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혜정 Sep 01. 2024

니체, 감사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나로 태어나고 싶다!

스물셋.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나이다. 



부족한 환경 탓에 교사가 되어야만 인생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꼰대 같지만 나 때는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였으니까. 중고등학생 시절 방황의 길을 걷다 대입을 앞두고 부랴부랴 책상 앞에 앉은 만년 꼴찌인 내가, 대학에 가서도 정신 못 차리고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학점이 바닥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방을 노리는 고시밖에 없었다.



이렇게 적고 보면 망나니가 정신 차리고 새사람이 됐을 것 같지만, 소름 끼치는 반전은 영화에서나 가능한가 보다. 대한민국 청년의 대다수가 공무원을 꿈꾸던 시절, 나 역시 고시생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등에 업고 정신 못 차리는 3년을 보냈다. 원인은 연애. (네, 맞습니다. 수많은 부모님들께서 공부에 방해된다며 말리는 그 연애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쿵짝이 잘 맞아 밥 축내는 백수 시절을 보냈다. 물론 고시생으로서 공부를 안 할 순 없으니 틈틈이 전공 서적을 읽기는 했다. 그런데 그 전공 서적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내 전공을 듣는다면 다들 아~! 소리를 할 것이다. 



내 전공은 도덕윤리다. 철학 서적이 곧 수험서라는 뜻이다. 공자 왈, 맹자 왈, 소크라테스 어쩌고 그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고시 준비하는 척(?)하느라 조금씩 읽었던 동양 철학, 서양 철학, 각종 사회사상들이 나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켰다. (대학 때는 뭐했냐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기억이 안나고요...그러니 학점이 바닥이겠죠.)



나는 그저 시험공부를 한 것뿐인데, 여러 사상가들이 펼쳐 놓은 사색의 골짜기로 빠져들었고 자연스럽게 존재론적 고민을 하게 됐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회는 왜 이 모양인가. 윤리교육과 동기와 만날 때면 카페건 술자리건 철학 이야기로 티키타카하는 지적 허영에 빠지기도 했다. 그만큼 철학이 재밌었고, 어느새 고시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배움을 위한 공부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정신이 온전해질 즈음 니체가 자꾸 꿈에 나타났다. (아마도 책상 앞에 써놓은 니체의 경구 때문이겠지만) 니체는 꿈에 나타날 때마다 물었다. 



‘다시 태어나도 나이길 바라는가?’



곱게 기른 콧수염에 날렵한 콧날을 지닌 니체는, 언제나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모습을 돌아보다, 어버버! 하면서 깼다. 가끔은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인강비, 점심 값, 술 값을 벌고 연애도 하며 평화(?)롭게 도서관을 오갔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후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니체의 질문을 되뇌었다. 다시 태어나도 나이길 바라는 삶.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을까? 그래, 살 수 있어! 아니야, 아니야. 그런 삶을 살 거야!



다시 태어나도,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나이기를 바라는 삶. 그런 삶을 살겠다고 선택한 해, 미친 고시생이 되어 3개월을 보냈고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운이 좋았다. 마침 시험 방식이 대대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말할 수 있다. 준비된 자만이 운을 잡을 수 있다는 걸.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