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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살아가기
by 뜬구름 May 27. 2018

캐나다 이민생활 <38>

만족, 행복의 순간들 - 달콤한 브레이크 수요일 오후

주중 브레이크를 수요일로 정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주의 중간이고 둘째는 이날이 비교적 가게가 조용하 다는 것이다. 보통 월요일 화요일에 빨랫감을 가져오고 주말 인접해서 모임에 입고 갈 옷들을 찾아가는 패턴이다.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까지는 좀 바쁜 편이다.  세탁물 픽업도 하고 집에 쉬면서 이것저것 집안 청소나 뒤뜰 정리하면서 더럽혀진  옷가지들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여긴 남자나 여자나 집안일을 꼭 정해놓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수요일 브레이크라 해서 이날을 통째로 날리는 건 아니고 오전에 할 일을 겁나게 해치우고 와이프한테 인계한 뒤 가게를 빠져나간다. 아내는 주로 셔츠 프레스를 담당하는데 이 일 외는 남의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서 내 몫의 일을 하고 바통을 넘겨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아내는 약간 주인과 종업원의 중간치쯤의 마인드랄까. 가게일에 대해 깊이 알려고 하지 않고 또 넓게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걸 봐서 종업원급으로 볼 수 있는데 다만 손님이 없으면 걱정을 한다는 점에서는 종업원과 확연히 구별은 된다.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 가게가 스팀으로 달아오를 때쯤 가게문을 나서면 천당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옆집 스타벅스 야외 파라솔 밑을 살짝스쳐지나갈때 얼굴에 스치는 시원한 공기의 움직임마저 일종의 감동을 준다. 그만큼 하절기의 세탁소는 거의 찜통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오래된 건물이라서 에어컨이 없다.


 뭘 할까. 주로 하는 게 정해져 있지만 조금 여유를 부려본다. 이민자들이 공통으로 많이 하는 게 골프다. 특히 한인들은 더 좋아한다. 재미도 있고 운동도 되고 오랜만에 우리말로 수다도 떨고 시원한 맥주도 곁들일 수 있으니 한꺼번에 여러 개를  할 수 있으서 많이 선호하는 편이다.


일단 작은 내기를 건다. 그냥 맨입에 골프를 하는 것보다 조금 걸려있으면 한결 신중해지고 재미가 배가 된다. 주로 밥값 내기다. 두당 20불짜리 식사니 진 사람이 40불을 내는 셈이다. 별로 크진 않지만 눈에 총기를 잃지 않을 정도는 된다. 게다가 승부는 묘한 자존심마저 가미되기 때문에 더 불꽃이 튄다. 간혹 이기고 지고에 대범한 사람이 있는데 이런 유의 인간은 좀 경원시된다.


골프장에는 우리말이 많이 들린다. 인구분포도는 적은데 골프장에서만은 밀도가 높다. 타민족에 비해 체면이나 눈치가 있어서 한결 편하다. 플레이도 빠르고 앞뒤 간격 유지하고 너무 지체되면 패스도 시켜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골프에 맛을 들인 중국인들은 완전 안하무인이다. 뒷사람 염두에 두지 않고 늑장 플레이하고 간혹 걔네들끼리 싸우기도 한다. 워낙 큰 내기를 하니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피 터지는 18홀이 끝나면 대망의 19홀이 기다린다. 늘 가는 삼겹살집이 있다. 우선 시원한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고기를 구우면서 소맥을 돌린다. 낙원이 따로 없다. 이때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구별된다. 일단 승자는 시끄럽다. 패자는 삼겹살이 익기 도전에 그걸 안주로 몇 잔 연거부 들이킨다. 그리고 조용히 경청한다. 그리고 승자는 무한 질주다. 술이며 이빨이며. 이 꼴을 안 보기 위해서라도 이빨을 깨물고 현장에서 열심히 쳐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분위기가 농익어갈 때쯤 승자도 패자도 다 시끄럽다. 이젠 모두가 그 세계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담주 수요일을 목놓아 기다리면서 오늘을 과거의 한 페이지로 돌려놓는다.


<사진 설명> 지난겨울 피한을 겸해 동네 사람들하고 LA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그 인근 골프장에서 한 주일을 보냈다. 그 가운데 한 골프장인데 척박한 땅에 골프장만 푸른 잔디로 덮여있어 좀 이색적이었다. 아내가 현재 퍼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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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쿠버 이민 18년차입니다. 초기 좌충우돌시기는 지났고 이젠 숨쉴만 합니다. 세탁소하면서 입에 풀칠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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