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공부는 나를 발전, 성장시키는 것이어야
<공부> 에 대한
10대들의 정의 :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밥 먹고 숨 쉬듯이 맨날 하고 있는 것. 또 해야만 하는 것. 다만 밥은 안 먹으면 배고프고 숨은 안 쉬면 괴롭지만 공부는 하면 할수록 힘들고 짜증스러운 것.
부모들의 정의 : 아빠는 일을 하고 엄마는 살림을 하듯이 학생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것. 다만 아빠가 벌이가 시원찮고 엄마가 살림을 엉망으로 한다 할지라도 우리 아이 공부는 반드시 ‘잘’해야 하는 것.
10대 아이들의 고민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공부 문제일 것이다
전교 1등을 하는 아이나 바닥을 기는 아이나 똑같이 자신의 공부에 대해서 늘 불안해하고 자신 없어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다. 전교 1등 아이의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자녀의 공부에 대해서 100% 만족하는 경우는 없다. 영어를 잘해서 매번 백점을 맞는 아이라도 수학에서 두 문제를 틀리면 이내 그 과목은 취약 과목이 되고, 우리 아이는 ‘수학에 약한’ 학생이 되어버린다.
공부에 관한 부모와 아이의 시선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명백하다. 둘 다 공부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는 생각하고 있지만 자녀의 입장에서는 할수록 괴로운 것이 공부요, 부모 입장에서는 해도 해도 성에 차지 않는 것이 바로 이 공부라는 녀석이다.
그동안 공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과 상담을 했다.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만난 모든 학생들이 한결같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허구한 날 문제를 일으키며 공부와는 담을 쌓은 아이들조차도 상담을 해보면 공부는 쓸데없는 것이니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부라는 것은 결국 해야 하는 것이고, 기왕이면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이렇게 공부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잘하고 싶다’고 인정하고 있는데, 왜 정작 이야기를 들어보면 스스로 공부를 잘한다고 여기는 아이나 부모님은 없는 것일까?
모든 어른들이 일을 하고 돈을 벌며 살아가지만,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세상을 돌아보면 이 지구상에서 나보다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에는 나보다 잘사는 사람들만 들어오고 그들과 비교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 부족한 것들만 마음에 걸리게 된다. 공부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비교’를 통해서 공부를 측정하며 자라왔다. 두 발로 땅을 짚고 일어서는 아기에게 ‘누구누구보다 빨리 걸음을 배웠다’며 뿌듯해 했고, 말을 몇 달만 빨리 시작해도 우리 아이의 ‘남보다 빠른 배움’에 감격했다. 우리의 삶은 갓난아기 때부터 계속 ‘남들보다 잘하거나 빠른’ 배움을 지향하면서 자라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속엔 한 가지 고정관념이 만들어졌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바로 ‘주변의 다른 사람보다 잘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공부에 대한 고정관념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그 근거를 탄탄히 하고 더욱 우리를 옭아매게 된다. 학교라는 곳은 나와 수십 명의 남들로 이루어진 교실이 있고, 그러한 교실이 또 몇몇 개 더 있는 곳이다. 여기서 함께 배우는 친구들은 물론 더없이 좋은 동무들이지만 공부에 있어서만은 나와 비교가 될 남들이다. 나는 혼자이고 나와 비교될 사람은 수백 명인 이 불리한 조건에서 어떻게 만족스럽게 늘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전교1등부터 꼴등까지 모두가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를 거쳐 청소년이 될 때까지 이렇게 굳어진 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은 점차 공부라는 녀석을 괴로운 존재로 만들게 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하고 학원을 다녀도 늘 나보다 잘하는 남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 외로운 비교와의 싸움을 통해 저절로 생겨난 부정적인 감성들인 것이다.
때로는 정말 열심히 해서 많은 남들과의 비교에서 이기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기쁨도 잠시 잠깐, 이번에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경쟁과 비교에서 이 자리를 뺏기지 말아야 하는 부담감이 마음을 억누르게 된다. 아무리 잘하면 뭐하나? 어차피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우리 학교에, 우리 시에, 우리나라에, 전 세계에 차고 넘칠 텐데.
어떤 부모님들은 “아이고, 제가 1등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전 그런 거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남들 하는 만큼, 중간 정도만 하면 좋겠다는 거죠”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무엇이 다른가? 중간 정도 한다는 것은 비교할 남들의 수가 꼴등의 그것보다 조금 더 적다는 것뿐이지, 결국 남보다 잘하는 것으로 공부를 측정하는 기본적인 설정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이처럼 공부를 ‘남보다 잘해야 하는 능력’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 결과에 대해 불만과 걱정과 좌절을 하고 있고, 부모님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작 공부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공부라는 단어에 대한 국어사전의 풀이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다. 한자어로는 덕행을 쌓고 행실을 수양하여 어떤 일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성리학의 전래와 함께 들어온 말로써 모든 일에 열과 성을 다하여 성취를 이루는 주자학의 영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공부는 10대 학생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생토록 해야 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사회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능력이 과연 학생 때에 배웠던 공부로 하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세상 어느 곳에 가든지, 어떤 조직 안에 있든지 간에 우리는 그에 맞는 역할을 가지게 되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공부를 멈춘다는 것 자체가 곧 시대에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친 위대한 인물들은 예외 없이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생을 통틀어 그들만의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부는 곧 성장과 발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공부하지 않는, 공부할 수 없는 사람은 ‘성장도, 발전도 없다’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수능 시험 최고령 응시자의 인터뷰를 뉴스에서 접할 수 있고, 오십 년 만에 다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의 모습도 가끔 만날 수 있는가보다. 그분들에게 공부는 나의 인생을 지속시키는 힘이고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우렁찬 외침일 것이다.
공부는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유용한 행위이다. 그러기에 마땅히 모든 사람들은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성장이 멈춘 사람의 삶은 퇴보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10대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이 공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줄 의무가 있다. 남보다 잘하기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다.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공부가 진짜 공부이며, 그 성취와 보람을 느꼈을 때에 비로소 공부의 의미가 실현되는 것이다.
자녀가 ‘진짜 공부’를 하기를 바라는 부모님이라면 바로 지금, 공부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성적이 이게 뭐니? 옆집 영철이는 이번 시험에서 10등이나 올랐다고 하는데!”라는 말은 자녀에겐 하지 말자.
결과를 가지고 칭찬하고 꾸중하는 것은 이 세상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당연하고 단순한 일이다. 적어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녀 앞에 서고 싶다면 부모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