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홀로 여행을 떠나기 전
2021년 여름, 아니 아직 여름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하던 장사를 접고 겨우 정리를 하던 참이었다.
갑자기 격하게 혼자 있고 싶었다. 하루 이틀이 아닌, 보다 긴 시간동안 혼자가 되고 싶었다.
나란 사람의 민낯을 스스로 좀 들여다보고도 싶었고, 막연히 가보고 싶었던 우리나라의 여러군데를 밟아보고도 싶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났던 초여름의 홀로여행길 이었고 올해는 나의 40대의 마지막해이다.
6년동안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했다. 코로나로 인해 매출이 줄어든 건 내게는 알맞은 명분이었다.
장사를 하는 것이 그리 어렵거나 싫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살아온 나의 경력(?)에 비추어 봤을때
6년동안 매일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주변사람들도 그리 말했고, 나또한 그리 생각했고..
언제 그만둘까를 생각한지도 이미 꽤 오래전 일이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전처럼 무턱대고 다음 단계의 준비가 되지 않은 마당에 하던일을 그만두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튼 여차저차 해서 가게는 깨끗이 정리를 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권리금이나 이런건 바라지도 않았고, 빈 가게에 들어올 다음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넘겨줄때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야 좋다.
소위 '원상복구' 라는 것을 해놓고 집에서 한가롭게 오전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아내가 물었다.
"이제 뭐 할거야?"
나는 그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지만, 이내 청개구리가 된 양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여행이나 좀 다녀오려고."
"..........."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고, 난 그 침묵의 표정을 부러 바라보지는 않았다.
말을 내뱉고 나니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책장에서 오래된 책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이었다.
누가 산건지 기억은 안나도 내가 대학생때에도 이 책이 우리집 책장에 있던 기억이 나는 걸로 봐서는 무척이나 오래된 책이다. 물론 유홍준님이나 이 책의 제목은 밀리언셀러로서 잘 알고 있었으나, 여행을 실제로 가려는 마음을 붙들고 책장을 넘겨본 것은 처음이었다.
어디를 갈까 하는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것이라면 25년전 나온 책보다는 검색창을 통하거나 유튜브를 찾는 것이 훨씬 생생하고 정확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
나는 찾고 있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테마를.
'무엇을 하기 위해' 또는 '무엇을 찾기 위해' 같은 목적론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어떤 여행'을 갈 것인가 라는 막연한 질문에 대한 답을 말이다.
막연하게나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행의 모습은 이러한 것들이었다.
- 순서와 일정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은, 그러니까 언제 어디엘 가야 하고 언제까지는 돌아와야 한다는 식의 정해진 시간과 공간을 따라 다니는 여행은 지양하자.
- 여행을 통해 얻으려는 목적의식을 버리자. 이를테면 여행을 다니며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쉬고 재충전을 하자는 등의 뻔한 이야기라던가 인생여행지로 유명한 핫플레이스나 성지 같은 곳을 방문하여 인증을 한다거나 또는 어디 어디의 유명한 맛집에 가서 이것만은 꼭 먹어보고 온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살면서 막연하게 가보고 싶었던 몇군데는 반드시 들러보자.
그곳들이 어디였는지는 아마도 앞으로 차차 나오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무계획을 계획한 여행' 이라고나 할까.
사실 혼자 떠나는 길이 아니라 아내와 딸, 또는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이런 간 큰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모든 사람은 때가 되면 먹어야 하고 자야하고 또 새로운 것을 구경하고 싶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어쨌건 가방에 몇가지 옷들과 책들, 간단한 취사도구와 노트북, 통기타, 카메라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6월 19일 토요일 새벽에 집을 나섰다.
아내와 딸은 쌔근 쌔근 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