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보험이 없는 삶

슬기로운 글쓰기 - 소모임 : 철수 패러디

by 채지연

나라는 건물은 어떤 벽돌이 빠지면 와르르 무너질까. 난 보험을 해지당했다. 난 아프면 안 된다. 아플 수가 없다. 여러 정신과 질환 때문에 나는 보험에서 거절당했다. 내 삶에는 다양한 이름표가 붙어 있는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는 삶’이다. 난 한번 입원을 해봤기에 보험의 중요성을 여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보험을 선택했지만, 보험은 날 선택하지 않았다. 질병이란 불행에 취약한 길을 걷고 있다. 나와 내 가족 중 누군가 아프면 내 삶은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아킬레스건이 도대체 뭘까, 생각하다가 콤플렉스와 헷갈리는 나를 발견했다. 나의 아킬레스건이자 콤플렉스는 겹치기도 하지만 선명하게 구분이 된다. 그래야 한다고 믿음을 갖게 되었다. 아킬레스건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구조적 약점이고, 콤플렉스는 좀더 의식적이고 강박적인, 내면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나의 가장 취약한 ‘남의 시선,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아킬레스건을 콤플렉스로 여긴다. 그래서 보험 없는 삶이 무섭고 불안하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작가로 직업을 바꾸었다. 난 먹고 입어야 하는 인간이기에 최소한 생존 비용이 필요하다. 동시에 새롭든, 재미있든, 아름답든 그 무언가를 제시할 의무가 있는 직업 예술가이기에, 또는 그렇게 되야 하기에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시각, 화법이 필요했다. 이걸 축적하는 데도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두 가지 축을 사이좋게 가지고 가고 싶지만 조화롭지 못할망정 내 안에서 자주 충돌한다. 이건 분명 괴롭고 슬픈 일이다.

어떤 감독이 말했다. ‘두붓집에서 돈카츠를 튀기라고 하는 건 무리한 일.’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릴 적 일본의 많은 드라마, 영화, 만화를 보며 동경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반짝이던 일본 시장이 있었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떨어져 나갔다. 두부를 팔던 사람들은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돈카츠도 만들어 팔아야 했다.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감독 또한 평생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흘러가는 시간을 찍었다. 나에게 흘러가는 시간은 칼날같이 잡으면 베이는 무서운 존재와 같다. 보험이 없는 삶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어려운 일이었다. 선택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내가 작가 활동을 선택하여 빈곤을 얻었을 때. 내가 선택한 것을 책임을 지는 일도 어려운데, 선택하지 않은 것에 지는 책임은 억울하고 서러웠다.

주변인에게 끊임없이 정당화해야 한다. 이를테면 손에 잡히는 숫자들과 싸워야 한다. 나는 이만큼 아팠고, 괜찮아졌다. 몇 개의 약을 먹고, 가끔은 몇 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깨지는 물리적 형태가 아니다 보니 사람들은 나의 아픔을 잘 공감하지 못한다. 정확하게 어떤 때에 오는 아픔이 아니다 보니 왔다갔다하는 내 마음에도 스스로가 주체하지 못한다. 내 삶의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약은 몇 개까지 먹을 것. 술은 먹지 말 것. 사람들은 적당히 만날 것. 이 전쟁은 내 의사와 무관하게 벌어질 때가 있다. 사실 굳이 내 아픔을, 내 고통을 남에게 설득할 이유도, 내가 보험이 없는 사실을 남에게 설득할 이유도 없긴 하다.


세상이 나에게 일방적으로 보낸 택배들은 뜯어보지 않으면 그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언제 어떻게 도착할지 모르는 그 상자들은 내 품에 이것저것 안겨주며 흐뭇함도 죄책감도 없이 떠난다. 나는 너무 많은 불행이 담긴 택배를 받았다. 아니 어쩌면 행운이라는 택배를 받았음에도 눈감고 불행이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택배는 뜯어보지도 않은 체 불행이라 여긴 체 끙끙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저녁에는 그냥 혼자 견디기가 어려워 약을 한꺼번에 입안가득 넣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어 눈을 떠보니 온몸에 멍이 들어있었다. 아무도 없는 까만 밤이 되어 있었다. 내 앞에 놓인 택배는 우울감이라는 불행이었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거 마냥 아팠다. 몇 시간을 잠을 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슬프게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약을 먹고 있고, 보험은 들 수가 없다. 하지만 나에겐 슬퍼할 시간이 없다. 불안과 불면을 곁에 두고 오늘 나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또다시 나는 약을 먹고 넘어질 것이다. 또 멍이 들고, 상처가 아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살아야 한다. 미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내일 또 꾸역꾸역 믿을 수밖에 없다. 믿는다는 믿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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