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두려울까?
그렇다면 어쩌다 우리 인간들의 뇌 깊은 곳 무의식 속에 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각인되어 있는 것일까?
많은 심리학자와 뇌 과학자들이 손꼽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생존 본능'이다.
맨 처음 인간이라는 '동물'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우리 인간은 너무 나도 연약했다.
산은 끝없이 높았고, 세상을 뒤덮고 있는 바다는 끝없이 깊었고, 그 안에 있는 동물들의 부리는 거대했으며
발톱과 이빨은 날카로웠고 한 없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들은 생존을 위해 한 가지 감정, 본능을 개발한다. 바로 '두려움'이다. 하지만 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줄 도구가 부족했다. 우리는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상들을 구분 짓기 시작한다. 이것이 '언어'의 시작이다.
언어가 없는 세상은 대상들이 구분 지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독이 든 물고기와 열매를 먹고, 맹수를 보고 도망을 가지 않아 쉽게 죽음에 이르렀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이때부터 인간들은 언어라는 안경을 쓰기 시작한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언어'라는 경계선을 이용하여 저 동물은 위험한 동물, 이 식물은 먹어도 되는 식물, 저 장소는 따뜻한 장소, 저 공간은 들어가면 안 되는 공간 등등 하나하나 구분 짓고 분리하기 시작한다. 분리, 구분, 구별된 세상의 시작이다.
이 '두려움'으로 탄생한 '언어'라는 도구는 꽤 나 효과적이었다. 우리는 이제 우리에게 무엇이 득 인지 실 인지 구분을 쉽게 지을 수 있었고, 우리가 낳은 자식들에게 교육하기도 효과적이었다. 그렇게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번성하게 된다. 이때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 지금은 다른 형태로 드러나고 있을 뿐 결국 그 토대는 모두 같다.
지금은 이 '두려움'의 대상과 이를 표현하는 언어가 달라졌을 뿐 결국 그 본질은 모두 같다. 우리는 왜 달마다 나가는 대출 이자를 두려워할까? 우리는 왜 돈을 벌지 못할까 두려워할까? 우리는 왜 자식이 잘못될까 두려워할까? 이 모든 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생존 본능으로 인한 '두려움'에 귀결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한평생을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아마 일생을 두려움에 떨며 살아간다면 그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원죄'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 두려움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를 묻는다면 이건 질문 자체에 오류가 한가득 하다.
우선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은 '이미 난 두려움을 느낀다'라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뇌는 '지금 이 순간 난 두렵구나'라고 인지하게 되고 두려움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들을 더욱 찾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니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간단하다. 우선 지금 쓰고 있는 '언어' 안경을 벗고 새로운 안경을 써야 한다. 새로운 안경을 쓰는 것, 그것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첫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