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그냥 뭔가 이상해서 적어본다.
공허하다. 내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든다.
나는 뭔가 헛돌고 있는 것 같은데
세상의 시간은 잘만 굴러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진다.
나한테 내가 없는 느낌은 정말이지 괴롭다.
내가 쌓은 성취도, 내가 가꾼 외모도
모두 그저 껍데기처럼 느껴진다.
빈 깡통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내 주관이 쉽사리 흔들리는 게 괴롭다.
주변인들의 주장에 쉽게 흔들리는 나를 볼 때면 참 초라해진다.
너의 말과 너의 감정에 공감하는 나는
정작 나의 말과 나의 감정에 공감하진 않는다.
나는 나에게 너무 박한 사람이다.
요즘엔 인간의 ’ 선함‘에 대해 고뇌하곤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얼마 전에 인스타툰을 자유연재로 바꾸게 된 데에도 이게 좀 영향을 끼쳤다.
나는 선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 신념 중 하나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신념이 계속 흔들리고 있다.
남자친구의 영향이다.
그는 인생에서 선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 그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예쁘고 자연스러운 외모의 이성에게 관능적으로 끌리는 본능,
선천적인 성향에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
가식적인 것을 혐오하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성격,
약육강식 및 적자생존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이런 ‘자연스러움’들이 그가 가진 가치관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의 가치관이 부딪히기도 했다.
자기감정대로만 행동하려 하는 그의 모습이
내게는 소악마처럼 보여서 거슬렸고,
선하게 행동하려고 감정을 억누르며 애쓰는 내 모습이
그에게는 부자연스러워 보여서 거슬렸을 것이다.
이런 가치관 차이가 소소하지만 잦게 스트레스를 안겨 주곤 했다.
“세상이 착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어.”
세상의 잔인함에 상처받을 때마다 그에게 이리 말하곤 했다.
나는 굉장히 이상적인 사람이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꽤나 이상적인데,
그 때문에 자주 일방적으로 사상이 치여서 홀로 괴로워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지만, 그럼에도 절대 내게 세상은 착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해주질 않았다.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네 편이 되어줄게. “, “세상의 풍파 속에서 내가 너를 지켜줄게.” 따위의 말을 할 뿐이었다.
그의 세상에 대한 전제는 늘 잔인했다. 그에게는 그런 세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착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했던 ‘착하고 아름다운 세상’은 공감능력이 높은 세상이었다.
나보다 너에 대한 배려가 우선인 세상, 서로를 향한 첫마디가 따뜻한 세상,
나의 의견만큼 너의 의견이 중요한 세상, 너를 위해 나의 욕구도 참을 수 있는 세상.
아프고 힘든 사람이 외면받지 않는 세상, 가식적인 외면 뒤에 악의를 숨기지 않는 세상.
난 늘 그런 세상을 바랐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인 걸까.
점점 그의 생각에 동화되고 있다.
내가 나의 이타주의적 노력에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선을 추구하는 나지만, 그럼에도 나조차 궁극적으로 선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남들보다 공감능력이 조금 더 좋고 인류애가 조금 더 높을 뿐이다.
나도 궁극적으로는 언제나 내가 가장 우선이었다.
추운 겨울에 얼어 죽는 고양이들을 동정하면서도 내 집에 들일 엄두는 못 내고,
외모보다 내면을 봐야 한다고 늘 말하면서도 나 또한 잘생긴 이성에게 끌리며,
정서적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그 고통을 함께 끝까지 짊어질 자신이 없었다.
그의 말이 맞다. 나는 어쭙잖게 착한 척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온갖 도덕적인 말은 다 하지만, 결국 나도 남들과 다른 게 없다.
남들보다 조금 더 모순적인 인간이 될 뿐이다.
나의 도덕 강박에 회의감을 느낀다.
내가 하는 입바른 소리에 혐오감을 느낀다.
나는 온전히 강한 사람이 되지도 못했고, 온전히 착한 사람이 되지도 못했다.
나는 그저 애매한 인간이 되어있을 뿐이었다.
애매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버리기로 한다.
어떻게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했던 과거의 나를 버리기로 한다.
원래의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서,
착한 척은 딱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데까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선까지만 부리려 한다.
어쭙잖은 배려와 공감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데까지만.
그게 맞다.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배려는 끝내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길 테니까.
착하고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받아들인다.
착한 사람보다, 강한 사람이 되기로 가치관을 굳힌다.
강한 사람이 되면 선행을 베풀 여유도,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도도 커진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되기 전에, 우선 강한 사람이 되어보련다.
이 잔인한 세상 속에서 나와 비슷한 너를 제치고
더 앞서나갈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