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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Aug 29. 2016

사랑스러우니 간직하고 싶을 밖에

사진을 찍는 이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쉽게 잊혀 질지 모르는 상황들을 고이고이 간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하게 나는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 대체로 나는 기록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사진이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매우 정확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하늘이 무슨 색이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상세하게 알려줄 뿐 아니라 사진을 보면 불쑥, 그 날 공기의 느낌이 어땠는지, 함께 있던 사람과 어떤 감정을 나누었는지 까지 생생하게 느껴지곤 한다.    


좋아서 찍었다. 또 슬퍼서 찍었다. 우울해서 찍었다. 또 한 때는 찍어야 할 것 같아서 찍었다.     

사진을 찍는 방법은 간단하다. 셔터만 살짝 누르면 된다.    


그런 방법으로 시간을 가둬놓는다. 아주 작은 네모 안에 그 날을 묶어둔다.     


가두는 것들 중에서는 사물도 있을 테고 자연도 있을 테고 사람도 있을 테다. 원하는 것을 간직하려고 셔터를 눌렀을 때 원치 않는 것들도 가끔 담겨오곤 하는데 그것이 또 매력이다. 그런 점도 참 마음에 든다.  


초점도 빛도 모두 엉망인 사진


때때로는 정말로 원하던 풍경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 날도 있다.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속상한 마음이 드는 사진들. 그러나 속상함은 새로움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던 틀에 맞추어 보지 않는다면 색다른 사진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다. 흔들리거나 빛이 엉성하거나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들마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나는 빛나는 태양을 좋아한다. 웅장한 산맥도 좋아한다. 때로는 아주 작은 사물들이 귀여워 보이고 또 때로는 길고 긴 건물들이 멋져 보인다.


오늘은 구름이 예쁘고 지나가다가 본 강아지가 귀엽다. 걷는 길이 좋고 만난 가게가 신기하다.


낡은 상가. 독특한 구조가 예뻤다.


다행히 그것들은 내가 누르는 대로 찍혀준다. 가끔 성을 내긴 해도 기본적으로는 매우 순한 이들이다. 때로는 조용하다가도 무섭게 나를 다그치기도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우리는 그들의 일부고 그들 역시 우리의 일부다.


풍경 중에서는 특히 나는 겨울의 풍경들을 좋아한다. 


아마도 2월 말 혹은 3월. 늦게 온 눈에 감탄 했다.
아주 추운 날 만난 겨울 풍경.

봄이 되고 여름이 되었을 때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지난겨울에 붙잡아 둔 사진 속 풍경들이다. 그들은 내가 더위에 지친 것을 알기라도 하듯 누구보다도 시원한 겨울을 지니고 있다.


소복이 쌓인 눈과 사진을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 호호 불면 보이던 입김. 다음 해의 겨울이 올 때까지 찍어둔 사진을 보며 조용히 기다려본다.


정우 언니가 만들어 온 푸딩
선경이와 마셨던 맥주.

나는 곱고 아름다운 정성이 가득 들어간 요리들을 좋아한다. 중식도 한식도 일식도 양식도, 딱히 아주 싫어하는 음식도 없고 대체로 매운 것 빼고는 다 잘 먹는 편이다. 술도 적당히는 마시는 편이고 각종 디저트들도 사랑해 마지않는다.


여름이 오기 전 먹었던 수제 버거. 낮부터 맥주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하는 요리도 좋아하고 남이 해 주는 요리도 좋아한다. 패스트푸드도 좋아하고 슬로 푸드도 좋아한다. 돈을 지불하고 얻는 맛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게 아까워 나는 사진을 찍는다. 특히나 예쁜 음식을 봤을 때 혹은 비싼 돈을 주었을 때는 한 컷이라도 더 찍어 놓으려고 애를 쓴다. 혹여나 맛이 없으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다시 오지 않게 된다면 추억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크리스마스가 되기도 전에 찍었던 크리스마스 사진.
얼마 전 예쁜 얼굴을 담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좋아한다. 특히 남이 찍어주는 사진을 어색해하는 사람의 얼굴을 좋아한다. 어쩔 줄 몰라하는 어색한 표정도, 가끔 나오는 날 것 그대로의 느낌도 모두 새롭고 신비하다. 또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우니 사진도 사랑스럽다. 나는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진 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정말로 좋아한다.     

   

함께 책을 냈을 때 노란 책을 찍어주었다.
사람마다 모두 모양이 다른 손.

또 나는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한다. 흘러가는 엄마의 손 주름이나 누군가가 아주 좋아한다며 자랑하던 바지, 나에게 건네준 사탕, 그러니까 사람이 묻어있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가 따 준 조금은 촌스러운 목도리가 좋은 이유다.


그런 것들은 사람 냄새가 난다. 따듯한 사람의 냄새.


-


나는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외울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감사한다. 하마터면 모두 마음속에만 품어야 할 뻔했던 것들을 눈으로라도 간직할 수 있어서.


기억력 나쁜 나는 사진들을 날자 별로 분류해놓고, 원하는 사진이 있을 때마다 꺼내곤 한다. 그렇게 꺼낼 때마다 또 한 번 훑고, 이땐 그랬었는데 하며 추억에 잠긴다. 생각만으로라도 과거에 잠시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사랑스러우니 간직하고 싶고 다행히도 간직할 수 있는 시절이다.

그렇게 나는 또 사랑스러운 것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민다.


사랑스러우니 간직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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