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인생은 회피해왔어도, 앞으로의 인생은 당당하게 마주할 이들에게
매거진의 공백이 너무도 길었다. 무려 3달이 넘었다.
사실 회피형글을 쓰려고 시도한 적은 무수히 많았다.
원래 이번 글에서는 내가 겪은 수많은 이별들을 얘기하려 했었다.
그러나 계속 글을 업로드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겪은 이별들을 어떻게 말해야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7명의 친구와 완전히 이별했다.
그중 2명은 내가 끊어낸 인연이었고,
다른 2명은 상대가 끊어낸 인연이었으며,
1 명은 현재 이별하는 중이고,
2명은 사별했다.
원래는 이들 한 명 한 명을 죄다 깊게 서술할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하기에는 내가 겪은 이별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 다음엔 내가 정말 사랑했던 친구 3명 정도만 깊게 서술할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하기에도 내가 겪은 그 관계들이 너무 깊었다.
예전에 대학 동기들과 술을 진탕 마시고
지금껏 경험했던 이별을 말해준 적이 있다.
내 얘기를 들은 한 동기가 내게 말했다.
“언니 손절 얘기 들으니까 꼭 연인들이 헤어지는 순간을 보는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머리가 띵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맞다. 난 친구들과 ‘연애’를 해온 사람이었다.
마음을 나눈 연인과 엄격히 나를 훈육했던 부모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아무리 같이 지낸 시간이 오래됐다한들
진실된 소통이 가능했던 연인이 관계면에서는 부모보다 앞서 있다.
누군가는 연인을 가볍게 사귀어서 관계를 간단히 서술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 글 하나에 다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얕은 관계는 키워본 적이 없다.
또한 지금은 완전히 이별한 상태라도
미래에는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있을지도 모르는 그때를 위해 그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다.
이별했던 그때에는 미성숙했더라도, 현재의 그들은 훨씬 성숙해져있을테니까.
내가 사랑했던 그들을 현재의 내가 과거의 모습으로만 박제하고 판단하는 짓은 하지 않으려한다.
다만, 여기서 밝힐 수 있는 건
성인이 된 후 이별했던 4명의 친구들이
내 회피형 성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자존감이 아주 낮았던 시절 차마 잡아볼 용기도 나지 않았던 극회피형 인간, 율무.
그 누구보다 나와 깊게 관계를 맺었으나 의도치않게 나를 가스라이팅했던 내가 사랑하고 증오했던 사람, 알보칠.
정서적으로 미숙했던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내게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 수박.
22년도 겨울 나의 첫사랑처럼 소리소문도 없이 불운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내 오타쿠메이트, 산다라박.
그들과 이별하며 나는 점점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 무뎌졌다.
아니, 사실은 점점 관계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사랑하는게 무서워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지독히도 아팠으니까.
그렇게 2022년, 자신의 욕구도, 인생도 회피해온 22살의 나는
사랑까지도 회피하는 지독한 회피형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2022년의 9월,
지독한 회피형 인간인 내게
불도저처럼 직진해온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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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형 인간으로서 연애한지 200일이 되어간다.
나는 그 사람으로부터 감정을 배우고 있다.
감정을 아주 오랫동안 억제해온 나와는 달리,
그 사람은 무척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사람이라
곁에서 보고만 있어도 감정을 어떻게 느끼고 해소해야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200일을 사귀는 동안 그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됐다.
그 사람은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그 사람도 어린 시절 다소 엄격한 양육방식을 겪었지만,
그는 나와 달리 자신을 끊임없이 주장해온 사람이었다.
자신의 욕구를 주장할 줄 알고
자신의 감정을 존중할 줄 알고
자신의 권리와 생각을 존중받기 위해 싸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의 그러한 성격탓에
철이 없고 제멋대로 군다는 인상을 받을 때도 있었고
그가 자신의 욕구에만 집중해서 내가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허나, 그가 나와 평생을 함께하고자 할 정도로 나를 사랑하고 있고
나의 정서적인 문제도 함께 책임지고 해결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참 예쁘게 다가왔다.
그래서 연애를 통해 회피형 성향을 완전히 극복했냐고?
솔직히 말하면 “아니.”, 난 여전히 회피형 인간이다.
그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더 그를 사랑하는 것이 두렵고,
여전히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제때 인지하기가 어렵고,
내 욕구를 타인에게 주장하는 것도 거절당할까봐 무섭다.
다만 회피형 성향이 나아졌다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무능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도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됐고,
이전보다 감정을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해소할 수 있게 됐고,
적어도 그 사람은 내 욕구를 말하면 거절하지않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
회피형 성향은 고치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아무 노력도 안 하면 인간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지긋지긋한 회피형 성향과 싸워볼 생각이다.
나와 비슷한 유년기를 겪은 모든 회피형 인간들에게
나의 매거진으로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회피해왔어도
앞으로의 인생은 당당하게 마주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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