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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Nov 04. 2022

04   블루투스 키보드로 신세계에 진입하기

  서른 후반 즈음에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어떻게 들어가는지 헤매는 한 어르신을 보았다. 별로 어려워보이지 않은 그 일을 그분은 쩔쩔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떠한 신문물이 몰아닥쳐도 능숙하게 다루며 시대에 맞는 인간이 되어 척척 잘 살아가야지 결심을 했다. 회사에서 기획일을 하면서 비교적 신기술과 신문물을 잘 다뤘고 세상 두려운 게 없었다.


  내가 첫 좌절을 경험한 때는 '페이스북'이 유행하던 때였다. 너도나도 페이스북을 가입해 뭔가를 끄적이고 먼 친구의 소식을 척척 알아내던 그 때, 나도 슬슬 시작해야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나도 기억도 잘 안나는 과거의 친구들이 '페이스북 친구가 되길 원합니다' 뭐 이런 제목으로 메일을 척척 보내는 것 아닌가. 물론 그 중에서는 반가운 친구의 이름도 있었지만, 옛 직장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동료들, 영업 사원이 되어서 동료들을 찾아다닌다던 몇몇 선배들, 그리고 대학원 시절 나를 따돌리던 몇몇 동기들까지 있는게 아닌가. 이 사람들이 나를 찾을 리가 없는데, 왜 나와 친구가 되길 원하나, 순진한 마음에 어떻게 거절해야하나 이메일을 열어볼 엄두도 못 냈다. 이메일 수신 확인을 안 한 척을 하려고. 게다가 더 테러블했던 것은 오래전에 조금 사귀다가 어영부영 헤어진 옛 남자들이 소식을 전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내 지나간 시절이 싫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늘 연락을 먼저 끊었고, 새침했고, 나도 모르겠다. 내 과거의 내가 왜 그랬는지. 나만 세상을 잘 아는 것 같았고, 나의 어리석음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었고, 그저 인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스무살의 에고 가득한 사람이었던 게지. 어느날인가는 학과에서 연 주점에서 양다리 걸친 두 남자를 시간 차로 초대해 놓고 두 명이 동시에 오는 바람에 도망간 적이 있었다는, 나도 기억 못하는 나의 지난 모습을 나의 친한 친구가 기억해 줄 만큼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그 남자들이 나를 친구로 찾는다니, 이 페이스북 미친거 아니야? 혼자 얼굴이 시뻘개지며 다시는 접촉하지 말아야할 부정을 타는 물건을 만진 것처럼 허겁지겁 빠져나온 적이 있다.


그때 이후로부터 나는 약간 새로운 세계의 일정부분은 내가 손대지 말아야할 성격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나는 넓히고 싶지 않은 인간 관계를 마구잡이로 넓혀주는 연결된 망, 그것이 신문화로 소개되고 전파되는 중에, 나는 이 문화와 맞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손을 떼게 되는 신문물의 영역이 생기게 되었던 것 같다. 


아이폰이 대세가 되고 아이클라우드, 구글 클라우드 뭐 이런 공유의 플랫폼의 세계가 일반적이 되고 있는 요즘, 나는 이제 늦었다 싶어 부지런히 따라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 집에서 놀고 있던 블루투스 기기들을 손대기 시작했다. 일단 작가가 되려면 카페에 가서 탭을 딱 꺼내고 착착 접힌 블루투스 자판을 꺼내 세팅하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될거라 믿는 만큼, 나는 오늘 처음으로 블루투스라는 기능을 이어폰이 아닌 다른 기기와 연결해 본다. 내 세상을 넓힌다. 


첫 연결부터 쉽지 않았다.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이 블루투스 키보드가 허접한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블로그에서 이게 연결이 잘 안된다고 해결방법을 줄줄 써놓은 걸 보면 저가 키보드라 연결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작가의 폼을 잡겠다고 생각한 이상 나는 오늘 꼭 연결을 하고 말것이다. 각종 블로그의 난해한 설명들을 숙지하고 어렵사리 블루투스를 연결했다. 


블루투스와 연결된 후에 탭 화면에서 깜빡깜박거리는 커서를 보며 나는 잠시 환희에 잠겼다.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모르는 영역이라 생각했던 기기와 기기의 연결, 내가 왜 모르기로 결심을 했었던가. 해 보면 다 이해할 수 있는 원리들이고, 나는 오늘 그것을 해 냈다. 


그 언젠가 개찰구 앞에서 허둥대던 노인처럼 나는 늙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조용조용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배워나가서 젊은이들처럼은 못해도 따라갈만큼은 배울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뒤처지지 않고 적당히 보폭을 맞추며 걸어갈 것이다. 나의 본성과 어울리지 않는 문화가 온다해도 어느 정도 따라가며 살 것이다. 


이 플랫폼과 공유와 연결의 시대에서 나도 자유롭게 헤엄치며 나의 자유를 누릴 것이다. 오늘 겨우 블루투스 연결 성공하고는 이렇게 나는 벌써 미래 신식 할머니가 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 계란을 장에가서 팔고 닭을 사서 더 많은 계란을 팔고, 그다음에...나는 벌써 꿈에 부풀어 있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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