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수용성
우울은 수용성이다. 따듯한 물이 정수리를 타고 흐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덧씌워져 있던 우울함이 물줄기를 타고 씻겨 내려간다. 물을 틀어놓고 쪼그려 앉아 물이 쪼르륵 흘러 내려가는 배수구를 멍하니 바라본다. 샤워실 배수구에 머리카락이 있는 건 왜일까. 내 손을 떠나가는 것들이 많다. 애써 잡으려 했던 인연도 한순간에 떠나간다. 아등바등 그것을 잡으려 해보아도 잡을 수가 없다. 물줄기를 손으로 꽉 쥐어보았다. 잡힐 리가 없다. 얼기설기 얽힌 감정들이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듯했다. 덩어리째 집어 변기에 넣어 물을 내렸다. 작은 회오리가 되어 저 너머로 사라졌다. 형태가 있는 것들은 사라지기 쉽다. 형태가 없는 것들이 항상 말썽이다. 없앨 수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 우울한 감정. 형태가 없으니 덩어리째 집어서 변기통에 집어넣을 수가 없다. 배수구에 손가락으로 한 번 더 휘휘 저어 덩어리를 만들어 버린다. 버릴 수 없는 것들도 함께 사라질까 하는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