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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살아가기
by 뜬구름 May 06. 2018

 캐나다 이민생활 <37>

만족, 행복의 순간들-점심

땀 흘린 뒤의 점심은 누가 뭐래도 기다려지는 보약 같은 거다. 세탁소에서의 점심 또한 하루의 반을 찍

는 중요한 이정표로서 톡톡히 역할을 한다.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가져온 옷을 빨고 다림질하고 포장하는 일련의 작업을 거치는 동안 인체의 시계는 어김없이 가고 그걸 억지로 참는 것도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최대 고비는 10시 전후. 손이 살살 떨리고 말소리가 잦아들고 손님한테 날리는 웃음기도 가신다. 뭘 먹어야 하는데 마땅치가 않다. 또 지금 먹으면 맛있는 점심에 방해가 된다. 최대한 참을 만큼 참았다가 첫술을 뜨는 만족감을 느껴야 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전제가 따른다. 우리식 도시락을 펼쳐놓기 위해서는 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은 일단 퇴근시켜야 한다. 그들을 한식당에 초대한 적이 있는데 김치에 대해서 약간 이질감을 느끼는 걸 확인하고 그 뒤로는 그들 앞에서 김치를 먹지 않는다. 보통 오후 한두 시면 직원들의 일은 끝난다. 늦어도 두시는 넘기지 않게 일을 조절해서 준다. 그 시간을 넘기면 희한하게 더 이상 배가 고프지가 않게 된다. 그날은 점심을 남긴다. 아마 센스 고장이 아닐까 싶다.


직원이 간 뒤의 세탁소는 어지럽다. 이걸 다 정리하고 밥 먹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대충 옆으로 치우고 도시락을 펼친다. 이때 상당히 중요한 동작이 은연중에 일어난다.


식탁이 없는 세탁소 내에서는 도시락을 펼치면 그 자리가 바로 식당이다. 주로 우린 프레 스판을 이용한다. 보일러를 끄도 온기가 남아있고 의자 두 개를 펼칠 여유공간이 있고 식사 중 한국 텔레비전 쇼를 볼 수 있는 스마트폰 거치대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와이프랑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점심을 위해서는 첫째 도시락을 펼치고 의자를 챙기고 그다음에 물을 가져온다. 이 세 가지 일 가운데 누가 첫 번째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날의 점심 밥맛이 달라진다. 가령 내가 세 가지 중 첫 번째 동작을 하고 와이프가 두 번째 하면 마지막 세 번째도 내 몫이고 그러면 두 번째 행위자가 자동적으로 의자 두 개 중 안쪽에 앉게 된다. 점심시간에 바깥 의자와 안은 천양지차다.


손님이 오면 안쪽 사람은 나갈 수가 없다. 결국 바깥사람이 손님을 응대하게 된다. 이런 일이 점심 중 여러 번 일어난다. 하필 점심시간에 손님이 몰려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참 조용하다가도 우리가 도시락을 펼치는 순간 손님들이 그걸  눈치라도 챈 듯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럼 자동으로 바깥사람이 식사를 중단하면서 입안의 음식을 급하게 씹어 삼키고 물을 한 모금한 뒤 튀어나간다.


이 순간에도 안쪽의 사람은 느긋하게 tv를 보면서 천천히 음식을 씹는다. 이런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점심 먹자고 하는 순간부터 심각한 눈치가 불꽃을 튄다. 누가 먼저 자리를 까느냐가 관건이다. 그는 그날 불행의 아이콘이 된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좀스런 눈치이긴 하지만 머리 쓸 일이 없는 이민생활에서 이거라도 굴리면 쉬 식지는 않을 것 같아서 와이프랑 아무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이미지 : 구글에서 .저렇게 화려한 도시락은 아니지만 두껑을 열면  항상 꿀이 흐를것 같은 착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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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쿠버 이민 18년차입니다. 초기 좌충우돌시기는 지났고 이젠 숨쉴만 합니다. 세탁소하면서 입에 풀칠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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