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X광훈
뭐 이리 잘하나 싶다. 신진호, 허용준, 임상협 등이 현재 포항의 상승세를 끌고 있다지만 저번 시즌부터 신광훈은 마치 다니엘 알베스 같았다.
오늘 경기의 MOM은 백승호였다. 중원에서 간결한 패스와 뛰어난 기술로 계속 답답해져 가는 전북의 공격 전개를 꾸역꾸역 풀어냈다. 정말 많이 뛰었다.
경기 자체의 템포가 전반전에는 전북 입장에서는 체력 안배를 위한 운영이었고 포항 입장에서는 전북의 빈틈을 노리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내 할 것 하면서 뒤에 티브이를 켜놓고 무난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반 이후 실점 장면을 놓치고 나서 경기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전북의 외국인 공격수 구스타보가 뇌진탕 증세가 있다는 캐스터의 말이 끝나자마자 골이 들어갔다. 굴절되어서 뭐 어쩔 수 없었다. 재계약을 앞둔 송범근의 버프조차 먹히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송범근은 보내는 게 옳다고 본다. 다음 골키퍼가 충분히 그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영선과 구자룡이 꽤 선방을 했다고 본다. 2점을 실점했지만 포항의 공격 전개가 워낙 좋았다. 그 기세를 막기 위해서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영리함이 더욱 필요했는데 이 부분에서 맹성웅의 부족함이 있지 않았나 싶다. 윤영선과 구자룡은 허용준의 꼬장꼬장한 성격과 가공할 점프력을 잘 방어했다.
이후 김문환과 김진수의 좌우 풀백은 김상식 감독의 비책인 지 몰라도 양 측면 공격이 전개될 때 중앙 공격수 위치까지 올라와서 공격을 지원한다. 이런 극단적인 공격 전략이 김문환과 김진수의 문전 침투 능력을 극대화한 것 같다. 이번 시즌 전북은 풀백의 경기력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근데 이 포항의 풀백..
신광훈과 완델손. 완델손이야 포항의 풀백 공백을 메우기 위한 궁여지책이라 하더라도 신광훈은 정말 오늘 한국 축구 풀백의 정수를 본 것 같았다.
케이리그 풀백의 필요조건을 모두 갖춘 신광훈의 플레이를 보았다.
1. 적극성
케이리그 불세출의 풀백 김태환, 김진수, 안현범 등등 이 선수들은 다른 표현으로 대표적인 싸움닭이다. 여기에 신광훈도 빠지지 않는다. 안광을 희번덕대며 주심에게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모두 바로우의 주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유니폼을 잡아끌거나 바디첵을 하며 결코 쉬운 틈을 내주지 않는 적극성. 오늘 밤 최철순이 많이 그리웠다. 여차하면 입에 쌍욕을 물고 싸워들 적극성이 케이리그에서는 꼭 필요한 유형의 선수다. 이번 시즌 전북의 부재에 가까운 존재다. 다 착하다.
2. 기술
신광훈이 투박한 플레이가 주목을 받아서 그렇지 경기 내내 노련함으로 치고 빠질 때를 잘 알아 경기 흐름을 맺고 끊는 역할의 시발점이 되었다. 신진호로부터 공격과 수비가 시작된 지점은 오로지 중앙이다. 하지만 전북 공격의 시작은 신광훈의 인터셉트 혹은 첫 패스부터였다. 보면 볼수 록 경기 완급 조절을 잘한다. 이번 시즌은 나만의 축신 신광훈의 커리어 하이 시즌인 것 같다.
프로의 경기였다. 선두권 경기였다. 전북은 혹독한 ACL 일정을 치르고 겨우 돌아와 지친 기색이 뚜렷해 보였다. 그래서 백승호가 MOM으로 뽑혔을지도 모른다. 정말 고생 많았다. 우승을 다투는 팀에서 이번 경기는 꼭 포항을 잡아야 우승의 향방을 혼돈 속으로 더 빠져들게 할 수 있었다. 2:2로 끝난 이상 우승은 바라지 않는다. 포항, 제주가 우승권에 올라오는 것도 리그의 재미를 더할 수 있다. 그래서 포항이 득점할 때 전북 팬인 나도 환호했다. 다만 허용준이 반칙성 플레이를 할 때마다 입을 삐죽 내밀고 중얼거리는 모습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쟤는 왜 저래 싶었는데 공격수라면 그런 꼬장꼬장한 성격은 경기중에서는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 동호회라면 멱살을 잡아도 두 번은 잡았을 듯.
암튼 신광훈은 내가 본 올시즌 케이리그 최고의 우측 풀백이다. 포항이 우승한다면 그 숨은 공로는 신광훈이 홀로 독차지하는 게 마땅하고 본다. 현 세태의 누군가 비상식적으로 당선되기 위해 어느 세력을 비정상적으로 이용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