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브랜드&법 이야기 ⑦: 저명성
| 루이비통보다 빛나는
TV를 즐겨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몇 프로그램은 매 시즌 꼭 챙겨보는 편이다. ‘쇼 미 더 머니(이하 ‘SMTM’)’가 대표적인데, 이제는 예전만큼의 인기도 아니고 신선한 참가자들의 수도 적어졌지만 그래도 나는 가을이면 또 홀린 듯 설레는 마음으로 SMTM의 시작을 기다린다.
탈락자에겐 아쉬움이, 하지만 우승자에게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전형적인 컴피티션 구조를 띈 이 프로그램에는 매 시즌 수많은 신예 래퍼들이 줄 지어 도전하고 있다.
이번 시즌에서 눈에 띄는 지원자를 꼽으라면 누굴까. 많은 이들이 스무 살 청년 ‘비오’를 말할 것 같다. 그가 예선 2차 불구덩이 앞에서 밤하늘의 별을 찾던 목소리는,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고 어딘지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그는 지난 시즌의 원슈타인을 떠올리게 하는 음색을 지녔다)
Counting star, 밤하늘의 펄
Better than your Louis Vitton, Louis Vitton…
비오를 비롯한 많은 참가자들은 (루이비통보다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들을 홀로 세며, (염따의 표현을 빌면) 눈물을 잉크 삼아 반 지하 방 한 칸에서 가사를 쓰고 지우고 또 다시 써내려 가며 수많은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그들의 절망과 희망, 고민과 절실함이 와닿을 땐 문득문득 소름이 돋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브랜드를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브랜드가 루이비통만큼 혹은 루이비통보다 더 반짝이며 빛나기를 꿈꾸지만, 경쟁에서 살아남아 화려한 지위를 획득하는 브랜드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법적으로는 이렇게 유명세를 얻은 상표에 대해 ‘저명성’을 획득했다고 표현하는데, 오늘은 이러한 ‘저명상표’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다.
| ‘저명상표’란
저명상표란 쉽게 말해 ‘널리 알려진’ 상표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부터 코카콜라나 나이키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까지, 저명성을 획득한 상표의 종류나 품목에는 제한이 없다.
상표법은 저명상표에 대해 조금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 ‘수요자들에게 현저하게 인식되어 있는 상표’라고 하는데, 이때 만일 현저히 인식된(=대다수가 알 정도) 정도가 아니라 그저 잘 알려진(=상당수가 알 정도) 정도에 불과하다면? ‘주지상표’는 될 수 있어도 ‘저명상표’로까지 보호되지는 않는다.
일단 저명상표로 인정되면 해당 상표는 일반상표나 주지상표보다 강력하게 보호된다. 앞서 상표권은 기본적으로 혼동을 일으키는 것을 배제하는 효력이 있다고 했는데, 저명상표의 경우에는 혼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없더라도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할 우려만 있다면 상표의 등록이 배제된다. 나아가 동일, 유사한 상품 및 서비스뿐 아니라 이종의 상품 및 서비스도 등록할 수 없게 된다. 유명해지면 이렇게 특혜(?)가 많다.
| ‘저명상표’의 판단기준
그러면 저명상표의 판단기준은? 안타깝지만 아직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어떤 상표가 저명상표인가 여부는 그 상표의 사용, 공급, 영업활동의 기간, 방법, 태양 및 거래 범위 등과 그 거래 실정 또는 사회통념상 객관적으로 널리 알려졌느냐 여부 등이 일응의 기준이 된다고 일반론을 설시하면서, ‘샤넬’, ‘구찌’, ‘LG’, ‘KT’, ‘인텔’, ‘월마트’, ‘미니마우스’ 등을 저명상표로 인정했고, ‘타이레놀’, ‘설화수’, ‘디오스’ 등의 저명성은 부정했다.
이러한 판결에 따라 저명상표로 인정된 브랜드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샤넬이라면 해당 상표는 코스메틱이나 피혁 등 브랜드뿐 아니라, 이종 업종인 전자제품이나 스포츠용품 등에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저명한 상표에 대해서는 일반 수요자들의 기대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상표의 재산적 가치를 보다 강력하게 보호하기 때문이다.
| ‘저명상표’ vs ‘보통명칭’
이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는데, 저명한 상표가 더 유명해지면 다시 위험 요소가 생겨난다는 점이다. 해당 상표가 인기 있다 못해, 사람들이 이제 그 상표를 '제품명'으로 인식하고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여러분도 잘 아는 ‘초코파이’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법원에 따르면, 초코파이는 이제 ‘저명상표’를 넘어서 ‘보통명칭’의 반열에 올랐다. 즉, 이제는 누구나 초코파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초코파이를 만든 오리온으로서는 땅을 칠 일이다.)
반면 '코카콜라'는 세계적인 저명상표이지만 치밀하고 노련한 상표 관리를 통해 아직도 보통명칭화 되지 않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상표가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보통명칭이 되어 버리기 쉽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의 상표 관리가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이뤄지고 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상표는 출원하는 것만큼이나 관리도 중요하다. 한번 유명해지기도 어렵지만 그 유명세를 지키기 어려운 것은 흡사 연예인과도 유사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일단 유명해졌으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