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의 첫 만남
'슈뢰딩거의 고양이' 한 번쯤 은 들어봤을 것이다. 관찰자에 따라 결과가 변화한다는 이야기이다.
미립자들이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다 관찰자가 개입되는 순간 그 성질이 변화한다.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이다. 바로 '양자역학'의 세상이다.
우리는 모두 이 '양자역학'의 세상에 몸 담고 있고 생활하고 있다. 모든 물체는 고유의 진동수를 지니고 있고, 이 진동수는 관찰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 앉아 있는 공간 말고 '인간'은 어떨까?
10분 전의 '나'와 10분 후의 '나'는 정말 같은 존재인가? 그럼 10년 전의 '나'와 10년 후의 '나'는 같은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고 있는가? 아마 대다수 '그럼 당연하지 같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 '내가 기억하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 그 '기억'은 실인가? 허인가? 내가 정말로 하는 것이 맞는가? 질문이 너무 길어져 머리가 아파 올 수 있으니 질문은 여기까지 하겠다.
10년 전의 '나'와 10년 후의 '나'는 엄연히 '다른 존재'이다. 그럼 당연히 10분 전의 '나'와 10분 '후'의 나도 다른 존재가 된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매일 죽고 새로 태어난다. 단적인 예시로 머리카락과 수염과 손톱, 발톱은 매일 조금씩 자라나고, 어제 보다 오늘 좀 더 주름이 늘어나고 등 등 우리의 몸은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모두 같은 '나'라고 착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기억'이라는 도구 때문이다. 기억은 눈으로 관찰한 한 장면을 이미지로 변경하여 그 이미지에 '감정'을 더해 마음속 깊이 저장하는 도구이다. 이 도구는 인간에게 꽤나 유용한 도구 중 하나이며 특히 인간 종족의 생존에 있어 더욱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럼 이쯤에서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럼 기억은 모두 틀린 것이라는 건가? 허상이라는 건가? 이게 무슨 소리지?' 우선 질문에 답을 해보자면 이 세상과 우주의 삼라만상에는 그 무엇도 '틀린'건 존재하지 않는다. 또 모든 것은 허상이기도 하고 동시에 실이기도 하다. 맨 처음 이야기한 '양자역학'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가? 기억하고 있다면 여기서 질문을 하겠다. 그럼 이렇게 생생하고 내 마음속에 보이는 이미지는 누가 '관찰'하여 '존재'하도록 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제2의 눈,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