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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날 때 가장 먼저 울음을 터뜨린다. 생명이 태어났음의 신호이고, 내가 온전히 살아있음의 환호이다. 아이는 태어나 말을 할 수 없기에 울음으로 의사소통한다. 밥을 먹고 싶을 때, 아플 때, 불편할 때 우렁찬 울음으로 부모에게 알린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가장 쉬운 알림이다. 한살 두살 먹어갈수록 의사소통이라는 기능이 생기면 울음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나는 울음이 참 많은 아이였다. 울고 싶지 않지만, 화가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아도 눈물이 벌써 나와 있었다. 논리 정연하게 말을 해야 하지만,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놀림거리가 되곤 했다.
말을 해야 하는데, 씩씩대며 눈물이 앞을 가려 웅얼거리기 일 수 있었다. 상대는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딱, 어릴 때의 일이었다. 사회에 나와 이 울음이 통용될 수 있는 건 어릴 때까지였다. 우는 내 모습은 '질질 짠다'라며 질색을 하였다. 내가 울고 싶어서 우는 것이 아닌데 "여자라고 울면 다냐?"라는 프레임까지 씌워지며 내 울음을 사회 전체 문제로 귀결하였다. 나는 있는 힘껏 울지 않으려, 내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써보았다. 운다는 것은 자존심까지 내주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눈물을 보이는 것은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울고 싶어서 우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말했다.
"따미씨 그렇게 운다고 해결되는 거 아니야!"
"사회에서 울면 얕잡아봐"
모르는 게 아닌데, 사람들은 나의 울음을 약점으로 보았다. 참고 또 참았다. 가끔은 허벅지를 볼펜으로 찌르며 눈알을 천장으로 치켜뜨며 간신히 참아내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소리 내 엉엉 울곤 했다.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나는 티가 나지 않고 우는 법을 알았다. 누구도 나에게 울었냐 묻지 않았고, 울었는지 알아채지 못하였다. 울지 않는 법을 모르니, 나는 몰래 우는 법을 배웠다. 사람들은 내가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려 나의 어려움을 알아달라, 불편하다 칭얼거린다고 생각한다. 그냥 울음이 참아지지 않는 고장 난 샘물 같은데 나도 나를 어찌할지를 모를 뿐인데 답답할 뿐이다.
가끔, 이런 내가 답답해 집에서 미리 실컷 울곤 한다. 눈물에 정해진 양이 있지 않을까 싶어 미리 실컷 울어둔다. 그러면 남들 앞에서 울지 않을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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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으려 잃지 않으려 애써본다
최유리 플레이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