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브랜드&법 이야기 ④: 저작인격권
지난 시간 패러디 이슈를 다뤘다. 패러디하면 떠오르는 케이스들이 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도 ‘아웃백 모텔’ 케이스로 시작해 볼까 한다.
문제가 된 아웃백 모텔의 외관은 이렇다.
일단 기발하다. 그리고 나서는… 어디서 본 듯한데 어디더라…?
맞다. 사진상 노란 박스로 표시된 이 모텔의 로고는 분명 우리가 잘 아는 패밀리 레스토랑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의 로고와 닮았다.
‘아웃백’이라는 알파벳 위로 기다랗게 놓여있던 ‘사막(?)’ 대신에 요염한 분이 누워있고, ‘스테이크하우스’라는 문자 대신 ‘드라이브인 모텔’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지만, 전체적인 룩앤필(look & feel)은 영락없는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다.
그러면 아웃백 모텔을 본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의 반응은 어땠을까? 당연히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실제로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는 3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실제 피해규모는 25억 원이 넘는다고 주장하였음).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원은 아웃백 모텔로 하여금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에게 9천만 원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어찌 보면 너무 적은 금액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판결로 아웃백 모텔은 위 사진상의 간판은 물론, 로고가 찍힌 수건, 가운, 실내화, 브로셔 등등 세부 물품들까지 몽땅 교체해야 하는 결말을 맞이했으니 타격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판결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보면, 사실 법원은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의 3가지 주장(상표권 침해, 영업주체 혼동, 이미지 손상) 중 하나의 주장만을 받아들였다. 왜일까.
먼저 상표권 침해 주장이 인정되지 않은 이유를 보자. 이는 상표권의 특징 때문인데, 기본적으로 상표권은 업종에 따라 달리 인정될 수 있는 권리라서 그렇다. 즉,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가 상표권을 등록할 때 자신의 사업 범위에 모텔업을 포함시켰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모텔업을 하는 사업자는 같은 이름의 상표를 사용할 수 있다.
다음으로 영업주체 혼동 주장이 인정되지 않은 이유는, 아웃백 모텔 숙박객 중에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인 줄 알고 들어간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아무래도 업종이 다르면, 소비자가 영업주체를 혼동할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지게 마련이다.
결국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의 주장 중 상표권 침해나, 영업주체 혼동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다. 다만 아웃백 모텔이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의 이미지에 타격을 가했다는 점만은 인정되었는데, 지난 시간 이야기했던 부정경쟁방지법상 ‘저명한 상표의 명성에 손상을 가한 행위’를 떠올려보라.
자, 오늘은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보자. 상표의 ‘명성’에 손상을 가했다니… 그렇다면 상표와 같은 지적재산권에도 사람처럼 존중되어야 할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일까.
저작물에도 인격이 있다?
지적재산권, 특히 저작권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저작인격권’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거다.
‘저작물’을 저작자의 ‘재산’으로 이해하는 영미법계에서는 저작인격권이라는 개념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 법을 포함한 대륙법계에서는 저작물을 저작자의 재산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저작자 인격의 발현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저작권을 이야기할 때 재산적 권리인 ‘저작재산권’ 외에 인격적인 권리로서 ‘저작인격권’도 인정한다.
그러면 ‘저작인격권’에는 어떤 권리들이 있을까. 크게 다음과 같은 3가지의 권리가 포함된다.
①공표권
②성명표시권
③동일성유지권
말이 좀 어려운데, 조금 더 쉽게 그 의미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공표권: 저작자는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을 세상에 공개할지 말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성명표시권: 저작자는 저작물에 자기의 실명 또는 이명(예: 필명)을 표시할 권리가 있다.
동일성유지권: 저작자는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의 내용이나 형식, 제목 등을 동일하게 유지할 권리가 있다.
다만, 위의 각 권리들은 무한정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어서, 일정한 경우 공표에 동의했다고 추정되거나(예: 공표를 한 것은 아니지만 해당 저작물을 ‘도서관에 기증’한 경우), 성명표시를 생략할 수 있거나(예: 정당한 권리를 확보한 음악을 매장 내에 틀어 두는 경우), 동일성 유지권이 침해되지 않았다고 해석되기도 한다(예: 오탈자가 있는 작품의 오탈자를 정정하여 출간하는 경우).
저작인격권과 관련한 재미있는 사례 중 ‘프로야구 응원가’ 케이스가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텐데, 몇 년 전 야구장에서 응원가가 싹 사라졌던 적이 있다. 그 이유가 바로 저작권자들이 문제 제기한 ‘저작인격권’ 이슈 때문이었다.
“야구장은 세계 최대의 노래방”이라는 허구연 해설자의 말처럼, 야구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경기를 직관하는 재미만큼이나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며 환호하는 재미도 즐기는 것 같다. 그리고 이때 관중들이 무심코 부르는 응원가들에도 당연히 그 노래를 만든 저작권자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저작권자들 중 일부는 자신의 작품이 동의 없이 ‘개사’되거나 ‘편곡’되어 마치 ‘노래방 안주처럼’ 불리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고.
변호사의 관점에서 보면(=사건을 재미없게 법적 관점으로 해석하자면), 이 케이스는 다수의 ‘저작권자들’이 ‘저작인격권’, 특히 저작인격권 중에서도 ‘동일성유지권’ 등의 침해를 주장하며 각 프로야구 구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라 하겠다.
다행히(?) 윤일상 씨 등이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제기했던 4억 2천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저작권자들이 패소했고, 이후 이어진 소송에서도 저작권자들이 잇달아 패소하면서 격앙되었던 분위기는 수그러들었지만, 응원가의 저작인격권과 관련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세상의 다양한 저작권자 중 내 노래가 변형되어 응원가로 쓰이길 바라지 않는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저작자들에게는 작품의 동일성을 유지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
그러니 각 구단들도, 전 국민이 따라 부를 응원가를 만들 때에는 적어도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거나 양해를 구하는 절차는 거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나저나 최근엔 코로나와 NC 사태로 프로야구 경기 자체가 열리지 않고 있으니, 언제쯤 다시 열띤 응원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