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인간의 과거(5) - 지나친 노력은 배신한다.
나의 목표가 끝내 날 바닥으로 내리꽂는구나. 바벨탑이 무너지듯.
지난 글을 업로드하고 2주가 지났다.
왜 이리 늦었냐 묻는다면, 글쎄.
그냥 일이 좀 많았다.
일이 좀 많아서 글 생각이 안 났다고 핑계를 대련다.
지난 2주간의 일을 브리핑해보자면,
우선 남자 친구가 생겼다.
내 글들의 꾸준히 머리말을 장식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지난 글 이후로 둘이서 보자는 약속을 두 번 더 거절했다.
그 사람은 지난 한 달간 나한테 총 4번의 약속 거절과 여러 번의 선긋기를 당했다.
그런데 참 맷집도 좋지.
동아리 끝나고 단체로 스터디룸에서 나가던 길에
자기 일을 도와줄 수 있느냐며 내 아이패드와 그림 툴을 빌리고 싶다 했다.
데이트 같은 약속에는 내가 나오려 하질 않으니까 카공 권유에 이어 협업 부탁까지 하는구나.
일쪽으로는 내가 거절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챈 걸까.
솔직히 속으로 박수를 쳤다.
이 사람 상당히 지능적이다. 나를 꿰뚫어 봤구나.
아무튼 그렇게 같이 일을 하기로 약속했고, 그날은 바로 그 사람의 생일이었다. 예상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고백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도 함께 예상했다.
나는 회피형 성향을 고치기 위해 연애를 하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다.
그러니 고백을 한다면 당연히 받아줄 생각이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사람은 내 실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가까이하려는 사람을 말릴 의무가 있다.
현재의 꼬이고 꼬인 나를 곁에 두려는 사람은
틀림없이 내게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괜히 회피형은 거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나한테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나조차도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 사람이 가까이 오는 걸 막아야만 한다.
최소한 그 사람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내 실체를 알려야만 한다.
그게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그 사람은 자기가 만들 영화에 참고하고 싶다는 핑계로
나의 과거를 듣고 싶어 했고
나는 그 사람의 일을 도와주겠다는 핑계로
나의 실체를 알려줬다.
그렇게 둘이서 간 칵테일 바에서 나는 내 과거를 말했고
독백인 듯 아닌 듯 그 사람을 향해 경고를 내뱉었다.
-… 아무튼 이런 일들 때문에 난 극단적인 회피형이 돼버렸어.
-자기감정도 제대로 인지하질 못해. 난 내가 기계 같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
-내 감정을 짓밟은 사람들이 남자였어서 그런지 난 남들보다 이성한테 연애감정도 덜 느껴. 그레이 섹슈얼이라고 알아? 유성애자와 무성애자 사이 회색지대에 성 정체성을 둔 사람들을 말하는데, 난 아마 그레이 로맨틱에 그레이 섹슈얼일 거야. 플라토닉한 연애만 가능한 인간일 수 있다는 거지.
-난 나한테 관심 없는 사람이 애정표현이나 스킨십을 하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한테 진심인 사람이 애정표현이나 스킨십을 하면 소름이 끼쳐. 그냥 그 애정이 너무 버겁고, 감정에 압도당하는 느낌이고, 신체적으로 닿는 것도 싫어. 회피적인 게 정말 심할 땐 애정에 부담스러움을 넘어 공포까지 느껴.
-지금의 나는 연애를 한다 해도 끽해봐야 플라토닉만 가능하겠지. 아주 친한 친구 사이도 되기 어려운 게 현재의 나니까. 뭐, 어차피 난 연애 안 해도 상관없지만.
극단적인 회피형에, 플라토닉 드립에, 연애 안 해도 상관없다는 마무리 멘트까지 얹었다.
어때. 이게 내 실체다. 답이 없지?
거를 거면 걸러라. 이 정도면 나를 거를 이유가 충분하다.
제발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에 맞게
망가진 사람 말고 정상적인 사람 만나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적어도 기만자는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헤어지기 직전에 결국 냅다 고백을 하더라.
진짜 순간 미친놈인가 싶었다.
그걸 듣고도 고백을 한다고?
제정신인가?
물론, 그 사람이라면 아마 내 경고를 듣고도 고백할 거라고 예상하긴 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 어둠을 보고 나를 걸렀을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그 사람은 그 정도로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다. 따뜻한 사람이니까.
다만 그래도 고민할 시간은 가질 줄 알았는데..
내 예상에서 벗어난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어떻고 자시고 간에,
뭐, 이제 별 수 있나?
받아줘야지.
그렇게 연애한 지 17일째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 매거진의 머리말은 그 사람이 장식하게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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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1학기,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가 끝났다.
그동안 피눈물을 쏟으며 학업에 매진한 결과,
3년 전체 총합 전교 4등으로 생활기록부를 마무리했다.
전교 4등. 누군가는 굉장하다며 치켜세울 만한 등수겠지만
50명밖에 안 되는 이과에서 등수는 무의미했다.
수시 성적 커트라인을 정하는 것은 등수가 아니라 내신등급이었고,
전교 4등의 내신등급은 2.39라는 조촐한 값밖에는 되지 않았으니까.
3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받아본 진학 상담,
첫 상담의 감상은 억울함이 전부였다.
선생님이 제시한 학교들이 모두 썩 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씨발.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공부했는데…!
진짜로 피도 흘려보고 눈물도 흘려보고,
내 정서를 완전히 망가뜨리면서까지 모든 걸 쏟아부은 결과가 고작 이거란 말인가.
그때의 나는 내 노력의 결과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세상의 진리를 그렇게나 납득하기 힘들었나 보다.
그렇게 수시 6장을 다 상향으로 질렀다.
적어도 내가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결과는 나와야 한다는 아집으로.
후회는 없다. 수시 6장이 모두 떨어져도 괜찮다.
그건 내 모든 걸 쏟아부은 3년의 시간을 기리는 마음이자, 나의 고통에 대한 존중,
그리고 절대 꺾을 수 없는 나의 편협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당연히 수시 6장 모두 떨어졌다. 예상했다.
괜찮다. 어차피 재수할 생각이었다.
이 좆같은 학교. 차마 자퇴하지 못하고 내신 공부하느라 수능에 매진하지 못했던 게 내 한이었다.
그렇게 재수종합반으로 유명한 노량진의 모학원을 끊었다.
20살, 갓 성인이 된 나는 1년간의 재수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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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의 유명 재수종합반, 내 인생 처음으로 다녀보는 공부 관련 학원이었다.
현역 수능 성적은 썩 좋지 못했지만 몇 과목은 엔간히 본덕에 서울대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노량진 재수종합반에서 본 첫 시험은 처참했다.
아무리 내가 내신형 인간이었다 해도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수 있나?
평생 암기식 공부만 해왔던 나에게 수능 공부는 처음 접하는 응용형 공부였다.
위기감이 들었다. 2020년은 진짜 죽은 셈 치고 공부해야겠구나.
노력과 근성 하나는 자신 있다. 어떻게서든 이곳을 떠날 땐 왕관을 쓰고 떠나리라.
그렇게 매일매일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 자습했고,
주말에도 빠지지 않고 풀타임으로 자습했다.
공부하면서 많이도 아팠다.
재수 초반에는 잠이 병적으로 쏟아져서 고생이 꽤 많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싹이 보이던 졸음은 재수하면서부터 눈에 띄는 장애물이 되었다.
내가 조는 건 일반적으로 조는 것과는 달랐다.
10시간을 공부하면 5시간은 졸았다.
눈 밑에 치약도 발라보고,
샤프로 허벅지도 찔러보고,
옥상에서 몇 바퀴도 뛰어보고.
어떻게든 졸지 않으려고 별짓을 다 해봤는데도 졸았다.
심지어는 언젠가 학원 단과 수업을 듣다가 졸음이 와서 일어서서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도 졸고 있더라.
“내 평생 일어서서 조는 애는 처음 봤다.. 밖에서 바람이나 좀 쐬고 와.” 선생님이 말했다.
수업을 잠깐 멈출 정도로 황당하셨나 보다. 그때 수업 듣던 애들 꽤 많았는데.
그렇게 온 시선이 집중되는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수업이 끝난 후, 개인적으로 질문하러 갔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일어서서까지 졸면 앞에서 수업하는 쌤은 뭐가 되니? 그거 정신력이 약해서 그런 거 아니야?”
지랄. 나한테 정신력을 운운하다니.
내가 여기 있는 애들 통틀어서 가장 독한 년일 텐데.
그 후로 더 빡세게 병원을 찾아다녔다.
저딴 소리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서. 제발 공부 좀 제대로 하고 싶어서.
처음에는 내과에 갔다.
혈당 스파이크인 줄 알고 혈당을 쟀다.
정상이었다. 별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다음에는 한의원에 갔다.
한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으니 없던 저혈압이 생겼다.
지나다니다 몇 번 졸도할 뻔했다.
더 안 좋아졌다. 젠장.
또 다른 곳을 향했다.
그 후에는 정신과에 갔다.
병적으로 졸리다고 말하니 과다수면장애인 것 같다 하셨다.
신촌 세브란스 신경과에 가보라며 소견서를 작성해주셨다.
세브란스 신경과에 갔다.
신경과 의사는 과다수면장애라기엔 증상이 좀 부족하다고 했다.
본인도 추천은 안 하는데, 그래도 일단 수면 검사를 받아보겠냐 했다.
근데 그 검사가 보험이 안 돼서 상당히 비쌌다. 몇 십만 원 정도?
결국 검사는 포기했다.
또 다른 곳을 향했다.
다음엔 가정의학과에 갔다.
하다 하다 갈 데가 없어서 간 곳이었다. 좀 더 포괄적으로 진단해주려나 싶어서.
가정의학과 의사는 처음에는 내과에 가볼 것을 추천하더니
내 얘기를 듣고서는 다시 한번 정신과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정신과에 가게 됐다.
다시 돌아간 정신과.
정신과 의사는 내 얘기를 듣고서는 한 검사지를 내밀었다.
체크를 마치고, 정신과 의사는 검사지를 보며 내게 말했다.
“성인 ADHD 같네요. 신경 각성제를 처방해드리겠습니다.”
ADHD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차분한데, 진단이 잘못된 거 아닌가?
그렇다기엔 신경 각성제를 먹고 나서부터는 졸음이 말끔히 사라졌다.
수개월간 병원만 5군데를 돌며 졸음으로 고통받다가 겨우 해결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신경 각성제는 부작용이 있었다.
하나는 소화불량이었고, 다른 하나는 불면증이었다.
안 그래도 소화능력도 떨어지고 잠도 예민했는데
신경 각성제를 먹으니 위장은 멈추고 뇌는 과활성화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과를 다녔다. 소화제를 처방받았다.
정신과도 다녔다. 수면유도제와 항스트레스제,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그렇게 약이 한 두 알씩 늘어나더니,
재수의 끝에서는 하루에 먹는 약만 25개였다.
매끼마다 입안에 가득 차게 알약을 털어 넣었다.
마치 시한부가 된 것 같았다.
약 덕분에 다른 증상은 어떻게든 커버를 칠 수 있었는데 반해, 소화능력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매식사 후 손지압을 하고 산책을 하는데도 나아지질 않으니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먹는 양을 줄였다.
학원 급식을 끊고 도시락을 싸와 하루 세끼 죽과 양배추만 먹었다.
그것도 1인용 도시락통에 죽을 싸오면 그걸 한 끼에 다 먹는 게 아니고
죽을 반으로 나눠서 0.5인분은 점심에 먹고 남은 0.5인분은 저녁에 먹었다.
그렇게 먹으니 당연히 살이 빠졌다.
키가 170cm인데 43kg까지 빠져서, 말 그대로 뼈밖에 안 남은 인간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나 악순환이 반복되는데도 이 짓을 끊을 수가 없었다.
성적이 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악마와 계약이라도 한 듯 고통을 대가로 성적을 받아냈다.
내가 다녔던 학원은 2주에 한 번씩 시험을 봤었는데
시험을 볼 때마다 몇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적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
내가 왕관을 쓸 수만 있다면 내 몸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나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흔쾌히 육체 정도는 바칠 수 있는 인간이었다.
결국 9월 모의고사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높은 대학이 나왔다.
짜릿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는지 스스로 증명한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그래서 수시를 넣을 때 학원 선생님과 상담하여 학생부를 버리고 6 논술을 넣기로 정했다.
9월 모의고사 때 하필이면 수학을 잘 본 바람에, 선생님마저도 이 정도 점수면 수리논술로 붙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던 거다.
그렇게 수시 6장을 엔간히 난이도 있는 최저의 수리논술에 몰빵해 버렸다.
수능 2주 전 시험까지도 성적이 상승곡선을 탔다.
결국 목표 대학이었던 지방 수의대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다.
수능에서도 이 상승곡선이 이어진다면 나는 고대했던 수의대에 갈 수 있으리라.
왕관을 쓸 날이 머지않았다. 나의 끝은 찬란하리라.
그렇게 정신을 부여잡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수능에 도달했다.
그리고 수능 당일,
완전히 말아먹었다.
재수 초반, 학원에서 봤던 시험처럼.
사실, 재수하면서 많이도 불안했다.
내 실력에 거품이 낀 것 같아서.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고는 있지만 어디 한구석이 늘 찝찝했다. 운이 서려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수학과 과학은 그런 느낌이 약했지만
국어랑 영어는 특히 그 느낌이 강했다.
애써 무시했던 나의 거품이 수능에서 드러난 것이다.
공부를 하던 당시, 나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내가 들인 고통과 노력이 너무 커서
현재의 나를 제대로 성찰하고 재정비하지 못했다.
결국은 나의 과오다. 또 나의 과오다.
너무 지나치게 노력했던 내가 문제였던 거다.
나의 지나친 노력이, 나의 지나친 목표의식이
또다시 나를 나락으로 몰고 간 순간이었다.
나의 부모님이 나에게 투자한 돈과
내가 쏟은 노력,
괴로움을 못 버텨 했던 단발성 자해,
내가 매일같이 먹었던 25개의 알약과
내가 바쳤던 정신적 & 육체적 고통.
내가 1년 동안 쏟아부은 그 모든 것들이,
악마와 계약해서라도 얻고자 했던 나의 목표가
바벨탑이 무너지듯 끝내 나를 바닥으로 내리꽂는구나.
두 번의 입시는 내 노력을 배신했고
내게 패배감과 무능감, 그리고 무기력감을 안겨주었다.
그 후로는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큰 감흥이 안 생기게 되었다.
마치 남일 보듯 대하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어떤 노력을 들이든
내 정성은 언제나 나를 배신했으니까.
내 회피형 특징 중 하나.
내게 일어난 일을 남일 보듯이 하게 된 계기는 이때 생기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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