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막바지가 되어간다.
25년도를 되돌아봤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듯하다.
나는 그저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람이 성장한다는 증거다.
난 그렇게 믿었다.
글을 쓸 때마다
형체가 없던 나의 생각과 감정들이
형체를 갖추게 되고
눈에 보이면서
내 생각은 하나의 성장 기록으로서 가시화된다.
하지만 요즘엔 글 생각이 별로 안 든다.
생각도 별로 안 들고
실제로 잘 안 써진다.
브런치에서 작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내 글을 보는 그대들에게 이런 초라한 모습을 보여줘도 되나 싶다.
글을 가장 많이 썼을 때는 아마 내가 스물 하나였을 때다.
그때는 매일매일 생각일지를 썼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나를 스쳐가는 인연 하나하나가 짙게 자국을 남기고 가서
매일 성장했고,
성숙했고,
그래서 기록할 게 많았다.
그때의 나는 무럭무럭 자라는 다육식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매일을 집-연구실을 반복하고,
매번 하는 일이 똑같다. 달라지는 게 없다.
만나는 사람도 똑같다.
특히 포항이라는 지역이 사람을 더 고립되게 만든다.
여기서의 나의 네트워크는 연구실 사람들이 전부다.
어느새 연구실이 내 세계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나는 성장을 멈춰버린 듯하다.
어느새 연구에 대한 열정도 식어버렸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불가능하다고 했던 연구를
가능하게 만들라며 어떤 연구를 맡게 되고 나서부터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겨우 견뎌내게 되었다.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나는 생각을 안 하게 되었다.
깊은 사고를 하지 않게 되었다.
파고들지 않게 되었다.
해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근본적인 의미부터 알 수 없는 일에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사회를 살아가는 게 이런 걸 견디는 일일 텐데
나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그럴 텐데.
나 말고도, 분명 모든 사람들이 그럴 텐데도.
그럼에도 멈춘 성장을 다시 어떻게든 이어가 보려고 아등바등한다.
다행히 아등바등할 기력은 남아있다.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해야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1년 후의 내가 돌이켜 봤을 때
그때의 내가 반드시 무언가를 쥐고 있을 수 있도록.
20대의 하루하루는 귀하다.
20대의 2년은 더욱 그렇다.
나는 25살의 내가 기억나지 않는다.
연구실에서 알 수 없는 논문을 틀어놓고
자살하고 싶다고 읊조리던 모습 정도만 기억난다.
다른 건 모르겠다.
아쉽게도 내 1년은 윗 문장 하나로 표현될 수 있었다.
성장하고 싶다.
미치도록 성장하고 싶다.
내 인생의 활기를 다시 찾고 싶다.
나는 점점 공허해지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묻는다.
어떻게 해야 나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
.
.
그 답을 찾기 전까진
나는 글을 못 쓸 듯하다.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남겨봤자 의미는 없을테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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