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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 Nov 21. 2023

2023년 11월 18일 - 불안장애

오늘도 키보드를 잡는다.

요즘 글이 비교적 자주 올라오는 이유는

최근들어 부쩍 불안을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내 글의 빈도는 내 불안의 빈도에 비례한다.

나의 글은 주로 불안이 써내려가는 탓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불안이 한계에 다다르면 자주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다.

악몽을 꾸거나

잠을 충분히 못자거나

소화가 잘 안되거나

숨이 가빠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증상은 자해욕구가 강해진다는 것.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행동들이 있지 않은가.

휴지를 찢는다거나 손톱을 물어뜯는다거나 그런것들 말이다.

그게 다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인거지.

나도 어느 정도의 불안감에서는 그 정도 행동으로 만족할 수 있다.

다만 불안이 정도를 넘어서면

찢고 물어뜯는 대상이 휴지가 아니라 나로 바뀔 뿐인 거다.


오늘도 스트레스에 못 이겨 망상을 했다.

우선 내 앞에 나의 클론을 만들어 낸다.

그 클론을 세로로 여러 번, 가로로 여러 번 자른다.

최대한 고통스러운 연장일수록 좋다.

그렇게 깍뚝썰기된 살점을 입에 넣어본다.

피맛이 난다(맛은 없다. 애초에 지방보다 가죽이 더 많은 몸뚱이니까.)

다음으론 눈알을 파본다.

오랫동안 생선 눈깔을 먹으며 다져온 실력으로 내 눈알을 파낸다.

깔끔하게 파였다. 그걸 바늘로 찔러본다.

피가 푸슉-하고 얇고 길게 뿜어져나온다.

그 피를 방금 썰어놓은 살점들에 발라 먹어본다. 또 맛이 없다.

“나는 어쩜 쓸모도 없는 주제에 맛까지 없을까” 따위의 생각을 해본다.

이미 형체조차 희미해져버린 시체를 폐기하고 새로운 클론을 만들어낸다.

이번엔 토막살인하듯 커다란 전기톱으로 팔 다리를 자르고

장검으로 복부를 쑤셔 커다란 구멍을 내본다.

내 얇은 팔 다리를 몸뚱이 주변에 예쁘게 장식하고

장례라도 치뤄주듯 양쪽 젖꼭지를 송곳으로 뚫어

그 자리에 향을 꽂아본다.

오늘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유린된 내 클론에게

사죄와 혐오의 의미를 담아 절을 두 번 한다.

“잘 가라”.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현실로 돌아온다.


이게 불안을 느끼는 내가 종종 이용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다소 역겨워 보인다면 어쩔 수 없다.

자기혐오가 심한 나한테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래도 요즘은 고등학교때에 비해 빈도도 수위도 낮아졌으니 멋대로 괜찮은 거라고 생각해본다.


아, 사실 긍정적인 스트레스 해소법도 있긴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최근에 깨달았는데, K랑 있으면 정신이 제대로 휴식하는 느낌이 들더라.

혼자서는 불안감에 제대로 쉬지를 못하는 내가

K랑 있을 때는 비교적 잘 휴식을 취한다는 걸 알았다.

이건 굉장히 긍정적인 발견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궁극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은 될 수 없다.

어떤 날엔 K를 만나는 와중에서도 K가 스트레스를 더 줄 수도 있고,

K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K를 귀찮게 만들수도 있으니까.

K를 귀찮게 만들수는 없다.

절대 내가 K에게 있어 귀찮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언제나 K가 갈망하는 사람이어야한다.

그러니 내 불안감을 오로지 K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최종적으론 다시 ‘글’로 돌아온다.

내 역겨운 모습이든 결핍된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표출해도 되는 나의 세계.

거짓말을 남발하는 내가 유일하게

거짓을 고하지 않아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오직 나만의 세계.

그게 나의 글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그림을 좋아했던 이유도 비슷한 이유였는데…

난 그림을 통해서 내 궁극적 자유를 찾고 싶어했다.

내가 왜 고등학교때부터 쭉 일기를 써왔나 생각해보니,

난 무의식적으로 글을 통해서도 궁극적인 자유를 좇아왔나보다.


망상으로 불안을 쏟아내든 글로 불안을 쏟아내든

사실 둘 다 그리 건강한 방법은 아닌 것 같기도한데,

그래도 망상보다는 글이 좀 더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편이라서

결국 또 불안에 못이겨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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