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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꿀권리 Dec 10. 2020

위로의 말 내맘대로 하지 않기

하마터면 듣기 싫은 말로 위로 할 뻔 했어 

 

3년이 지나도록 연락하지 않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다른 친구 전화 번호를 물어보는데 이 친구는 알고 있겠다 싶어 연락한 것이다. 

거리상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간간이 소식은 묻곤 했다. 대학 때 가깝게 지낸 친구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너무 밝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이들 힘들어 하고 특히 힘들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여지없이 나의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런 저런 간단한 안부를 묻다가,

“**야! 나 이혼했어. 몰랐지?

응, 그래, 실은 언뜻 듣긴 했는데 전해주는 친구가 정확한 건 아니라고 해서…


친구는 이혼하고 가장 위로가 됐던 말이 축하한다! 라고 했다. 

자신을 잘 아는 두 명 한테 들었는데 가장 위로가 되고 자신의 선택이 잘 한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뜻 밖이었다. 그때 친구한테 전화하지 못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 어색하게 내 입장에서 아무 말이나 할 것 같았다. 

친구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하고 나는 위로했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친구는 독일로 신학대학 유학 온 청년을 친언니로부터 소개받았고, (언니는 독일에서 목사님 사모) 한번 보고 결혼했다. 모태 신앙이긴 하지만 친구 결혼을 보며 신앙의 힘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그 친구는 나에게 전도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편하다.

언젠가 만났을 때 남편이 너무 청교도적인 삶을 산다. 

친구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고 자신도 그렇게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그런 삶을 강요하는 것은 참기 힘들다고 했다. 

강요해서 될 일 도 아니고 어느 정도 인정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부모가 사는 삶의 방식을 강요할 수 없지 않느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 덕분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편안하게 했다. 

친구가 말미에 너랑 오래 알고 지냈지만 오늘이 가장 편했고 이제 너를 더 잘 알게 됐다고 말했다. 

친구의 말이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이혼 한 사람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할 수도 있구나 아니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일 수 있구나. 

나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말이다.

위로하고 배려한다고 한 말들이 듣는 사람을 위해 한 거 같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있구나.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 입장에서 한다고 한 말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 것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상대방에 대해 공감이 되어야 위로의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제대로 공감할 줄 아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당신이 옳다』에서 정혜신은 “공감은 내 생각, 내 마음도 있지만 상대의 생각과 마음도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된다. 상대방이 깊숙이 있는 자기 마음을 꺼내기 전엔 그의 생각과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공감의 바탕이다.”라고 했다. 

나는 상대의 상황만을 보면서 상대의 마음까지 안다고 생각하고 어쩌면 내 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위로라고 

한 걸 아닐까? 상대방이 깊숙이 있는 자기마음을 꺼낼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도 좋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상대방이 깊숙이 있는 자기 마음을 꺼내기 전에 위로 한답시고 상대방이 듣기에 충고나 조언, 판단, 평가를 해 상대를 더 불편하게 한적은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수능을 본 아이들이 시험을 잘 못 봤다고 연락이 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복잡하다.

“괜찮아, 열심히 했잖아” 이건 혹시 평가?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이건 더 위험한 조언

“다시 한번 도전해봐”이건 말도 안 되는 판단

“대학보다는 네가 하고 싶은 과를 선택해 야지” 이건 심각한 충고다. 

이건 위로할 문제가 아닌가? 심지어 공감도 못하면서. 


어제도 한 아이에게 시험 본 결과를 긴 문자로 받았다. 평소 실력대로 봤다고 했다. 

그러나 만족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고마워!  힘들고 기분 그럴 텐데 이렇게 자세히 연락 주고”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아직 남은 게 있으니 후회 없게 최선을 다하고 생각은 나중에 헐려고요.”

이렇게 문자가 왔다. 예상 등급으로는 자신이 원하던 대학은 논술 고사도 볼 수 없다. 

많이 낮춰서 논술고사를 봐야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의연하다. 

나는 아이의 문자를 받고 맘이 쿵 내려 앉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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