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여럿이 떠난 홀로여행의 첫날
인제에서의 하룻밤과 박수근 미술관
여럿이 떠난 시작
출발은 여럿이서 함께였다.
요즘 취미삼아 함께하고 있는 연극동아리에서 마침 이 날 워크샵(?)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극단은 부부가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운영하고 있는 아마추어 연극 극단인데,
나는 작년 여름 어느날에 인터넷에서 이를 보고 갑자기 '연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덜컥 찾아가서 단원이 되어버렸다.
작년 가을에 얼떨결에 작은 연극 공연도 조연으로 참여를 했었고
올해도 코로나때문에 어려운 상황이지만 8월에 있을 정기공연을 위해서 4인씩 모여서 꾸준히 연습을 해오고 있던 터였다.
극단 단원중 한분이 강원도 인제로 이사를 가셔서 우리들을 초대했고
우리는 워크샵을 핑계삼아 강원도로 함께 이날 떠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내 여행의 첫 스타트를 강원도 인제로 설정하였다. 이들과의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부터는 혼자의 길을 떠나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극단 사람들과 함께 한 하룻밤은 무척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글과는 큰 관련이 없으니 자세한 서술은 생략한다.
(다량의 알콜섭취로 인해 자세한 서술이 불가한 이유도 물론 있다. )
코로나때문에 수도권에서는 여럿이 모이는 술자리는 꿈도 꿀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지 오래였는데
인제는 8인까지 집합이 가능했으므로 그런 염려없이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혹시라도 수도권을 피해서 원정가서 술판을 벌리는 그런 무리들로 오해는 말았으면 한다. 분명 우리는 가서 연극 연습도 하고 워크샵도 하긴 했으니까 ㅎ)
양구 박수근 미술관
다음날 점심을 먹고 단원들과는 작별을 하고 가까운 양구에 있는 박수근 미술관으로 향했다.
최근 고 이건희 회장이 사회에 환원한 어마어마한 미술품 컬렉션들 중 박수근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서 가 본 것이다.
사실 나는 미술에는 큰 조예도 관심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과거의 조건이나 상황은 아무런 제약이 되질 않는다.
시간도 많고 어딜 가던지 내 맘이다. 박수근이 누구인지 잘 몰랐지만 옛날 교과서에 나왔던 그 그림을 진짜로 전시하고 있다니 30분 정도 차를 몰고 가서 볼만하지 않겠는가.
미술관 정원의 조형물. 아기업은 소녀
미술관 정원은 나름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볼거리들이 있는 산책하기에도 좋은 공간이었다.
미술관은 예상보다 규모가 컸다.
넓은 마당과 여러동의 건물, 체험관과 카페테리아, 전시관 등 다양한 시설이 푸른 자연과 깨끗하게 어우러진 곳이었다.
<아기업은 소녀> 박수근작.
원래 전시작품은 사진찍는게 매너가 아니란건 알지만..
별다른 제재가 없길래 그냥 찍어봤다.
눈에 익숙한 이 작품. <아기업은 소녀> 하나만 ^^
미술관을 나서서 다음 목적지로 차를 몰았다.
인제에 이어 강원도의 다음 행선지는 정선이다.
원래 인제에서 출발했다면 속초를 거쳐 강릉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것이 빠른 길이었으나
박수근 미술관은 양구에 있었기에
나는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가는 것 보다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국도를 따라 정선까지 가는 길은
무척 꼬불꼬불했고 험했고
인적또한 거의 없었다.
밝은 낮이었지만 차가 없는 산고갯길을 달리다보니
살짝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몇번 국도였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두시간 이상을 달리다보니 운두령 고개가 나왔고
잠시 고갯마루에서 풍경을 바라보다가
다시 엑셀을 밟았다.
정선 아우라지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7시가 넘은 시각.
잘곳을 미리 예약하지 않고 왔는데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려 하고 있다.
근처 펜션이 하나 보이길래 들어가 물으려 했더니만
코로나때문에 영업을 안한다고 한다.
아직 성수기가 아니라 거의 숙박업소들이 개점휴업상태이고.. 그러니 아예 문을 안연 곳이 많았다.
첫날밤부터 낭패인걸.....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갈무렵 그 펜션 주인 아줌마가 건너편 집을 가리키며
"저집은 열었으니까 가봐요." 하신다.
반가운 마음으로 일러준 곳을 들어갔더니 마침 마당에 나와있던 아주머니가 방을 내어주신다.
방에 짐을 대충 부리고 나니 날은 어둑해졌고
정확히 이곳이 어디인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작은 방 바닥에 몸을 뉘였다.
정선은 내일부터 살펴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