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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Dec 12. 2015

위로가 담긴  패스트푸드

눈치도 뭣도 필요 없는,  패스트푸드 식당.

이번 연도 초, 휴학 후 회사를 다녔었다. 경력이 없었던 나지만, 운이 좋게도 한 의료 컨설팅 회사에 정식 직원이 되었고, 대우 또한 어느 곳 부럽지 않았다.


나의 첫 사회생활이니만큼 나는 꽤나 의욕을 부렸다. 내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게끔 더욱 한 발 앞서려고 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대표님이나 차장님이나 그런 나를 꽤 예뻐해 주셔서 내가 하는 일은 거의 나에게 맡겼고, 나 역시 책임을 다 할 수 있게끔 애를 썼다.  직원들끼리도 따로 만나서 밥을 먹을 정도로 친했고,  그중 특히 차장님은 나와 많이 친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 밥을 사주시곤 했다. (차장님이 여자분이셨다.) 야근은 대표님이 싫어하셔서 없었고,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일찍 퇴근했으며, 맡은 일을 다 하면 개인 업무를 보고 와도 괜찮을 만큼 여유로운 곳이었다. 이 외에도 정말 셀 수 없는 혜택을 받으며 회사를 다녔었는데,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국내에 이런 곳이 얼마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만족스러운 첫 사회생활 속에서도 무언가 답답한 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라서 집에가면 매일같이 고민하기 일쑤였는데,  한두 달쯤 지나니 알 수 있었다.  내가 온전히 혼자 지내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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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우 외향적인 성격이지만, 동시에 매우 내향적이다. 얼핏 들으면 모순적인 말 같지만 두 성향이 함께 있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가리는 것이 없고, 누구나와 잘 친해지는 편이지만 혼자 생각하는 게 많고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 어쩌면 가장 복잡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지칭했던 '외향적인 내향적 인간'의 특성을 본 적이 있는데, 전부 맞진 않았지만 몇 가지는 꽤 들어맞는 것이 있었다. 혹시나 아래 문항들 중 공감하는 게 많다면 당신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 그룹보다 1:1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 아무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을 때면 카톡 답장을 안 해 종종 면박을 당한다.

- 이불 밖으로 나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막상 나가면 잘 논다.

- 카페 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걸 좋아한다.

- 집단 모두와 친해지기보단 집단 내 1-2명과 정말 친해진다.


총 스무 문항 중 몇개 정말 아니다 싶은 것들도 있었지만, 이 다섯 개는 특히나 나다! 싶을 정도 공감이 갔었다. 사람의 성격이란 게 애초에 하나로 정의되는 게 아닌데, 여태 스스로가 외향적인 사람이라는 틀에 가두어 놓고 그에 맞추어 살아가려 했으니 그 또한 하나의 고문이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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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닐 땐, 다녀 본 사람은 알다시피 혼자만의 시간이란 게 없다. 아침 일찍 생각 없이 출근해서 맡은 일 끝내고, 여섯 시 반 퇴근해서 생각 없이 집 오면 일곱 시  반쯤. 밥 먹고 누워있다가 자고 일어나서 출근하고- 의 반복.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나처럼 게으른 사람들은 취미생활이고 뭐고 일단 누워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문제는 이런 시간들 조차, 완벽한 '혼자'의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약  한두 달 간, 나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전 까지는, 주말에 집에 틀어박혀서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두 달 후, 내가 처음 시도해 본 건 선릉에서 잠실까지 걷기. 회사가 선릉이었고, 집에 가려면 잠실을 거쳐야 했기에 이 구간을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섯 시 반, 퇴근하면 선릉역에서 출발, 삼성역, 종합운동장 역까지 가면 그 근처 공원에서 한 바퀴 산책을 하고, 다시 걸어서 신천역, 그다음이 잠실 역.


빠르게 걷는다면 그리 오래 걸리는 구간은 아니었지만, 나의 목표는 빨리 걷기가 아닌 나만의 시간  가지기였으므로 느릿느릿, 그 동네를 모두 탐방하듯 샛길까지 구석구석 걷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늦어도 여덟 시에 집에 도착하곤 했는데, 걷기 시작한  날부터는 빨라도 열 시에 집에 도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보다 활력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걷는 시간'을 고대하며 회사를 갔고, 퇴근 시간만 되면 밥 약속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쩌다 밥을 한 끼 먹게 되더라도 적당한 시간에 헤어져서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서 느낀 건, 내가 길에서 작게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나를 안  쳐다본다는 것.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치고 있었지만,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좋아하던 가수의 곡을 흥얼거리며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거나 공원을 산책했고, 좀 더 걷고 싶은 날엔 한강 공원에 가서 우두커니 앉아있곤 했다. 놀랍게도, 이런 방법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되었고, 또 당분간은 즐겁게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문제는, 비가 오는 날. 그리고 중요한 미팅이 잡힌 날, 그래서 구두를 신은 날.


이런 날은 그냥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걷기라는 게 이렇게 제약이 많은 지 그 당시 처음 알았다. 어떤 때는 월-금 총 5일 중 4일이 퇴근 시간에 맞춰 비가 왔었는데, 당시 나의 모습은 내가 봐도 가관이었다. 얼굴에 그늘이 진 데다 뭔가 축 쳐져서 기운 없어 보였고, 오죽하면 아프냐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때 나를 구해준 건, 바로  패스트푸드 점 이었다.


혼자라도 다른 식당엘 못 갈게 뭐 있겠냐마는, 퇴근 시간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특히 강남 근처다 보니 회식하는 사람이 와글와글, 그 와중에 혼자 식사하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그러나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던 곳, 바로 패스트푸드 점. 이 곳의 사람들은 내가 찾던 거리의 군중과 꼭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날 좋은 날은 걷고, 비가 오면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하고, 그러다 비가 그치면 걷기까지 했다. 지금 보니까, 혼자 있으려고 용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짓을 한 달  반쯤, 그 후엔 점심도 가끔 혼자 먹었다. 약속이 있다고 하곤 나가서 혼자 빙수를 먹거나 또  패스트푸드점엘 가거나. (일주일에  두세 번은 갔던 것 갔다.)


당시 점심에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치고 먹었던 빙수. 혼자 빙수 먹은 날을 기념했었다.



혼자 빙수를 먹은 날은, 왠지 모르게 뿌듯하기까지 해서 친구들에게 자랑도 했었고, 당시 먹은 빙수가 또 기가 막히게 내 취향이었던 지라 더욱 신나 있던 내가 기억난다.


5월의 어느 날, 그 날도 맥도널드를 갔었다. 마침 또 한정판 감자 메뉴가 있다길래 함께 주문했었다. 컬리 프라이였던가. 이 날은 왠지, 사치를 부리고 싶었던 날이었기에 풍족하게 주문했었다. 1955 버거 라지 세트에, 맥 윙 두 조각, 컬리 프라이. 내 기억으로는 다 먹고 콘도 하나 먹었던 것 같은데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웃긴 건, 내가 밑에 종이를 빼고, 포장 제거하고, 휴지와 영수증을 치우고, 사진 찍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배치를 바꾸고, 또 사진을 찍을 때 까지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는 것!


군중 속에서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일은, 생각보다 짜릿하고 즐거운 일이다.



오늘 맥딜리버리로 주문하면서, 과거의 그 날들이 지나쳐갔다. 오늘도 역시 1955 버거를 주문했다. 건강식도 아니고, 몸에 좋은 것 하나 없는 이  패스트푸드가 나에겐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었는지 모른다. 집에 있을 땐 딜리버리를 하는 편이지만, 밖에 나가서 배가 고픈 날, 마침 혼자라면 꼭 매장으로 간다. 나 참, 글을 쓰면서도 스스로가  웃긴 애 같다. 아니, 웃기는 애다.



회사를 다니던 날들도 주야장천 1955 버거만 먹어댔다. 베이컨의 짭짤함과 맥도널드 특유의 패티, 그리고 1955 버거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소스. 아주 독특한 맛은 아닌데, 이상하게 다른데서 본 적 없는 맛이다. 나에게만 매력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꽤나 인기가 많은 메뉴로 등극되었다.



방황이 필요했던 시절에, 포만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준 패스트푸드.(걷긴 했지만 살도 함께 주었더란다.) 덕분에 아직까지도 햄버거만 보면 생각이 난다. 그래서 더 맛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를 온전히 혼자로 만들어 준 매개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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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와 패스트푸드를  즐기면서부터는, 마음이 힘든 적은 없었다. 오히려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니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고, 그 결과 회사를 관두긴 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는 나에 대해 더욱 탐구하는 계기가 되어 지금은 예전보다 나 자신을 많이 알게 되었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보듬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모르는 부분은 너무나도 많지만!


살아가면서 또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지 않을까. 치명적인 단점이 아니라면, 나의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날 때 얼마든지 환영할 생각이다. 두렵지 않다. 그것도 어쨌든 '나' 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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