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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형 인간의 과거(4) - 나의 첫사랑에게

2019년엔 정말 죽고 싶다 했던 그 아이가, 정말로 죽어버렸다.

by 휴먼

토요일에도 그 사람을 봤다.


내가 인스타툰을 어떻게 그리는지 궁금하다고 하길래

내가 사용하는 툴은 뭐고 작업은 어떻게 하는지 대강 보여주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그 사람은 나를 그렸다.

눈을 감은 채로도 그렸고, 눈을 뜬 채로도 그렸다.

그 사람의 그림은 유튜버 ‘이연’과 닮아 있었다.

실제로도 이연 채널을 구독해 자주 봤던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토요일에는 그 사람이 다음에도 만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조금 안심했다. 드디어 나한테 관심이 사라졌나 해서.

그런데 아니었다. 일요일 오전에 또 그 사람한테 카톡이 왔다.

월요일 오후에 자기 대학교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자는 내용이었다.


처음으로 순도 100%의 거짓말이 나왔다.

‘나 월요일에 일 있어서 안 돼..’

너무 자주 만났다. 이미 부담스러움이 선을 넘었다.

더는 다가오게 해서는 안된다.

그런 마음에서 튀어나온 반사적인 선긋기였다.


시험기간이다. 공부를 해야 한다.

수석을 해야 한다. 전액 장학금을 타야 한다.

엄마한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아빠한테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

핸드폰을 덮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더 이상 그 사람이 날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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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wee클래스로 강제소환되었다.

강제 소환된 데에는 내 불찰이 크다.

그때의 나에게는 말 말고도 결핍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몇 더 있었는데

그중 한 명에게 충동적으로 자해한 걸 보여줬다가 그게 wee클래스 상담사의 귀로 들어간 거다.

그렇게 상담실로 강제 소환되고 처음으로 개인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wee클래스에서의 개인 상담은 솔직히 그리 효과 있진 않았다.

그냥 상담사님께 어제는 뭘 했는지 오늘은 뭘 했는지 잡담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나의 가정사나 결핍에 대한 얘기도 했지만 워낙 많이 들여다본 상처라 이걸 다시 떠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상담사님이 추천해주시는 책들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마음 챙김에 관한 책들이었다.

자해를 끊고 나를 돌보기 위해 마음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명상도 하고 감사 일기도 쓰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따위의 책을 읽으며 인생에 대한 성찰도 했다.

덕분에 이때부터 독서에 취미가 생겼다.


공부가 힘든 건 여전했고 자해 충동도 여전했다.

하지만 내 팔 대신 내 팔을 본뜬 낙서에 칼자국을 내며 자해 충동을 억눌렀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버티니 점점 자해 충동이 사그라들었다.

정말로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중간고사 때 망친 성적을 기말고사 때 복구할 수 있었다.

성적이 조금 올라 더 자신감이 생겼다.

나름 희망적이었다. 그래도 내가 살아갈 수는 있을 것 같아서.


조금은 늪에서 빠져나온 2018년의 막바지.

2018년 12월 31일, 암울했던 그 해의 마지막 날은 말과 함께 보냈다.

‘매 해의 마지막 날은 말과 함께 보낸다.’ 이건 2016년 때부터 이어 온 우리 둘만의 약속이었다.

2016년에는 함께 롯데월드에 갔고

2017년에는 같이 인천 동화마을과 월미도에 갔다.

2018년, 그 해의 마지막 날엔 말과 하남 스타필드에 갔다.

스포츠 몬스터에서 어트랙션을 즐기고

아쿠아 필드에서 찜질로 피로를 풀었다.

야외 풋스파에서 뜨끈함을 머금은 증기 사이로 바라본 야경도 참 예뻤다. 최고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 말은 내게 말했다.

“2019년에는 정말로 죽고 싶어.”

이제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언제나 들었던 익숙한 얘기.

“1년만 더 참자. 입시만 버티면 너도 나도 행복해질 거야.”

나는 여느 때처럼 적당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말을 달랬다.


마음속에 늘 그리던 그림이 있었다.

성인이 된 우리가 우리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것이다.

너는 작곡과 지망이니 아지트에서 작곡을 하고

나는 네가 만든 노래를 들으며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거다.

아지트에는 피아노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책상을 두자.

느낌 있게 어두운 조명도 있었으면 좋겠다. 완전 좋은데?

우리가 함께라면 정말 낭만 있는 대학생활을 보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우리가 함께라면.

.

.

.


그랬던 네가.

2019년엔 정말 죽고 싶다 했던 네가

정말로 죽어버렸다.

2019년의 4월이었다.


나는 너의 부고 소식을 너랑 별로 친하지도 않은 네 초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것도 네가 죽은 지 4일이 지나서야 겨우.


처음에는 그냥 소문인 줄 알았다.

아니면 동명이인일 거라 생각했다.

그야 네 이름은 꽤나 흔한 이름이었으니까.

세상에 네 이름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

에이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런데 너는 왜 내 카톡을 읽질 않을까.


불안이 스멀스멀 혈관을 타고 흘렀다. 불쾌했다.

나는 그날 밤 우리의 중학교 동창이자

너와 같은 고등학교를 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이 죽었다는 소문이 우리 학교에서 돌던데.. 아니지..?”

정적이 흘렀다.


교통사고였다.

말이 집에 가던 길에, 사거리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보통 사람이었다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고였다.

하지만 말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약한 아이였다.

말의 육체는 사고의 충격을 견뎌내기엔 너무 연약했던 것이다.


나는 그날 내가 이렇게 울 수 있는지,

사람이 이렇게 울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귀에 들려오는 내 목소리가 너무도 처절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슬픈 소리도 낼 수 있었구나. 처음 알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다.

나는 내가 적어도 한 달 간은 밥도 못 먹고 학교도 못 갈 줄 알았다.

항상 자살을 입에 달고 사는 애였으니

말이 죽는 상상도 당연히 해봤었다.

나는 많이 괴롭겠지. 죄책감도 느끼고.

많이 힘들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말의 부고 소식을 들은 그다음 날,

나는 너무도 멀쩡했다.

별 다를 거 없는 하루였다.

여전히 밥은 맛있었고 잠도 잘 잤다.

너무 정상적이었다.


그다음도 그다음 날도

나에겐 별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사실 체감이 잘 안 됐다.

말이 카톡을 안 보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고,

이러다가 아무렇지 않게 지가 연락하고 싶을 때 불쑥 찾아와서는 놀러 가자 하겠지.

너는 늘 제멋대로 였으니까.

어차피 다른 고등학교였고 맨날 연락하며 지내던 것도 아니었어서

말의 공백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 인생을 살았다.


중간고사 기간이다.

그것도 가장 중요하다는 고3 1학기의 중간고사 기간.

난 공부를 해야 한다. 성적을 올려야 한다.

체감도 안 되는 말의 죽음을 떠올리며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


그때는 그냥 정말로 공부만 했다.

다만, 그 시험기간에는 노래를 듣지 않았다.

원래 나는 주로 가사 없는 노래를 들으면서 공부를 하곤 했는데

가사 없는 노래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네가 작곡하던 게 떠올랐다.

네가 떠오르면 너랑 갔던 곳들이 떠올랐고

너랑 쌓았던 추억들이 떠올랐고

내가 간직했던 시야가 떠올랐다.


소름이 끼쳤다.


그 추억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소름이 끼쳤다.

내가 기억 속에 담은 그때의 풍경이, 햇살이, 온기가 지나치게 생생하게 떠올라서 소름이 끼쳤다.

그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면 구역질이 올라왔다. 소름이 끼쳤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것들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내겐 너무도 해로운 기억이었다.

그래서 노래를 듣지 않았다. 오직 공부만 했다.


그렇게 고3 1학기의 중간고사.

나는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온 이래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았다.

전교 2등이었다.


마음이 무겁게, 커다란 질량으로 내려앉았다.

내 성적표에 찍힌 2라는 숫자가 나를 소름 돋게 했다.

내가 진짜 인간이 아닌 것 같아서.

사람이라면 이래선 안 된다.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는데

사람이라면 이렇게 멀쩡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정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더 나아져서는 안 된다.

이건 기계나 다름이 없다.

나는 대체 뭘까. 내가 사람새끼가 맞나?

나의 지나치게 잔잔한 모습이 역겨워서 다시 혐오감이 올라올 것 같았다.


내가 너에게 건넸던 위로 하나하나가 나를 얽매는 족쇄로 돌아왔다.

2018년의 겨울, 나는 네가 스마트폰 어플로 D-day를 세고 있는 걸 봤다. D-36이었다.

그 D-day는 네가 자살할 날을 세고 있던 거였다.

발견 직후, 곧장 캘린더에 너의 D-day를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너의 자살시도를 막기 위함이었다.

그날에 이르기 전에, 나는 너에게 카톡으로 D-day 얘기를 슬쩍 꺼냈다.

역시 너는 그날 자살하려던 게 맞았다.

그날은 너의 공연 날이었고, 너는 그 공연을 마치면 쉽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날을 D-day로 삼았다 했다.


나는 그때 말에게 말했다.

-네가 죽으면 나도 그 핑계 삼아 따라 죽을지도 모르잖아

-죽지 말라고 붙잡으면 안 죽어줄 거야?

-죽지 마 나랑 살자

-우울한 애들끼리 뭉쳐서 이겨내야지

-너까지 없어지면 나 진짜 죽어버릴지도 몰라

-나 존나 이기적이라서 나 살려고 너 잡는 거야

-살아줘

너는 그때 내게 말했다.

처음 들었다고. 진짜 처음이라고.

-고맙다

넌 내게 말했다.



근데 그때 내가 따라 죽겠다 했던 건 그저 나의 가식이었던 걸까.



그때부터 나는 나에게 죄책감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세뇌 수준이었다. 내가 진짜 인간이라면 나는 너에게 죄책감을 느껴야만 한다고.

나는 너의 모든 결핍을 알고 있었다. 네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를 구해주지 못했다. 너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감정의 구렁텅이 속에서 썩어갔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일부러라도 너를 생각했다.

여고에서 애인을 사귀었다며 내게 온갖 자랑을 하던 너를,

네가 자아내던 네 특유의 우울 서린 분위기를,

한강에서 산책하자며 내 독서실 앞까지 버스 타고 찾아온 그날 밤 9시를,

매년 함께 장식했던 너와의 12월 31일을,

고2 여름 너와 입수했던 선녀바위 해수욕장을,

네가 친구랑 손절한 날 너를 위로했던 우리 집 앞 놀이터를.

너의 자해 흉터를 처음 발견했던 그날의 만화카페를,

너와 함께 한강에서 주웠던 거북이를,

부모님 몰래 너를 집에 초대했을 때 네가 쳐준 기타 소리를,

학원 과제라며 네가 카톡으로 보내줬던 네가 만든 노래들을,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네가 찍어준 나의 사진들을,

너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며 바라봤던 초승달까지도.

나는 아득바득 그 모든 장면들을 다시 떠올렸다.

망각하지 않았으면 해서. 어떻게든 장기기억으로 돌리려고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네가 없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없이 너를 떠올리다 보니

이제는 너와 했던 카톡, 너와 갔던 장소, 너와 함께했던 모든 날들이 내게 문신처럼 새겨졌다.

그리고 너의 죽음을 기리고 너를 되새기던 그 모든 시간을 통해

나는 끝내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사실 2019년의 나에게 너는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2019년의 너에게도 나는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너에게 더 소중했던 사람은 나보다도 너의 애인이었을지도 모르고,

나에게 더 소중했던 사람도 너 아닌 다른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냥 너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일어났고,

나는 너의 죽음에 의연했고,

의연한 나의 태도가 사람 같지 않아서 소름이 끼쳤고,

그래서 나를 사람처럼 만들기 위해

네가 나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스스로 세뇌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와의 관계를 내가 제멋대로 재구축하고 흐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근데 그 의문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이미 너를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각해버렸고,

그 과정에서 나는 너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버렸고,

끝내 나는 너를 우정을 넘어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 너는 내 첫사랑이었다.


나의 첫사랑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적으며 글을 마친다.

너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너의 삶이 무가치했다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아줬으면.

적어도 너의 삶은 나에겐 무가치하지 않았다.

너는 강박적으로 공부만 했던 나에게

불안과 통제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했던 나에게

자유와 추억을 안겨준 사람이다.

네가 자아냈던 네 특유의 자유로움을 사랑했고

너와 함께했던 모든 추억이 빛났다.

적어도 넌 나에게는 아주 가치 있는, 반짝이는 사람이었다.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 저 멀리 너에게 닿았으면.

아주 가깝게 와닿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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