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의 '나', 무진을 말하다.

김승옥 <무진기행>의 주인공이 말하는 나의 무진

by 손 영

윤희중이 직접 말하는 <무진기행>

* 윤희중은 <무진기행>에서 주인공 '나'의 이름이고 이글은 제가 무진기행을 읽고 느낀 감상을 주인공이 직접 말해준다는 설정으로 작성한 허구의 글입니다.


아주 예전에 차를 같이 타고 가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어떤 다리를 건너가고 있을 때였다.
“이 다리를 건너갈때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들어. 다리를 넘으면 무언가 다른 세상이 나타날 것만 같은 생각 말야. 물론 다리를 건너면 달라지지 않은 도로가 이어지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늘 같은 생각이 들다니 재미있지 않아?”
나는 그럴싸하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는 무진으로 가는 버스에 어떠한 목적도 없이 몸을 실었다. 애초부터 나에게 목적이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목적 없이 태어났다가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저무는 존재가 아닐까.
무진은 나의 고향이고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지만 그곳에 대해 내가 가지는 감상은 남들이 흔히 느끼는 고향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이 어떻게 다르냐는 것은 또한 불필요한 질문이다. 어찌되었건 나는 과거의 많은 시간을 무진에서 보냈고, 어른이 된 후에도 가끔 무진을 방문하였다. 그때마다 나름의 사연과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 땅의 수많은 공간들 가운데에서 무진은 그런 사실들을 가지고 존재하는 곳이다.

무진에는 특별한 명산품이 없다는 말에 나는 속으로 무진의 특산품은 안개라는 반론을 제기한다. 바다와 인접해 있지만 바다가 가깝게 보이지는 않는 곳. 밤마다 자욱하게 끼는 안개가 지금 이곳이 바다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징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가장 깜깜한 어둠이 온 후에 날이 갠다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사귀었던 여자와 이별하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리고 처가의 제약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앉았다. 무진의 사람들은 그런 나를 한편으로는 운좋다고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속물이라고 욕을 할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이방인의 뫼르소의 표현대로라면 ‘그것은 나의 책임은 아닌 것’이다.
625 전쟁때 또래의 청년들이 전쟁터로 징병을 나갈 때 나는 무진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준 골방에 처박혀서 숨을 죽이고 지냈다. 어머니는 아들의 목숨을 보존하였다는 만족감이 충천하였고, 나는 만족감만 느끼는 것은 무언가 쑥쓰러워서 자책감을 끄집어 내어 일기장에 적었다. 일기는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여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기장은 불에 태워 버렸다.

중학교 동창인 조군을 만나러 갔다가 나는 거기에서 인숙이라는 음악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우연찮게 그 밤에 둘이 걸으면서 나눴던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들은 나의 귓속에서 머릿속으로 또 심장으로 옮겨가면서 모두 소실될 것이다. 그러기에 그날 밤은 그 이야기의 한자락이라도 붙들고 싶어서 잠을 쉬이 청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에 어느 술집 여자가 자살한 광경을 보았다. 간밤의 불면이 그 여자의 임종을 함께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은 잠시나마 정욕을 느끼게 했다. 나에게는 정욕은 나의 존재에 대한 반증이며 어떠한 수고에 대한 보상이다. 물론 확고한 신념은 아니다.

조군의 사무실에 가서 인숙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그녀에 대한 욕망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하인숙이란 사람이 아니라 그 어떤 여성이었다 하더라도 비슷한 욕망을 품었으리라. 이곳은 무진이기 때문이다.
인숙은 나에게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아내가 있는 나에게 데려가 달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그 말을 처음에는 가볍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의 손을 잡고 난 뒤에 서울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나였다. 나는 예전에 거처하던 어느 집으로 찾아가 그 방 안에서 인숙과 사랑을 나누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벌건 대낮이었다. 바닷가 어느 허름한 시골집 방안에서의 한낮의 섹스라니. 나는 그녀를 만나는 순간부터 이 장면을 바라왔는지도 모른다. 욕망 이후에는 학습된 책임감의 잔재가 머물렀고, 무슨 이유인지 인숙은 서울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나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 책임감을 보여주고 싶은 허세도 부풀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그 책임감의 용도로 사용하고 싶었지만 그 허세를 들킬까봐 삼키고 말았다.





아내가 보낸 전보는 나에게 다시금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알람을 주었다.
전보를 보면서 무진에서의 모든 일들이 없었던 것처럼 용서받을 것이고 (사실 용서를 할 주체는 무진이란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기에 별 의미는 없다) 그러기에 그 모든 사라질 것들을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난 후에 털어버리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인숙에게 편지를 썼다. 보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나를 긍정하기 위한 아주 우스운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나는 쓴 편지를 찢어 버렸다.
무진을 떠나고 있다는 팻말을 보면서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내 서울에서 나를 맞이할 주주총회의 결과와 아내와의 어색한 며칠만의 대면에서 나눌 말들을 떠올리느라 그 부끄러움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차창 밖에서 느껴지는 햇볕과 적당한 날씨의 온도, 그리고 해풍에 적당히 섞인 소금기, 세가지를 섞어 수면제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며 눈을 감았다.
수년 후에 나는 다시 무진을 찾을 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분명히 다시 이곳을 찾게 될 것이다. 쓸쓸하다는 것과 목적이 없는 것 – 나의 이런 모습을 온전히 받아줄 곳은 이곳 무진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IMG_1371.jpg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하느 1967년 작 <안개> 신성일 윤정희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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