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w의 기억
그녀와의 첫 만남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탁소를 인수한 지 얼마 안 되던 시기였을 것이다. 60줄로 추정되는 약간 할머니풍으로 기억한다. 서양사람들의 나이는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을 수도 있고 오히려 그 반대 일수도 있다.
그녀는 항상 돋보이는 칼라의 재킷 상의에 검은 바지 그리고 목에는 스카프를 두른다. 세탁소에 드나 드는 복장으로 보기에는 좀 과해 보였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옷차림에 비슷한 연륜으로 보인다. 다만 그녀의 결혼한 두 딸과 손녀를 감안하면 대충 나이가 짐작된다. 그리고 그녀는 꼽추다. 그것 때문에 키나 몸무게가 평균 이하다. 그러나 캐나다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녀도 정상인과 결혼했고 자녀들도 전혀 장애가 없는 보통 사람들이다. 오히려 미모는 한수 위다.
그녀는 자주 오는 손님은 아니지만 꾸준히 한 달에 서너 번은 왔다. 주로 자신의 검은 바지랑 남편의 면바지를 가져왔다. 그 외 세탁물이 없는 걸 감안하면 같이 사는 다른 식구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의 특이점은 세탁물을 맡기고 항상 비슷한 질문을 한다 것. 애들은 잘커냐, 학교는 , 취직은, 등등 우리 애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면 "응 대학 들어갔고 졸업했고 어디 취직했다"라고 가볍게 말한다. 이때 좀 과한 리엑션이 나온다. 대학 들어간 게 우리 애만 해당되는 것도 아님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팔을 뒤로 젖히면서 반응을 한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면 더 놀랜다. 취직했다고 하면 까무러칠 지경까지 간다. 이런 질문과 대답, 반응이 근 10여 년에 걸쳐 진행됐다. 놀라운 사실은 항상 똑같은 질문을 처음처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세탁소 주인과 손님 간에 특별한 화제가 없기도 하고 고교 졸업 뒤 곧바로 알바나 취직을 한 뒤 몇 년 뒤 대학을 가거나 모은 돈으로 해외여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힌 뒤 미래를 설계하는 현지애들과의 다른 점이 그녀를 놀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변화가 온건 작년 2018년 여름쯤일까. 자신의 바지를 찾아가면서 몇 번씩 비닐백을 걷어올려 확인하는 것이었다. 어른 바지로는 너무 작기 때문에 눈에 확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했다. 혹시 작업하면서 바뀐 게 아닐까 하는 우려의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래도 갸우뚱하면서 일단 가져가고 별 뒤탈이 없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반복됐다.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 현지인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큰 명절 턱이 이기 때문에 집 대청소와 함께 비워뒀던 방의 커튼이나 침대 카버 등을 빨래하기도 한다. 이때 그녀도 커튼 두 개를 가져왔었다. 특이한 건 세로가 짧고 가로가 길다는 것. 보통 세로가 3미터 가로가 2미터 정도가 일반적인데 이건 반대였다. 어쨌든 세탁을 했고 그녀가 찾아갔다.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그녀의 남편이 전화를 했다."나의 와이프 말로는 방금 찾아간 커튼이 우리 것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두 가지가 의아했다. 와이프가 아니면 같이 사는 남편도 당연히 아니 여야 하고, 아니면 아니지 아닌 것 같다는 뭘까.
이럴 때 유일한 답변은 "가져오라. 그리고 기다려라. 만일 다른 손님과 바뀠으면 일주일 내로 리턴될 것이다."
그리고 3일이 지났나. 그녀가 두 딸과 손녀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큰딸이 대표로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이것저것 말하는데 확신이 없이 남의 말처럼 했다. 이때 옆에 우두커니 있던 그녀의 표정을 슬쩍 봤다. 불안해 보이고 눈동자가 너무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해결책 없이 원점을 돌아서 다시 기다려라 그러면 돌아올 수도 있다는 나의 설명을 듣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일단 사용하고 다시 가져오겠다면서 마무리됐다.
한 달 보름이 지났지만 그녀는 물론 그녀의 커튼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마 자기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12월에 우리가 커튼을 세탁한 건 손에 꼽을 정도여서 다 기억하고 또 그 커튼은 아주 특이한 사이즈라서 바뀔 수가 없음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을 그녀는 물론 그녀의 가족은 긴가민가하면서 어머니 혹은 아내의 기억을 나쁜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믿음 아니였을까.
안타까운 일이다. 가까운 시일 내로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