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

- 소녀에게 진심이었던 사람들

by 손 영


무척이나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한 소녀가 길에 서서 성냥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아는 사람은 알고 요즘 아이들은 어쩌면 잘 모를수도 있는 그 성냥입니다.

소녀는 얇은 옷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서 있었습니다.

이따금 지나가던 사람들이 소녀를 곁눈질로 힐끔 쳐다보고는

종종걸음으로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소녀는 성냥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한 중년 남성이 지나가다가 소녀를 보고 발을 멈췄습니다.

그는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얘, 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니?”

“성냥을 팔고 있어요.”

소녀는 말했습니다.


“이런, 요즘 세상에 성냥을 쓰는 사람은 없어. 괜한 고생하지 말고 뭔가 다른 걸 파는 것이 좋을거야.” 하고 남자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이 성냥이 필요할 수도 있을거에요.” 소녀는 몸을 움츠리며 대답했습니다.

남자는 잠시동안 소녀를 바라보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를 떠났습니다.

바람은 조금 더 차가워졌습니다.




길을 지나던 한 아주머니가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얘, 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니?”

“성냥을 팔고 있어요. 성냥 하나만 사주세요.” 소녀는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깜짝 놀란 듯이 소녀에게 말했습니다.

“어머, 어머, 너 누가 이걸 하라고 시킨거니? 혹시 너희 부모님이 시켜서 하는거니?”


소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소녀를 바라보더니 말했습니다.

“문제로군, 문제야. 이건 분명히 누군가 이 아이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아동의 인권을 유린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야. 이런 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지. 기자회견을 해야겠어. 기자들을 모아서 이 소녀에게 우리 사회가 저지른 만행을 똑똑히 보여주고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해야겠어.”


여자는 전화를 꺼내어들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응. 나에요. 현대판 성냥팔이 소녀를 발견했어요. 잘은 몰라. 어린애가 혼자 추운데서 성냥을 팔고 있어. 그래, 사진도 좀 찍고 인터뷰도 좀 해서 다음번 시민포럼 주제로 밀어넣어 보자고. 왜 그거 있잖아. 아동복지법의 문제점과 근로기준법상 청소년의 지위에 대한 해석. 아, 그래. 왜 아직도 성냥은 소년이 아닌 소녀만 팔아야 하는가 라고 해서 페미니즘으로 엮어도 괜찮겠어. 그래 그래. 구체적인 내용이랄게 뭐 있어. 뻔하지. 아직도 길에서 성냥파는 여자애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이슈화시킬 내용이지 뭐야. 요즘 우리 단체에서 마땅히 내세울 만한 이슈도 없고 말이야. 그래. 일단 내일 만나서 자세히 얘기해 보자구요. 응. 들어가요”

여자는 전화를 끊더니 소녀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아줌마가 내일 다시 올게. 내일도 여기 있을거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그럼 내일 보자꾸나. 지금은 내가 급한 볼일이 있어서.”

하고 여자는 가버렸습니다.


길가에 서있는 가로수의 가지들이 찬바람에 흔들렸습니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습니다.


노란색 점퍼를 입고 머리가 흰 아저씨 주위를 여러 사람들이 둘러싸고 걸어 왔습니다.

노란 점퍼 아저씨는 지나는 사람들을 보고 웃으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둘러싼 사람들도 함께 웃었습니다.

사람들은 시끌벅적하게 웃으며 소녀 곁으로 지나 왔습니다.


소녀는 말했습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성냥좀 사주세요.”


노란점퍼의 아저씨는 소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다른 아저씨를 바라보았습니다.


옆에 있는 아저씨는 소녀를 쳐다보다가 노란점퍼 아저씨에게 귀엣말로 무언가 속삭였습니다.


노란점퍼의 아저씨는 그제서야 소녀를 보며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안녕, 꼬마 아가씨. 성냥을 팔고 있구나. 그래, 요즘 성냥은 잘 팔리니?”

“아니요, 오늘 하나도 못 팔았어요.”

소녀는 힘없이 말했습니다.


노란 점퍼를 입은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이구, 이거 요즘 경기가 안좋아서 장사가 다들 안되는구나.

하지만 힘내거라. 이번에 아저씨가 당선이 되면 여기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살도록 만들어 줄거니까.”


“어떻게요?”

소녀가 물었습니다.


“허허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저씨가 당선되면 경제도 살리고 서민들이 잘사는 나라, 불공정과 차별이 없는 나라로 만들거니까.”


소녀는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노란 점퍼를 입은 아저씨는 계속 웃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넌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면 된다. 자, 그럼 다음에 또 보자.”


노란 점퍼의 아저씨는 옆에 있던 아저씨를 쳐다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소녀 곁을 지나갔습니다.

주변에 있던 아저씨들도 우르르 함께 따라갔습니다.

찬 바람이 계속 불어왔습니다.





안경을 낀 청년과 손에 카메라를 든 청년이 소녀에게 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 우리는 너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 왔는데, 잠깐 시간을 좀 내어줄 수 있겠니?”

“어떤 얘기를요?”

소녀가 물었습니다.


안경을 낀 청년이 말했습니다.

“아, 뭐 대단한 건 아냐. 그냥 편하게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 거지. 예를 들면, 왜 여기서 성냥을 팔고 있는지. 다른 물건도 많은데 왜 하필 성냥을 파는지. 등등. 아, 맞다 자기소개도 간단하게 하고. 뭐 그런거야. ”


“하지만 난 성냥을 팔아야 하고, 할 얘기도 많지 않아요.”

라고 소녀는 말했습니다.


카메라를 든 청년이 한 발 나서며 말했습니다.

“부담가질 건 없어. 우리는 특이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인터뷰하는 방송을 하고 있단다. 현재 구독자도 3만명이 넘고 조회수도 기본으로 10만뷰 이상 나오는 채널이야. 너가 우리 채널에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성냥을 팔아주러 올거야. 그럼 너에게도 좋은 일 아니겠니?”


“그래, 어려울 게 없어. 질문할 내용을 적어왔으니까 넌 그냥 한번 보고 편하게 대답만 하면돼. 실수하거나 내용이 이상한 건 다 편집하니까 걱정할 것도 없고.”

안경 낀 청년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소녀는 청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카메라를 든 청년이 잠시 소녀를 바라보다가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가 아직 어려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요즘 시대는 길에서 물건을 판다고 팔리는 세상이 아니야. 모든 것들이 온라인 플랫폼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너에게 좋은 기회가 되는 거야. 우리 채널은 3만명이 넘는 구독자가 보고 있어. 너가 조금만 협조해주면 좋은 컨텐츠가 나올거고 그러면 넌 단숨에 유명해 질 수도 있다구.”


소녀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두 청년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았습니다.


안경을 쓴 청년이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말했습니다.

“자, 그럼 오늘은 갑자기 찾아온 거라서 부담스러운 것 같은데 한번 잘 생각해보고 연락줄래? 여기 우리 연락처 있으니까 생각이 있으면 언제라도 전화해줘. 아참, 그리고 거기 적힌 우리 방송도 한번 시청해보고.”


그리고 두 청년은 소녀 곁을 지나갔습니다.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길가에는 가로등이 들어왔습니다.




손가방을 든 아주머니가 소녀 곁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성냥좀 사주세요.”

소녀는 너무 추워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최대한 또렷하게 얘기했습니다.


“이 추운데 밖에서 어린아이가 성냥을 팔고 있다니. 안쓰럽기도 해라! ”

아주머니는 소녀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아주머니의 손은 따뜻했습니다.


“아줌마도 어렸을 때 집이 무척 가난했어. 늘 춥고 배가 고팠지. 한겨울에도 연탄 한 장으로 살아야했고 비가 들이치는 좁은 단칸방에서 다섯식구가 함께 먹고 자야 했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마음이 짠해진단다.”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슬프게 들렸습니다.


아주머니가 소녀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잃으면 안된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모든 걸 다 계획하고 계신 분이란다. 하늘에 있는 새 한 마리도 들에 있는 풀 한포기도 다 하느님이 살게끔 만들어주시지 않니? 지금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하느님의 섭리라고 받아들이고 계속 기도하면 하느님은 꼭 응답해 주신단다. 너 이런 책 읽어본 적 있니?”

아주머니는 검고 두툼한 책을 손가방에서 꺼내어 보여줬습니다.


소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건 하느님의 말씀이 적힌 책이야. 너는 어려서 지금 당장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좀 더 크면 하느님이 얼마나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지 알게 될거야.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어. 너도 힘들 땐 하느님한테 기도해보렴. 분명히 응답해 주실거야 .”


아주머니는 소녀의 손을 놓았습니다.

추운 날씨때문인지 어느새 아주머니의 손도 차가워져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두툼한 책을 가방에 넣고 소녀를 향해 한번 웃어준 다음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나갔습니다.


찬 바람은 계속해서 불어왔고

어둑어둑해진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눈송이가 가로등 불빛에 비춰 반짝이며 떨어졌습니다.

소녀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소녀와 비슷한 또래의 한 소년이 다가왔습니다.


“야, 너 여기서 뭐하고 있냐?”

소년은 약간은 거친 말투로 소녀를 쏘아보며 말했습니다.


“성냥을 팔고 있어.”

“얼마나 팔았는데?”

“아직 하나도 못팔았어.”

“바보구나. 그렇게 안팔리는걸 왜 팔고 있냐?”

“팔 것이 이것밖에는 없거든.”

소녀는 조금 시무룩해져서 대답했습니다.


“그걸 팔아봐야 하루에 몇천원 벌기도 힘들거야.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지 그래?”

“그런 것 할 줄을 몰라.”

“바보구나. 집에 엄마 아빠 없어?”

소녀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추운데 더 고생하지 말고 얼른 집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는게 나을거야. 너같은 애는 절대로 돈을 벌 수가 없어.”

소년은 큰 선심을 쓰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까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어. 어떤 아주머니는 기자들을 불러서 무슨 회의 같은 걸 해준다고 했고, 어떤 아저씨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모든 사람들이 잘살 수 있게 해준다고 했어. 무슨 당선이 되면 말이지.”


소년은 아무말 없이 소녀를 바라보았습니다.

소녀는 잠시 소년을 보고는 계속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오빠들은 카메라를 들고 나를 찍어준다고 했어. 자기네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면서. 그 사람들이 와서 성냥을 마구 팔아줄 거라고. 그리고 좀 전의 어느 아주머니는 세상을 다 만든 하느님이란 분이 나를 사랑하니까 기도만 열심히하면 다 잘 될거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소년은 여전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소녀는 끝내 울먹였습니다.

그리고 소년을 외면하며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신경쓰지마.”

소년은 소녀를 말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소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바람은 좀 더 세게 불었습니다.

흩날리던 눈은 어느 새 함박눈으로 변해 내렸습니다.

불빛에 비친 눈송이들은 세상을 덮으려는 듯 펑펑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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