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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 Jan 25. 2024

2024년 1월 25일 - 이번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

“너무 급해 보여. 왜 항상 이번에 해내야만 하는 거야?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해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게, K. 내가 그게 안 되네.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은데 잘 모르겠어.

애써 날 이해해 보려 신경 써서 질문도 해줬는데 이번에도 제대로 된 답변을 못 해줬네.

그러면서 날 이해해 달라고 징징대는 꼴이라니 참 웃기는 일이지.


글쎄, 왜 그런 걸까. 언제부터 이 모양이 된 걸까.

재수할 때부터였을까, 아님 고등학교 때부터였을까.

그 시절엔 정말 미래가 없는 것처럼 굴었었는데.

지옥의 쳇바퀴를 매일같이 다리가 부서져라 달리는 것 같았어.

그땐 뭐가 그렇게 중요했던 걸까.

정서도 몸도 망가뜨려가면서 매달렸던 목표가 그 시절의 나에게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나는 관성을 따르고 있는 듯해.

좋은 말로 해서 관성이지, 까고 보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다는 얘기야.

K, 너도 알듯이 나는 7학기 수석졸업을 목표로 하고 있어. 이번 학기에는 A학점을 목표로 고려대에서 고분자물성 전공 수업도 들을 거야. 또 우리 학과 최초로 카이스트에 진학하기 위해 이번 여름에 해외 저널 1 저자 논문을 내는 것도 도전할 예정이지.

얼마나 빛나는 일이야.

이것들 다 성공하면 나는 엔간한 사람들로부터는 인정받을 수 있어.

대신 실패하면 그냥 실패한 사람 되는 거지.

그러니 내가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있겠어?


맞아, 동감해. 나 많이 지쳤어. 몸도 많이 상했지.

매일매일이 괴롭고 일상이 즐겁지가 않아.

근데 포기가 안 돼.

이번에 해내지 못하고 실패하면 나는 빛나지 못하는걸. 적어도 덜 빛나게 되는 걸.

그래서 내가 그리도 ’ 이번‘에 집착하는 걸까?


K, 나는 다음이 없어.

솔직히 나는 건강한 삶을 바라지도, 행복한 삶을 바라지도 않는 것 같아.

그저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찰나를 빛내고 사라지고 싶은 것 같아.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그냥 좀 지치고 힘들 뿐이야.

삶을 영위한다는 게 의미 있으려면 빛나기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어.

어쩌면 난 그 누구보다 쓰레기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매일을 나를 파괴하기 위해 살아가니 말이야.


편해지고 싶다. 편해지고 싶어.

나한테 ‘다음’이라는 게 생기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라면 조금은.

그래, 조금은.

조금은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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