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와 통기타, 그리고 하루키

하루키에 관한 나의 조그마한 단상들...

by 손 영

1981년 겨울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서울 성내동의 한 반지하 단칸방에서 세 누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위암에 걸려 큰 수술을 받으신 후 시골의 할머니댁에서 요양중이셨고, 어머니는 병간호를 위해 아버지 곁에 계셨기 때문이다. 중학생이던 누나들은 당시 인기있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 같은 라디오 프로를 들으며 잠을 청했고, 단칸방에서 네 남매가 나란히 잘 수 밖에 없던 탓에 나또한 디제이의 감미로운 멘트와 노래들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 좋은 노래가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미리 넣어둔 공테이프 – 실은 공테이프가 아니라 기존의 잘 안듣는 테이프의 헤드 부분을 휴지등으로 막아서 녹음이 되도록 만든 것이지만 –에 녹음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밤, 마찬가지로 네 남매는 불꺼진 방에 조르르 누워 라디오를 들으며 잠이 들고 있었다. 그때 송승환씨의 멘트가 들렸다. “비틀즈가 부릅니다. 예스터데이.”

네 명중 세 명이 벌떡 일어나 카세트테이프의 녹음버튼을 누르려 손을 뻗었고 그 중의 한 명은 나였다.


1989년 가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우리집 아파트 단지에 수요일마다 오는 이동식 도서대여차량을 자주 애용하고 있었다. 중학생때 우연찮게 김용의 <영웅문>을 알게 된 것을 계기로 수많은 무협소설을 탐독하게 해준 무척 고마운 시설이었다. 그 트럭이 가지고 있던 무협소설을 거의 다 정복한 후에는 시드니셀던의 추리물이나 <양들의 침묵> 같은 스릴러물을 읽기 시작했는데, 가끔은 에릭시걸의 <닥터스> 같은 베스트셀러도 신작코너에서 집어 들곤 했다. 마찬가지 연유로 어느날 다른 몇권의 책들과 함께 빌려오게 된 책이 바로 <상실의 시대> 였다. 하루키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이 책을 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외삼촌이 예전에 주셨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아 창고에 처박혀 있던 낡은 통기타를 꺼내어 들었다.



1991년 봄

초등학교때부터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우연찮게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서 한 두번의 짧은 데이트와 몇 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그야말로 ‘말로만 사귀는’ 그런 사이였었다. 어느날 그녀가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실로 오랜만에 공테이프를 사서 밤 열시가 되면 라디오를 틀고 무작정 좋은 노래를 기다렸다. 물론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는 그 테이프에서도 가장 첫 곡으로 이미 찜해 놓은 채였다.

당시 인기있던 <Wind of change>와 <More than words> 같은 비교적 최신곡을 포함하고 있던 그 테이프의 뒷면 마지막에는 그동안 방구석에서 퉁겨온 낡은 통기타로 직접 친 <로망스>를 녹음했다. 누나의 워크맨을 몰래 가지고 나름 소리가 울리는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되는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뚜껑을 덮고 그 위에 앉아 마음에 들때까지 –사실은 틀리지 않을 때까지- 수십번 연주를 했다. 녹음된 테이프의 앞면에 “너에게 전하는 노래”라고 적고 반짝거리는 포장지로 포장하여 가방에 넣고 다니며 그녀를 만날 순간을 기다렸지만 결국 한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그녀는 떠났고 한동안 그 테이프는 가방 주머니속에 그대로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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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

소싯적 방구석에서 치던 통기타 실력을 가지고 취미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한지도 10년이 넘었다. 이미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된 지금이지만 기타를 치는 것은 나의 삶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늘 바라왔던 앨범 발매를 올해에는 꼭 이뤄보리라 다시금 생각하며 머리를 싸매고 노래를 만들어 본다. 제대로 레슨을 받은 적도, 작곡을 배운 적도 없지만 가끔 흥얼거리다 보면 꽤 쓸만한 멜로디와 가사 구절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그 중 마음에 드는 곡 하나의 제목란에 이렇게 적었다.

<가제> : 상실의 시대





2019년 여름

독서 동아리를 만들어 2주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개최한지 2년이 되었다.

그 옛날 도서대여 차량에서 열심히 책을 빌려 읽던 시절 이후로는 그다지 책을 가까이 하지 않고 젊은 시절을 보내왔었다. 그러다 수년전에 교육관련 일을 하면서부터 다시금 독서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독서 토론 모임은 늘 새롭고 유익하다.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예상치 않았던 생각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동안 읽었던 많은 책들 가운데 하루키의 글들이 들어있다. 무척 많이.

신간이 출간되면 어김없이 다음번 모임에서 그걸 읽고 만나자는 추천들이 여기저기서 쇄도하는 것을 보고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었을 때 많은 다른 단편들 속에서 눈에 띄는 한 제목이 있었다.

‘그래, 이 제목이 너무 유명하다고 안 쓰기엔 하루키로서는 너무 아쉬웠을 거야.’ 라고 생각한 그 소설의 제목은 <Yesterday> 였다.




마무리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지만 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까지 나와 함께 해 온 소중한 몇 가지를 선택하게 된 과정에는 그의 글을 통해 느낀 정서가 깔려있었고 내가 거기에 동참한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음.... 글쎄요. 별로 대단한 건 없어요. 때때로 기타를 퉁기면서, 라디오로 음악을 들으면서, 아름다운 소설을 읽으면서 살았어요.” 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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