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같은 약속에는 내가 나오려 하질 않으니까 카공 권유에 이어 협업 부탁까지 하는구나.
일쪽으로는 내가 거절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챈 걸까.
솔직히 속으로 박수를 쳤다.
이 사람 상당히 지능적이다. 나를 꿰뚫어 봤구나.
아무튼 그렇게 같이 일을 하기로 약속했고, 그날은 바로 그 사람의 생일이었다. 예상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고백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도 함께 예상했다.
나는 회피형 성향을 고치기 위해 연애를 하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다.
그러니 고백을 한다면 당연히 받아줄 생각이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사람은 내 실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가까이하려는 사람을 말릴 의무가 있다.
현재의 꼬이고 꼬인 나를 곁에 두려는 사람은
틀림없이 내게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괜히 회피형은 거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나한테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나조차도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 사람이 가까이 오는 걸 막아야만 한다.
최소한 그 사람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내 실체를 알려야만 한다.
그게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그 사람은 자기가 만들 영화에 참고하고 싶다는 핑계로
나의 과거를 듣고 싶어 했고
나는 그 사람의 일을 도와주겠다는 핑계로
나의 실체를 알려줬다.
그렇게 둘이서 간 칵테일 바에서 나는 내 과거를 말했고
독백인 듯 아닌 듯 그 사람을 향해 경고를 내뱉었다.
-… 아무튼 이런 일들 때문에 난 극단적인 회피형이 돼버렸어.
-자기감정도 제대로 인지하질 못해. 난 내가 기계 같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
-내 감정을 짓밟은 사람들이 남자였어서 그런지 난 남들보다 이성한테 연애감정도 덜 느껴. 그레이 섹슈얼이라고 알아? 유성애자와 무성애자 사이 회색지대에 성 정체성을 둔 사람들을 말하는데, 난 아마 그레이 로맨틱에 그레이 섹슈얼일 거야. 플라토닉한 연애만 가능한 인간일 수 있다는 거지.
-난 나한테 관심 없는 사람이 애정표현이나 스킨십을 하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한테 진심인 사람이 애정표현이나 스킨십을 하면 소름이 끼쳐. 그냥 그 애정이 너무 버겁고, 감정에 압도당하는 느낌이고, 신체적으로 닿는 것도 싫어. 회피적인 게 정말 심할 땐 애정에 부담스러움을 넘어 공포까지 느껴.
-지금의 나는 연애를 한다 해도 끽해봐야 플라토닉만 가능하겠지. 아주 친한 친구 사이도 되기 어려운 게 현재의 나니까. 뭐, 어차피 난 연애 안 해도 상관없지만.
극단적인 회피형에, 플라토닉 드립에, 연애 안 해도 상관없다는 마무리 멘트까지 얹었다.
어때. 이게 내 실체다. 답이 없지?
거를 거면 걸러라. 이 정도면 나를 거를 이유가 충분하다.
제발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에 맞게
망가진 사람 말고 정상적인 사람 만나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적어도 기만자는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헤어지기 직전에 결국 냅다 고백을 하더라.
진짜 순간 미친놈인가 싶었다.
그걸 듣고도 고백을 한다고?
제정신인가?
물론, 그 사람이라면 아마 내 경고를 듣고도 고백할 거라고 예상하긴 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 어둠을 보고 나를 걸렀을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그 사람은 그 정도로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다. 따뜻한 사람이니까.
다만 그래도 고민할 시간은 가질 줄 알았는데..
내 예상에서 벗어난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어떻고 자시고 간에,
뭐, 이제 별 수 있나?
받아줘야지.
그렇게 연애한 지 17일째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 매거진의 머리말은 그 사람이 장식하게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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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1학기,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가 끝났다.
그동안 피눈물을 쏟으며 학업에 매진한 결과,
3년 전체 총합 전교 4등으로 생활기록부를 마무리했다.
전교 4등. 누군가는 굉장하다며 치켜세울 만한 등수겠지만
50명밖에 안 되는 이과에서 등수는 무의미했다.
수시 성적 커트라인을 정하는 것은 등수가 아니라 내신등급이었고,
전교 4등의 내신등급은 2.39라는 조촐한 값밖에는 되지 않았으니까.
3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받아본 진학 상담,
첫 상담의 감상은 억울함이 전부였다.
선생님이 제시한 학교들이 모두 썩 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씨발.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공부했는데…!
진짜로 피도 흘려보고 눈물도 흘려보고,
내 정서를 완전히 망가뜨리면서까지 모든 걸 쏟아부은 결과가 고작 이거란 말인가.
그때의 나는 내 노력의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세상의 진리를 그렇게나 납득하기 힘들었나 보다.
그렇게 수시 6장을 다 상향으로 질렀다.
적어도 내가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결과는 나와야 한다는 아집으로.
후회는 없다. 수시 6장이 모두 떨어져도 괜찮다.
그건 내 모든 걸 쏟아부은 3년의 시간을 기리는 마음이자, 나의 고통에 대한 존중,
그리고 절대 꺾을 수 없는 나의 편협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당연히 수시 6장 모두 떨어졌다. 예상했다.
괜찮다. 어차피 재수할 생각이었다.
이 좆같은 학교. 차마 자퇴하지 못하고 내신 공부하느라 수능에 매진하지 못했던 게 내 한이었다.
그렇게 재수종합반으로 유명한 노량진의 모학원을 끊었다.
20살, 갓 성인이 된 나는 1년간의 재수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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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의 유명 재수종합반, 내 인생 처음으로 다녀보는 공부 관련 학원이었다.
현역 수능 성적은 썩 좋지 못했지만 몇 과목은 엔간히 본덕에 서울대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노량진 재수종합반에서 본 첫 시험은 처참했다.
아무리 내가 내신형 인간이었다 해도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수 있나?
평생 암기식 공부만 해왔던 나에게 수능 공부는 처음 접하는 응용형 공부였다.
위기감이 들었다. 2020년은 진짜 죽은 셈 치고 공부해야겠구나.
노력과 근성 하나는 자신 있다. 어떻게서든 이곳을 떠날 땐 왕관을 쓰고 떠나리라.
그렇게 매일매일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 자습했고,
주말에도 빠지지 않고 풀타임으로 자습했다.
공부하면서 많이도 아팠다.
재수 초반에는 잠이 병적으로 쏟아져서 고생이 꽤 많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싹이 보이던 졸음은 재수하면서부터 눈에 띄는 장애물이 되었다.
내가 조는 건 일반적으로 조는 것과는 달랐다.
10시간을 공부하면 5시간은 졸았다.
눈 밑에 치약도 발라보고,
샤프로 허벅지도 찔러보고,
옥상에서 몇 바퀴도 뛰어보고.
어떻게든 졸지 않으려고 별짓을 다 해봤는데도 졸았다.
심지어는 언젠가 학원 단과 수업을 듣다가 졸음이 와서 일어서서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도 졸고 있더라.
“내 평생 일어서서 조는 애는 처음 봤다.. 밖에서 바람이나 좀 쐬고 와.” 선생님이 말했다.
수업을 잠깐 멈출 정도로 황당하셨나 보다. 그때 수업 듣던 애들 꽤 많았는데.
그렇게 온 시선이 집중되는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수업이 끝난 후, 개인적으로 질문하러 갔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일어서서까지 졸면 앞에서 수업하는 쌤은 뭐가 되니? 그거 정신력이 약해서 그런 거 아니야?”
지랄. 나한테 정신력을 운운하다니.
내가 여기 있는 애들 통틀어서 가장 독한 년일 텐데.
그 후로 더 빡세게 병원을 찾아다녔다.
저딴 소리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서. 제발 공부 좀 제대로 하고 싶어서.
처음에는 내과에 갔다.
혈당 스파이크인 줄 알고 혈당을 쟀다.
정상이었다. 별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다음에는 한의원에 갔다.
한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으니 없던 저혈압이 생겼다.
지나다니다 몇 번 졸도할 뻔했다.
더 안 좋아졌다. 젠장.
또 다른 곳을 향했다.
그 후에는 정신과에 갔다.
병적으로 졸리다고 말하니 과다수면장애인 것 같다 하셨다.
신촌 세브란스 신경과에 가보라며 소견서를 작성해주셨다.
세브란스 신경과에 갔다.
신경과 의사는 과다수면장애라기엔 증상이 좀 부족하다고 했다.
본인도 추천은 안 하는데, 그래도 일단 수면 검사를 받아보겠냐 했다.
근데 그 검사가 보험이 안 돼서 상당히 비쌌다. 몇 십만 원 정도?
결국 검사는 포기했다.
또 다른 곳을 향했다.
다음엔 가정의학과에 갔다.
하다 하다 갈 데가 없어서 간 곳이었다. 좀 더 포괄적으로 진단해주려나 싶어서.
가정의학과 의사는 처음에는 내과에 가볼 것을 추천하더니
내 얘기를 듣고서는 다시 한번 정신과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정신과에 가게 됐다.
다시 돌아간 정신과.
정신과 의사는 내 얘기를 듣고서는 한 검사지를 내밀었다.
체크를 마치고, 정신과 의사는 검사지를 보며 내게 말했다.
“성인 ADHD 같네요. 신경 각성제를 처방해드리겠습니다.”
ADHD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차분한데, 진단이 잘못된 거 아닌가?
그렇다기엔 신경 각성제를 먹고 나서부터는 졸음이 말끔히 사라졌다.
수개월간 병원만 5군데를 돌며 졸음으로 고통받다가 겨우 해결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신경 각성제는 부작용이 있었다.
하나는 소화불량이었고, 다른 하나는 불면증이었다.
안 그래도 소화능력도 떨어지고 잠도 예민했는데
신경 각성제를 먹으니 위장은 멈추고 뇌는 과활성화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과를 다녔다. 소화제를 처방받았다.
정신과도 다녔다. 수면유도제와 항스트레스제,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그렇게 약이 한 두 알씩 늘어나더니,
재수의 끝에서는 하루에 먹는 약만 25개였다.
매끼마다 입안에 가득 차게 알약을 털어 넣었다.
마치 시한부가 된 것 같았다.
약 덕분에 다른 증상은 어떻게든 커버를 칠 수 있었는데 반해, 소화능력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매식사 후 손지압을 하고 산책을 하는데도 나아지질 않으니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먹는 양을 줄였다.
학원 급식을 끊고 도시락을 싸와 하루 세끼 죽과 양배추만 먹었다.
그것도 1인용 도시락통에 죽을 싸오면 그걸 한 끼에 다 먹는 게 아니고
죽을 반으로 나눠서 0.5인분은 점심에 먹고 남은 0.5인분은 저녁에 먹었다.
그렇게 먹으니 당연히 살이 빠졌다.
키가 170cm인데 43kg까지 빠져서, 말 그대로 뼈밖에 안 남은 인간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나 악순환이 반복되는데도 이 짓을 끊을 수가 없었다.
성적이 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악마와 계약이라도 한 듯 고통을 대가로 성적을 받아냈다.
내가 다녔던 학원은 2주에 한 번씩 시험을 봤었는데
시험을 볼 때마다 몇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적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
내가 왕관을 쓸 수만 있다면 내 몸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나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흔쾌히 육체 정도는 바칠 수 있는 인간이었다.
결국 9월 모의고사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높은 대학이 나왔다.
짜릿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는지 스스로 증명한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그래서 수시를 넣을 때 학원 선생님과 상담하여 학생부를 버리고 6 논술을 넣기로 정했다.
9월 모의고사 때 하필이면 수학을 잘 본 바람에, 선생님마저도 이 정도 점수면 수리논술로 붙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