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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연 Apr 21. 2022

설거지하다

나는 엄마와 닮지 않았다

설거지할 때, 퐁퐁을 조금 움푹한 그릇에 두어번 짜고 미온수를 넣어야 세제를 아낄 수 있다. 기름기가 낀 프라이팬은 자주 씻는 것보다는 키친타월로 충분히 닦아주거나 여러 번 재사용을 하는 게 환경에 좋다고 했다. 도마는 씻는 것보다 말리는 것이 중요해 반드시 세워서 말려야 한다. 엄마는 나에게 시시콜콜하게 설거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가끔 설거지 하다 보면 엄마가 옆에서 일러주던 것들이 떠올라 기분이 상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일부러 반대로 퐁퐁을 수세미에 일고여덟번 주욱 짜거나, 기름기 있는 그릇을 설거지통에 아무렇게나 넣곤 한다. 결국 고생은 내가 하지만. 나는 엄마를 미워한다. 문득 나에게서 나오는 엄마의 잔상들이 나를 화나게 한다. 

한바탕 짜증 섞인 설거지를 하다 설컹거린 느낌이 들었다. 설거지통에 빨간빛이 돌았다.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통조림 껍질에 베였다. 


나는 엄마와 닮지 않았다. 엄마였으면 분명 이런 것을 제때 처리해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테니깐. 피를 보니 닮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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