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엄마와 나 사이에는 그 한마디가 없어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세상에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결핍되었다. 가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을 보면 구김살이 없다. 나에게 있는 그늘이 그들에게 없는 것이 분하고 서럽다. 나도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 지금의 고통들이 없진 않을까란 생각을 하곤한다. 쏟아진 물들을 두 손으로 주워 담는 짓같다. 부질없다는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따듯함을 바랐고 엄마는 처음부터 그것을 해줄 수 없다고 했었다. ‘엄마는 엄마인데’ 그게 어려울까라고 나는 반문했다. 나의 상처를 품어주길 바랐고, 나의 울음을 닦아 달라는 거였다. 엄마는 늘 차갑고 냉정했다. 나는 엄마를 닮지 못해 모질지 못하고 눈물이 많았다. 어쩌면 엄마는 그 많은 눈물을 닦다 지쳤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많이 흘러 엄마가 나를 키우던 나이가 다가오니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차피 울을 일이 많은 나를 거 울려야 했었는지.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울었던 나였다. 시골 남자아이들은 짓궂어 내가 입은 겉옷에 낙서하고 놀려댔다. 퍽 하면 울어대는 내가 제일 놀림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엄마를 닮아 야무지게 생겼는데 마음은 누굴 닮았는지 물렁물렁해 울음이 많다고 혀를 찼다. 엄마도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제발 밖에서 울지 말라고 다그쳤다. 밖에서 운 날이면 벌게진 눈을 들킬세라 밖에서 눈물 자국을 말리고 집에 들어갔다. 덕분에 나는 울지 않은 척을 잘했다. 눈을 비비지 않고 우는 법을 일찍이 깨우쳤다. 또 소리 내지 않고 울 줄 안다. 그럴수록 내 눈물은 더 단단해졌다. 눈물은 단단해질수록 심장에 꾹꾹 박힌다. 자국이 남아 상처가 된다. 나의 모든 상처를 엄마탓으로 하고 싶지 않다. 잠이 오지 않을 만큼 기억을 담고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짝사랑하는 것만큼 그리워했고, ‘잘한다’라는 한 마디를 간절히 원했다. 그 말은 나에게 여전히 어려운 숙제이다. 가시 같은 말을 내뱉는 것도 힘든 일이다. 마음에서 입으로 내뱉어지는 과정에 날카로운 가시가 나 자신을 찌른다. 고슴도치도 자기 가시에 찔릴까. 나는 내 가시에 찔려 아파하는 고슴도치 같다.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쉬운 후회가 나에게는 흔했다. 끊어진 인연의 끈 앞에서 더는 미련을 부릴 힘도 없다. 흔한 후회를 이어줄 따듯한 말 한마디도 이젠 없다. 없는 것투성이다. 남은 것이 없으니 버릴 것도 없다. 그리고 서로의 마지막 말은 아쉽게도, 따듯하지 못했다.
지나간 사랑에는 아쉬움이 많다. 엄마와의 관계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왜 그러지 못했겠느냐는 아쉬움. 내가 엄마의 나이가되면 이해할 수 있을까. 라고 가끔 생각한다. 사실은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엄마에게 많은 비난을 했다. 또 엄마의 말들을 거부했다. 엄마의 비난을 견디지 못했기에 나도 똑같이 상처를 주었다. 서로가 주고받은 상처들을 이해하면 오히려 고통이지 않을까. 쏟아냈던 미움의 말들을 뒤늦게 이해한다고 상처가 없었던 일로 되는 게 아니다.
제대로 이별하는 방법 따윈 없다. 그 사람을 말하는데 눈물이 나지 않고, 문득 그 사람 생각에 울지 않는 것. 마음이 시리지 않다면 이별한 게 아닐까. 애정을 구걸하며 한마디만 해달라고 애닳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 서툴지만 나는 엄마와의 이별을 그렇게 차근차근히 해냈다. 종종 동생이 전하는 엄마 소식에 화를 내지 않고 담담히 받아내는 연습을 했다. 엄마는 여전히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을 못 이겨 나를 비난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상대에게 받는 비난은 매우 아프다. 함께 쌓았던 추억도 있을 테고, 그중 좋았던 기억도 있을 테니 서운하고 서러운 게 당연하다. 엄마와 연을 끊는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나는 엄마를 꽤 많이 좋아했다. 엄마를 닮고 싶었다. 그런 사람을 잘라내는 것은 내 살을 잘라내는 듯한 고통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독하다고, 매정하다고 욕을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살고 싶었다. 숨을 쉬고 싶었다.
엄마는 내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못된 엄마였냐고, 많은 말 중 상처가 된 말만 우득 기억해내서 나쁜 사람 만들어야 했냐고. 모르겠다. 누가 뽕하고 나타나서 잘잘못을 따져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다 짚어준다면 받아들이기 쉬울 텐데. 엄마와 나는 정말 서로의 잘못을 모른 체 남 탓을 하고 있는 걸까. ‘미안하다’ 한마디를 못 해서 할퀴며 싸우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제는 우연히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평범한 어느 가정인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변명하지 않는다.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면 변명하기에 바빴다. 그 변명은 마치 나에게 하는 것과 같았다. 내가 엄마에게 버림받은 게 아니라, 내가 버렸다고 자기방어를 하는 것이다. 방어기제. 나를 보호하는 마지막 수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