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a Nov 04. 2022

05   환기

    

  4인 가족이 30평대의 아파트에서 하루 밤 일고여덟 시간을 들이쉬며 내뿜는 공기의 양은 얼마나 될까. 청소년 둘, 성인 둘이 밤새 뒤치락대다 떠난 집은 습습한 온기와 강아지 오줌 냄새가 뒤섞여 나른하기 그지 없다. 이 작은 집에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가. 가족이 다 떠난 오전 8시 20분.   

  

  나는 창문을 연다. 

우리집의 창은 모두 여섯 개. 여섯 개의 창을 모두 연다. 먼저 아들 방에 들어가 밤새 뒤척이며 보던 만화책와 마시던 물병이 뒹구는 사이로 발을 디뎌 창까지 가서 산으로 향한 창을 연다. 이 창은 산을 마주 보고 있어 산에서 부는 바람을 그대로 집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 더할나위 없는 신선한 창이다. 블라인드를 척척 감아 올리고 창을 열면 차가운 바람이, 그것도 아주 큰 통짜의 바람이 집안에 스윽 들어온다. 나오는 길에 아들 방에 뒹구는 물병과 떨어진 옷가지들을 대충 주워들고 나온다. 아들 방을 청소해주면 안 된다는데, 속으로 매번 생각하지만, 나오는 손에는 이것저것이 들려있다. 이 작은 청소로 아들 방은 사람이 살 수있게 유지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딸 방으로 간다. 딸 방에는 작은 베란다가 딸린 긴 창이 있다. 여기는 해가 너무 잘 들어 창문을 열면 바람보다 햇빛이 먼저 든다. 따뜻한 열기가 훅 방으로 들어온다. 어김없이 윗집 비둘기들이 내린 똥이 창가 여기 저기 흩뿌려있지만 비둘기 똥을 치우기엔 오늘은 참 추운 날이다. 딸 방에도 어김없이 잠옷과 책들과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있다. 여기서도 나는 작은 청소를 한다. 

거실로 나와 놀이터를 향해 나 있는 커다란 창을 연다. 그럼 우리집 강아지가 나보다 먼저 그 창 턱에 훌쩍 올라가 긴 밤을 새우며 기다렸다는 듯이 바깥을 내다보며 엎드려 앉는다. 강아지가 항상 그리워하는 바깥 공기, 소음, 향기. 강아지는 산책을 재촉하지도 않지만 누구보다 먼저 창가에 엎드려 바깥을 그리워한다. 밤새 긴 밤을 혼자 컨넬에 누워 내일 아침 창이 열릴 그 시간 만을 고대하고 있었으리라. 


  그리고는 부엌 싱크대 앞에 바깥을 향해 있는 작은 창을 연다. 이 창으로 멀리 테니스장이 보인다. 주말마다 젊은 청년과 아버지인듯한 사람이 테니스를 친다. 주말 오전에 나는 고단한 상태로 설거지를 하며 멀리 두 남자가 공을 치고 받는 걸 보며 왠지모를 쾌감을 느낀다.     


  온 집의 창을 열면 큰 바람이 집안에 불어닥친다. 산에서부터 밀려 내려온, 아침에 나무들이 부지런히 광합성을 하고 내뿜은 산소덩어리가 쿠글쿠글 굴러와서 내 집 창에 쏟아져 들어온다. 반대편 창으론 밤새 집안을 누르고 있던 열기와 보일러 온기, 그리고 네 명이 내뿜은 진득하고 느끈한 이산화탄소가 새 공기에 밀려 둘둘 말려 밖으로 쏟아져 나간다.      


  이내 집안은 바싹 마르고 시원해졌다. 집안은 가을 바람에 잘 마른 고추처럼 마르고 바삭거리고 내가 좋아하는 온도와 습도로 딱 맞춰진다. 나는 얼른 후드가디건을 걸치고 캡슐커피를 하나 내리며 이 바싹한 거실에 커피의 축축한 향기를 적신다. 이제 하루가 시작이 된다.   

   

  환기를 하며 나는 이 집의 하나하나에게 축복을 한다. 이 끈끈한 공기에 나를 누르고 있던 걱정과 불안이 붙어 나가기를. 밤새 끙끙 앓던 고민, 오래 해묵은 불안, 아이를 키우면서 누르고 있던 나의 욕망들, 그리고 표준에서 벗어난 나의 아이들의 미래, 감당하기 어려운 실패감, 무력감, 이 모든 것들이 마치 끈끈이에 머리카락 붙어 나가듯, 저 응집된 날숨 덩어리에 붙어 나가길. 저 바싹 마른 가을 찬 공기가 나의 속속들이, 머리카락 사이 속속들이, 피부 솜털 속속들이 다 들어차서 내 온몸과 내 온 영혼이 새 산소를 듬뿍 머금고 다시 꼿꼿이 일어나길.    


 나를 재창조하는 이 시간. 바람으로 나는 온몸을 목욕한다. 환기를 하며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애써 얻는다. 온몸 가득 새 힘을 채우고 하루를 시작한다. 부디 오늘 하루도 잘 견뎌 돌아올 수 있기를. 


                                                                      2022.10.27.

작가의 이전글 04   블루투스 키보드로 신세계에 진입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