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시간에 대한 오해들

공부 시간 VS 노는 시간

by 손 영
'공부 시간'에 대한

10대들의 정의 : 공부와 관련된 모든 시간. 학교 수업 시간, 학원 수업 시간, 숙제하는 시간, 시험공부 시간, 책상에 앉아 멍 때리는 시간 등 책상에 앉아서 벌어지는 모든 시간들을 포함.

부모들의 정의 : 자녀가 자기 방 책상에 앉아 집중해서 규칙적으로 하는 예습 및 복습 시간. 물론 학교나 학원 수업 시간과 숙제 시간, 책상에 앉아 있지만 멍하니 있는 시간 등은 포함되지 않음.


‘노는 시간’에 대한

10대들의 정의 : 집 밖에서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

부모님의 정의 : 공부를 하지 않는 모든 시간


교육 상담을 시작했던 초기에 특히 의아하게 느낀점은 부모님과 아이들이 같은 사안에 대해서 하는 말이 서로 너무도 다른 점이다.

상담을 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바로 “우리 애는 집에서 빈둥빈둥하면서 하루 종일 놀아요. 노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탈이에요”라는 부모님의 푸념이다.

“네......그렇군요” 하면서 듣다 보면 내 머릿속에서는 아이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소파에 드러누워 두세 시간씩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과 침대에서 핸드폰을 붙들고 신나게 채팅을 하는 모습, 그리고 컴퓨터 앞에서 신나게 게임을 즐기는 모습들 말이다.

‘음......공부깨나 안하는 녀석인가 보군’ 하는 생각으로 점점 기우는 마음을 가지고 이번에는 아이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면 어라? 좀 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스토리가 흘러나온다.

“놀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불만이에요. 평일에는 학원 가느라 놀 시간이 없고, 주말에도 맘대로 나가 놀 수가 없어요. 엄마가 허락을 안 해주시거든요”라는 말이다.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실은 어느 누구도 거짓을 말하는 이는 없었다. 다만 ‘논다’는 말에 대한 서로의 정의가 위에서처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같은 집에서 살면서도 서로 극과 극을 달리는 해석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엄마들에게 자녀의 생활은 두 가지 단어로 분류할 수 있다. ‘공부하는 것’과 ‘노는 것’ 이 그것이다. 달리 말하면 공부를 하고 있지 않는 모든 시간은 엄마의 눈으로는 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니 노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말은 엄마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10대들에게 ‘논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집안에서 아무리 빈둥거리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해도 그들에게 그것은 노는 것이 아니다. 그럼 노는 것이 아니면 공부하는 거냐고 물을 엄마들이 분명 있을 것 같다. 공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뭘까?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노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노는 것이 되려면 우선은 집 밖으로 나가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다른 일을 하는 것이라는 기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축구를 하든지 PC방이나 노래방에 가든지, 영화를 보든지 무언가 외부에서 목적의식을 가지고 벌이는 일에 대해서만 10대들은 노는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들의 생각이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회사에 다니시는 아버지가 어느 날 근무 시간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종일 컴퓨터로 웹서핑만 하다가 퇴근했다고 치자. 아버지는 오늘 논 걸까 아니면 일을 한 걸까?

전체적으로 보면 일터에 나가 하루를 보내고 왔다면 분명 '근무'라는 일을 하고 온 것이다. 하지만 만약 회사 사장님이 그렇게 딴짓을 하는 아버지를 보았다면 ‘자네는 일은 안하고 하루 종일 웹서핑만 하면서 월급 받으려고 하는가?’라고 호통을 칠 것이다.

이런 아버지가 주말이 되어서 피곤하다고 하루 종일 누워서 텔레비전과 낮잠을 즐기며 보냈다고 하면 아버지는 노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것일까? 아마 우리 모두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일터에서 아버지가 하루를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게다가 학교 이후에 가는 학원에서도 또 많은 시간을 ‘공부’라는 목적을 위해 앉아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시간은 아이들에게는 ‘공부하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설령 학교 수업 시간 내내 다른 생각을 하고 학원에서는 졸기만 하다가 왔다고 해도 그들은 그만큼의 시간을 공부하고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집에 돌아와서 빈둥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은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어마어마하게 많이 하고 온 공부의 시간에 비하여는 새 발의 피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그들 말로는 하루 종일 공부하고 집에 와서도 숙제처럼 꼭 해야 하는 것들을 하고 나면 정말로 놀 시간은커녕 쉴 시간도 없는 처지가 된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주말이 되어 겨우 그들의 개념으로 ‘놀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이번엔 엄마가 태클을 걸고 통제를 하려고 하니 어찌 아이들이 분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억울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아이들의 입장을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의 스케줄을 보면 맘 편히 놀만한 시간이 별로 없다.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부모님들도 물론 많을 것이다. 남들 다 가는 학교와 학원에 가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도 있다. 남들과 겹치는 시간 말고 그 외의 시간에서 더 공부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우위에 설 수 있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공부도 노는 것도 ‘양보다는 질’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똑같이 8시간씩 회사에 다니면서 근무해도 업무의 성과를 내는 사람이 있고 승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늦게 퇴근하고 집에 일을 싸들고 와야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10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교나 학원에서 보내는 이른바 ‘공부와 관련된 시간’의 질을 높이는 것이지, 그 외의 시간에서 노는 시간의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라”는 말과 “놀지 말고 공부해라”는 말은 “공부는 당연히 해야 하지만 나는 놀 시간이 부족해요”라고 여기는 대다수의 10대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의 말이다.

먼저 이러한 10대들의 시계를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빈둥거릴 시간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 채울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는 결국 다시 아이들이 결정해야 하는 몫이다. 그들에게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할 일을 질적으로 높게 하는 것과 만족스럽게 여유시간을 보내는 것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놓치지 않고 양립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10대들의 시간은 충분히 길고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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