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4일의 일기
"세상 어딘가에는 나의 이해자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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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타대 대학원에 컨택 메일을 보낼 준비를 한다.
컨택 한 번 하는데도 참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해당 랩실의 논문을 눈 빠지게 읽는 데에 들이는 노력,
최대한 예쁘고 두드러지게 cv를 치장하는데 들이는 노력,
그리고 그와 더불어
내 곪아버린 열등감을 억누르는데 들이는 노력까지.
컨택 메일 하나하나에 스트레스성 새치가 100개씩 늘어나는 기분이다. 진이 빠진다.
나에게 있는 거라곤 높은 학점 그뿐.
난 학벌도 좋지 않고 연구실적도 없다.
내가 어필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 랩실을 향한 간절함밖에 없으니
컨택 하나하나에 최선의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자본주의 사회라는 게 원래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
보다 뛰어난 사람이 살아남고 부족한 사람이 뒤쳐지는 건 당연한 순리다.
그런 잔인한 세상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나는 너희들을 제치기 위해 목에 핏발을 세우고 달리는 수밖에.
하지만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있다.
아직 인간관계에서의 순리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나 홀로 키워온 이상향의 끈을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미련만 가득 남아서. 바보같이 매일 밤 B612 행성의 존재를 쫓는 것처럼.
나는 늘 나의 이해자를 찾아다녔다.
외모, 능력, 명예, 부 모두 상관없었다.
'이해'. 그저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내 본질적인 공허함을 채워줄 나의 이해자.
내가 나의 이상을 붙잡고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을 늘 찾아왔다.
그러나,
내 주변의 그 누구도 나의 이해자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 누구도 말이다.
그 사실이 숨 막히게 나를 외롭게 만든다.
알고 있다.
세상은 타인에게 친절하지 않다.
자기 홀몸 먹고 살리기에도 벅찬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니까.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욕구를 주장하기에도 바쁘다.
그러니 크게 바라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이면 된다.
단 한 사람만 나를 이해해 준다면 나는 숨을 쉴 수 있다.
하지만 고작 그 한 사람을 찾아내는 게 왜 이리도 힘든지.
나는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숨을 틀어막고 살아야 하는 걸까.
내 내면을 바라봐줄 사람은 정말 없는 걸까.
나는 너의 내면을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는데.
너의 슬픔도, 결핍도, 숨겨놨던 이상까지도 나는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외모도, 능력도, 어쭙잖게 착한 마음씨까지도 다 제쳐두고
그냥 나 자체를 바라봐 줄 사람은 없는 걸까.
외로움에 사무친다.
세상을 대하는 내 태도가 변질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변화 속 모순을 발견한다. 그 모순이 또 혐오스럽다.
타인의 껍데기를 사랑하여 옆에 두는 너의 태도를 따라 해본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고 당연한 것이라며 따라 해본다. 허나, 머지않아 그만둔다.
흉내 내는 내 모습이 역겨워서 그만둔다. 그러다 서러움이 밀려온다.
이것마저 세상과 타협할 수는 없어서.
그건 나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 어딘가에는 나의 이해자가 있을 거라는 병신 같은 소리를 오늘도 지껄여본다.
예전보다 외치는 말소리가 조금 작아졌음을 느낀다. 힘도 조금 빠진 것 같다.
다음에 또 외칠 때는 지금보다 더 힘없는 소리가 아니기를. 그런 소박한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