그 숭고한 일, 글쓰기가 하고 싶어진다. 꿈을 향해 전진과 퇴보를 거듭하는 행진에 함께하고 싶어진다.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는 <망원동 브라더스>보다 늦게 출간됐다. 하지만 순서를 바꿔 읽는 걸 추천한다. <망원동 브라더스>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장면들은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의 실존 인물들과 사건에 모티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 읽으면, <망원동 브라더스> 속 인물들이 실제로 망원동 8평 옥탑방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생생함을 느끼게 된다.
<망원동 브라더스> 속 인물들도 상당히 지질하다. 하지만 유쾌하다. 10대 자퇴생, 20대 고시생, 30대 백수 작가, 40대 기러기 아빠, 50대 이혼남, 60대 오지랖 할아버지까지. 각 세대의 고민을 담은 것 같은 캐릭터 설정과 다르게, 큰 의미 부여 없이 가볍게 흘러간다. 하지만 흘러가는 대로 두었더니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인물들을 보노라면, 우리의 삶 또한 대단한 의미를 찾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작가의 위로가 전해진다. 남들에게 말하긴 궁상맞아 보이지만 저마다의 꿈을 잃지 않고 일상을 살아내는 모습이야말로, 우리네 모습이 아닐까.
신작 <나의 돈키호테>에도 실패한 듯 실패하지 않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김호연 작가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들도 등장한다. 담백하고 간결하며 위트 있는 문체도 여전하다. 이 책은 오디오북으로 틈틈이 흘려 들었지만, 할 얘기가 많다. 그래서 활자로 다시 읽고 서평을 써보려 한다. (지금 이 글이 서평이라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생각보다 나는 더 TMI다.) 물론 할 얘기가 많기에 쓸 엄두가 나지 않아 미루고 미루다, 그의 다음 신작이 나올 때쯤 세상의 빛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쓴다'라는 그의 책을 기억하며, 그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글쓰기의 끈을 놓지 않은 인물들'을 떠올리며, '전진과 퇴보를 멈추지 않고 꿈을 향한 행진을 지속한 인물들'을 떠올리며 결국 써낼 것이다.
ps. 김호연 작가는 <나의 돈키호테> 속 장영수의 입을 통해 '작가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책 뒤에 숨는 겁쟁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김호연 작가는 그의 삶과 글을 통해 이미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