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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석현 Jun 27. 2023

뼈 때리는 이야기_10

가지 마른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가정을 이루고 살다보면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이 많이 생긴다.

반면에 골치아픈 일들도 계속해서 일어난다. '가지 마른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괜시리 생겨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어느 날 화장실 변기 바깥으로 계속해서 물이 흘렀다. 아내가 청소를 하다가 뚜껑을 수조 안쪽으로 떨어트렸다고 한다. 일단 변기로 공급되는 수도를 잠궜다. 볼트나 다른 부분의 문제일까봐 수조 아래쪽으로 손을 넣어 볼트도 다시 돌리고 이리저리 살펴봐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변기 구조는 단순한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유튜브를 통해 한시간 동안 '변기 누수' 관련 영상을 찾다 보니 본의 아니게 변기 박사가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변기 안쪽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그 후에야 드디어 숨겨져 있던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변기 수조바닥에 쌓인 파란색 세정제에 가려 안 보이던 1cm정도 되는 깨진 홈이 드러났다. 무거운 뚜껑이 수조 내부로 떨어지며 모서리가 정확히 수조 바닥을 찧은 것이다. 공휴일이고 시간도 밤9시가 넘어서 수리 기사를 부르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분명히 저 홈만 어떻게 하면 문제가 해결 될 것 같은데... 하필 저녁을 먹으며 와인을 한잔 해서 운전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집 근처 이마트를 검색해보니 밤10시에 문을 닫는다. 조금 떨어진 홈플러스를 검색해보니 24시까지 운영을 한다. 아내 운전을 해서 홈플러스로 갔다. 가는 내내 아내는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계속해서 사소한 일거리들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짜증이 올라왔지만 짜증만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홈플러스에 도착해서 예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믹스 앤 픽스'라는 다목적 에폭시 퍼터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시간이 밤12시가 다 되었으니 바로 시공하면 아침까지 7시간 동안 화장실을 못쓴다. 내일 아침에 시공을 하면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까지 8시간 동안 화장실을 못쓴다. 오늘 밤에 시공을 하는 것이 나은지 내일 아침에 하는 것이 나은지 머리를 굴려봤다. 일단 난생 처음 사용하는 에폭시 퍼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굳기는 잘 굳는지 테스트를 해볼 요량으로 장갑을 끼고 살짝만 잘라서 조물조물 섞어봤다. 조금 있으니 조금씩 뜨거워지고 시멘트 냄새가 나면서 뭔가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듯 했다. "그냥 지금 한번 붙여볼까?" 하는 생각이 든 순간 변기로 가서 수조 내부를 휴지로 급하게 닦아내고 건조시켰다. 물기를 거의 다 말리고 퍼터를 붙이고 밤새 선풍기를 틀어놨다. 아침에 일어나서 변기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공급해봤다. 물이 안샌다. 성공이다. 이렇게 나는 변기박사가 되어버렸다. 이제 변기에 대해서는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어젯 밤 변기에 대해서 한시간 찾아본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성공적으로 시공을 마치고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변기에서 물이 새기 시작한 어젯 밤부터 아내에게 짜증도 났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짜증을 낸 내 잘못이다. 아내로 인해서 나는 또 이렇게 하나를 더 알게 되었으니 아내야말로 나의 스승과 다름없다.

"당신이 없었으면 내가 어찌 변기 박사가 되었겠냐?"고 하니 아내는 미안한 표정과 함께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살아가며 쓸 일은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하나라도 알아두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내가 어찌 반 의사가 되었을까. 아이들이 어릴 때 크고 작은 병치례와 사건 사고들이 있었으니 병원을 드나들고 책과 인터넷을 찾아보며 사소한 의학지식을 쌓게 된 것이다. 또한 아내가 없었으면 내가 어찌 변기 박사가 될 수 있었겠는가.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이 없었으면 어찌 아내가 요리 박사가 되었겠고 주부 9단이 되었겠는가. 가족은 그런 것 같다. 함께 있어 행복할 때도 있지만 함께 있어서 불편하고 번거로운 일도 생길 수 있다. 나와 가장 오래 붙어있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그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가족이 있으니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겠는가.


때로는 혼자살며 누릴 수 있는 홀가분함과 단출함을 떠올려보며 부러움에 잠길 때도 있다.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한 집에 사는 가족이란 것이 보고 싶을 때 보고 보기 싫을 때 안 볼 수 없으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아무래도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할 것 같다. 어찌 인생이 늘 좋을 수가 있을까. 좋은 일도 평생 가지 않고, 나쁜 일 또한 평생 가지 않는 것을... 가지 많은 나무에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부디 현명하게 걸러낼 수 있는 지혜를 얻기를 바라며 오늘도 한 줄 읽고 한 줄 써 내려간다.


실패는 많이 할 수록 좋지만 실수는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다. 실수를 많이 하면 사람이 우스워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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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브런치의 모든 글은 생각이 날 때마다 내용을 조금씩 윤문(潤文)하여 완성된 글로 만들어 나갑니다. 초안 발행 이후 반복 수정하는 과정을 꾸준히 거치니 시간이 지날수록 읽기가 수월하실 겁니다. 하여 초안은 '오탈자'와 '문맥'이 맞지 않는 글이 다소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점 양해 구하겠습니다. 아울러 글은 저자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글입니다. 근거없는 비난은 거르겠습니다. 하오나 글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 독자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겸허한 마음으로 활발히 소통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분들로 인해 글을 쓸 힘을 얻습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저자 박석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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