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되지 않은 사랑의 나쁜예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을 통해 본 인간 본성 탐구

by 손 영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먼 옛날부터 남녀간의 사랑은 매우 조심스러운 테마였다.

모든 사랑에는 고통과 갈등이 수반되고 이 사랑의 두 당사자인 남녀는 꽤나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만이 해피엔딩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랑만큼 다의적이고 포괄적인 단어가 또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쉽게, 그리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랑'이지만 실제로 사랑은 그리 쉽게 받을 수 있는 것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란것을 대문호들은 경계한 것일까.

사랑을 노래한 문학작품에서는 쉬운 사랑을 찾아보기 힘들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한눈에 반한 사랑에도 원수의 가문이라는 배경적 갈등을 집어넣었고

안나카레리나에서는 불륜이라는 제도적 장애물을 통해 사랑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위대한 개츠비는 또 어떤가..? 부와 명예를 거머쥔 성공한 사나이도 결국은 사랑이라는 거대한 굴레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뿐.

사랑이라는 것은 고귀하고 창연하고 그야말로 궁극적인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본능의 발로인 것인지는 몰라도

모든 문학작품에서 설정되는 사랑의 스토리는

꽤나 겹겹이 동여매어진 갈등의 구조를 풀어내거나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빛이나고 아름다워지도록 만들어져 있다.


사랑,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하지만

그 모든 사랑은 사실은 사랑이 아닐수도 있다.

정확히는 '성숙한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폭풍의 언덕은 이런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작가들이 취해왔던 기존의 조심스러움을 그야말로 '집어던져버린' 작품인듯 하다.

난폭하고 광기가 가득한, 그야말로 '날것(rare)'인 상태로의 사랑.

이건 에로스도 아가페도 아닌 그 이전단계의 원초적인 사랑의 형태인것 같다.


살다보면 느끼게 되는 종이한장의 차이들이 있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고 뒤로 물러서는 경우도 있다.


히스클리프는 그렇게도 사랑한 캐서린에게 한번도 대놓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 적이 없다.

그저 '내 마음을 저사람도 알고 있겠지' 라는 막연한 바람만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표현하지 않고 확인되지 않은, 그러나 그만큼 안으로는 더욱더 부풀어져 버린 애정의 감정은 그래서일까. 캐서린의 은유적인 말 한마디를 몰래 듣고는 극단으로 치닫고 만다.



A2354-00.jpg 줄리엣비노쉬와 랄프파인즈가 출연한 93년작 영화 '폭풍의언덕'


마음의 상처를 입은 히스클리프의 광기는 이곳에서 부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행한 자신의 처지에서 하나의 희망이라고 여겼던 캐서린이라는 존재.

그 희망이 사라질 것이라고 느끼는 찰나에 가질 수 밖에 없는 절망감과 분노였으리라.


하지만 지금 내가 히스클리프와 결혼을 한다면 나까지 하잘것 없는 비참한 존재로 타락하고 말 것이 아니겠어?
그래서 난 내가 그를 굉장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결심이야. 내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는 것은 말이지, 미남자라서가 아니고 그가 바로 나 이상의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영혼이란 것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몰라도 그의 영혼은 바로 나의 영혼이거든.

그런데 소년의 격한 감정으로 집을 떠난 히스클리프는 다시 돌아와서 처절한 복수를 시작한다.

그 복수는 세대를 지나 무려 수십년에 걸쳐 일관적이기까지 하다.

사랑하는 여인이 결혼한 남편의 여동생을 일부러 유혹하여 그녀와 결혼하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혹사시키고

그리고 캐서린의 딸인 또다른 캐서린을 자신의 아들과 엮어주어서 재산을 빼앗으려 하는등

가만히 읽다보면 무슨 사이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섬뜩한 일들이 그야말로 줄줄이 벌어지는데

결국은 "사랑해서 그랬다"라는 간단명료한 변명하나를 걸어 두고 이 수많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발표 당시에는 거칠고 기괴하다는 이유로 혹평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에밀리브론테는 언니인 샬롯브론테와는 무척 많이 다른 여성이었나보다. 언니가 쓴 <제인에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질척거리는 인간의 밑바닥을 표현하는 걸 보니 말이다.


아, 사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책의 줄거리나 대사를 소개하려는 것은 아니다.

폭풍의 언덕도 결국은 사랑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 사랑이야 말로 "미성숙한" 것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아마도 작품을 쓴 에밀리브론테가 20대의 미혼일때 이 작품을 썼다고 하니 아직 인생의 단맛 쓴맛을 잘 모를때 그저 '격정적이고 처절한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품고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추측이 든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것은 자연스레 뒤에 깔리는 배경음악 같은 것이다.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자연과 종교에서의 절대자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이 사랑이라는 환경 속에서 숨쉬며 살아간다.

남녀간의 사랑은 그러한 것들중에서 가장 돋보이고 아름답고 또한 즐거운 것이기에 단연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허나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사랑도 늘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갈등과 번민과 함께 그것을 이해하고 타협하고 극복해 나가는 속에서 사랑은 성숙해진다.

정확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와 방식이 성숙해지는 것이리라.

그러한 과정을 모르고 동전의 양면처럼 분명히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사랑은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엇나가거나, 아니면 상대와 투쟁하여 둘 중 하나를 다치게 한다.


폭풍의 언덕에서의 히스클리프는 분명 미성숙한 사랑을 하였다

물론 그래도 사랑이라고 밖엔 달리 표현할 단어는 없다.

작가의 의도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 미성숙하고 서투른 사랑의 열정을 당시의 가식적인 귀족사회에게 보란듯이 까발리고 싶었던 것인지는 말이다.


칼럼의 제목처럼 학습되지 않은(미성숙한) 사랑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나쁜예인지 좋은예인지는

읽는 이들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어찌되었건 수세기를 지나서 남녀간의 충격적이고 격정적인 사랑의 서사시 하면

유일하게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밖에는 없으니 말이다.

5.jpg Wuthering Hei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