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도, 입으로도 즐거운 밥상.
우리나라 가정식, 즉 백반은 사실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아니다. 집에서 매일 먹을 수 있는 밥이라는 친숙한 이미지에, 그렇게 비싸지 않은 가격에 한 끼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느낌. 주 메뉴는 역시 불고기나 생선 구이 류 혹은 순두부, 된장찌개정도. 이 음식들은 한입 푹 떠서 와구와구 먹어야 제맛일 것 같고, 입안 가득 쌈을 싸서 먹어야 할 것만 같다.
이런 투박한 이미지를 가지게 된 데에는 우리나라 '식당'의 분위기가 한 몫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많은 백반집은 대부분 허름하고 좁다. 사람이 많을 땐 시장통 처럼 시끄럽고, 사람이 없으면 파리가 날리는 듯한 분위기. 사용하는 식기 역시도 저렴한 플라스틱 식기들. 그래서일까, 그래서 집 밖을 나서서 누군가와 약속을 잡을 때 우리는 백반집으로 잘 가지 않는다. 아주 유명한 기사식당과 같은 곳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물론 요즘에 생겨나는 백반집은 정갈하고 모던한 곳도 많다.)
반대로 일본 가정식을 생각해보면, 정갈하고 소박하지만 맛있는 요리가 떠오른다. 카레, 덮밥, 돈가츠,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우동. 왠지모르게 사근사근한 느낌이 든다. 특별한 요리들은 아닌데도 나를 위해 차려놓은 것 같아서 즐겁다. 보기에도 깨끗하고 예쁠 뿐더러 맛 역시 대부분 깔끔하다.
이 역시, 일본 가정식 식당의 분위기가 만들어 낸 하나의 '환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부분의 일본 가정식 식당에 가면 모던하거나,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공간에 감각적인 소품들, 정갈한 메뉴판, 그리고 예쁜 식기들까지. 마음을 설레게 할 것들이 한가득 놓인 공간에서 즐기는 한 끼는, 입으로만 만족하는 식사가 아닌 눈까지 호강하는 식사이니 말이다.
한강진역에 위치한 라운드 어바웃이라는 일본 가정식 식당. 공간 자체가 아주 예쁘진 않지맛 곳곳이 감각적이다. 이런 물컵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배치되어있어 구석 구석을 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시, 일본 가정식 식당이구나 싶기도 한 곳.
스파이시 에비 카레(9.0) + 돈가츠(4.0) + 갈릭후레이크(1.0) + 어니언후레이크(1.0)
정갈하게 담겨져 나온 일본식 카레와 돈카츠, 그리고 소박한 네가지 찬. 반찬 가짓수나 인심만 봐도 우리나라 백반보다 한참 모자르지만, 갖가지 예쁜 식기에 정갈하게 담겨나오니 보기에 너무나도 즐겁다. 열을 맞춰 올려놓은 접시에서부터 정성이 가득 느껴진다.
스파이시 에비 카레는 독특하게 매콤한 일본식 카레다.나는 마늘과 양파를 좋아해서 두가지 후레이크를 모두 추가했다. 혹여나 일본식 카레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후레이크를 추가하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는 여기에 돈카츠도 추가했는데, 4천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훌륭한 돈가츠였다. 함께 제공되는 소스가 일반적인 돈가츠 소스가 아닌 숯소금이라는 것이 재미있는데, 이 소금은 그냥 짠 것이 아니라 향긋하기까지 해서 돈가츠와 함께어우러질 때 꽤 괜찮았다.
명란 크림우동(9.0)
분홍색 색감이 참 예쁜 명란 크림우동을 물결치는 파란 식기에 담으니 일단 보기에 예쁘다. 명란 크림우동은 크림 소스를 베이스로 한 명란 우동인데, 크림스파게티에 명란젓을 추가한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여자라면 좋아할 것 같은 그 맛. 면이 우동면이라 더 깔끔하다. 작은 명란은 고소하면서도 씹는 맛이 있다.
네가지 찬은 피클과 마늘 쫑, 마카로니와 콩 샐러드, 연두부가 제공되는데, 리필은 불가능하다. 사실 주 메뉴에 많은 반찬이 필요하지는 않기 때문에 리필할 일이 많지 않기도 하다.
일본식은 어딘가모르게 친숙하면서도 예의있다. 적당히 친하기는 하지만 아직 말을 놓지 않은 상대라고나 할까. 그래도 가끔 보고싶고, 또 보면 즐거운 상대이기도 하다. 또, 가게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 그 가게의 정취를 느끼는 것도 매력있다. 일본 가정식 식당 대부분은 식기류 역시 고심해서 고르는 경우가 많아 접시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게다가 추가 메뉴의 폭이 넓은 편이라 메뉴를 구성하는 것도 즐겁다. 어떤 곳은 밑반찬도 선택할 수가 있어 하나의 쟁반에 원하는 반찬들로만 가득 메꿀 수 있다.
'가정식'이 주는 소박함과 '일본 특유의 정취'가 주는 다채로움이 섞인 일본 가정식, 추워지는 계절에 소박하고 따듯한 한 그릇 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나라 백반의 그 든든함과는 또 다른 따스함이 몸을 덥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