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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일-처참히 무시당했지만, 결국엔.

by 휴먼

대학원에 온 지도 어언 4개월 차.

겨우 4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벌써 뭔가가 변해버린 듯하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눈에 힘이 들어가는 날이 많아졌다.

다양한 이유로 힘을 줘야만 했다.

서러움이 밀려올 땐 어떻게 서든 끌어 오르는 눈물을 억누르느라 힘을 줘야만 했고

저 사람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살인 충동이 들 때면 그 충동을 억누르는 대신 살기가 눈에 머물고 가기도 했다.

때때로 공황이 올 것 같은 때는 각성된 정신과 숨결을 진정시키지 못해 눈만 부릅뜨고 헉헉거리기 바빴다.

이러다가 눈 주위 근육을 너무 많이 써서 눈주름이 가장 먼저 생기지 않을까.

새로 바뀐 사수. 이번에는 2명 정도가 붙었다.

이 지옥에 들어온 동안 3번 정도 사수가 바뀌었었는데

어떻게 보면 이 놈들이 제일 악질이다.

그동안은 내가 못하면 갈구면서 시키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무시하고 나를 배제하는 식이다. 왕따가 따로 없다.

분명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도 왜 나한테만 전달되는 사안이 없을까.

내가 못해서 그런 거겠지. 내가 못하니까 알 필요도 없다는 거겠지.

co-work중인 타 랩의 사람이 나까지 참조해서 메일을 보냈는데

왜 나는 홀로 그 사람한테 회신을 보낼 준비를 하다가

이미 회신이 왔었다는 얘기를 나중에서야 그분한테 전해 들어야만 했을까.

왜 나는 참조를 안 했을까.

왜 나와는 대화를 하지 않을까.

왜 나는 그 사수들에게 철저히 배제당해야만 하는걸까.


최근엔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정체기를 지냈었다.

내 프로덕트가 왜 바라는 대로 나오지 않는지 고민하며 여러 시도를 했지만 잘 안 됐다.

그래서 계속 가설을 생각해 냈다.

이런 걸 수도 있고, 저런 걸 수도 있겠다고.

하나씩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하려 하니

돌아오는 사수들의 답은 "안될 것 같다."였다.

그것도 도움이 되는 의견은 전혀 없이

그냥 안될 것 같다고. 그거 아닌 것 같다고.


나는 "안될 것 같다."는 의견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필요했던 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한 이유와

이건 어떻겠냐는 식의 조언이었는데

그런 것까지 줄 만큼 신경 쓰기엔 귀찮았던 거겠지.


틀린 가설이라면 틀렸다는 사실이라도 입증하고 싶었다.

공정의 프로덕트뿐 아니라 과정도 분석해보고 싶어서

내 신분으로는 쓰지 못하는 기기의 분석을 부탁드리니

돌아오는 사수로부터의 답은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라는 말이었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할 때의 공백, 그리고 그 무시하는 듯한 눈빛이 내 신경을 찢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 기기를 쓰게 해달라고 교수님께 부탁했을 때

거절하는 대신 분석을 대신해 줄 사람으로 붙여준 사람이 그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에게도 거절을 당한다면 나는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는가.


내 가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순히 "안될 것 같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언도 해주지 않은 채

그 사람은 내 가설이 틀렸다고 입증하는 것조차 거절했다.



내 연구는 철저히 부정당하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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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석을 거절당한 저녁

내 프로젝트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선배의 도움을 받아 분석해본 결과,


결론은

내 가설이 맞았다는 거다.


결과가 내 가설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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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전 금요일,

모두가 각자 집으로, 또는 고향으로 향했을 밤 11시.

그때 나는

오피스에서 홀로

처참히 무시당해온 내 가설의 데이터를 정리하며

조용히, 아주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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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결국엔 내가 맞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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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맞았던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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