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대한 시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유명한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가 모든 것을 진정으로 학습하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해 보자는 뜻으로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의심하는 나 자신은 이곳에 필히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생각하기에 '나'라는 인간이 존재하게 된다는 심도 있는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정말 생각은 내가 하는 것이 맞을까?
인간들은 하루에도, 1분에도, 아니 찰나의 순간에도 수십 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들은 떠오르는 생각으로 인해 즐거워하기도, 슬퍼하기도, 웃기도,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 떠오르는 생각으로 긍정적인 감정과 반응을 이끌어 내기보다는
불평하고, 분노하고,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부정적인 감정과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 대다수이다.
우리는 살면서 긍정적인 것은 좋은 것이라 교육받고, 부정적인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 교육받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인간들은 좋다고 교육받은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살지 않는 것일까?
생각을 내가 한다면 왜 생각을 조절할 수 없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생각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은 느닷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생각은 느닷없이 떠오르고 우리는 떠오른 생각을 '본다' 바로 또 다른 나 '마음'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는 생각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생각은 우리의 머리 속이나 마음속이 떠오른다. 긍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떠오르거나, 기억으로 인해 떠오르거나.
생각은 분명히 내 안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와 비슷한 목소리의 형태로 들리는 것 같고, 혹은 보이는 것 만 같다.
그렇기에 인간은 내 안에 관찰된 생각을 토대로 행동하고 반응하게 된다.
습관처럼 떠오른 생각대로 반응하지만 감정을 느끼지만, 그 감정을 썩 즐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떠오르는 생각대로 몸을 움직인다. 그동안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자역학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내 안에 들리고 보이는 생각이라는 것도
어떠한 관찰자기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그 누구도 듣는 이가 없다면 들릴 수가 없고, 보는 이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이 글을 적고 있는 내가 아무리 큰 소리로 떠들어도 당신들은 들을 수 없고,
내 책상에 있는 커피는 어떤 브랜드인지 전혀 볼 수가 없고 당신의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떠오른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관찰자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생각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습관처럼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생각이 떠오르면 '내가 이런 생각을 떠올렸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은 생각나는 대로 살지 않고, 생각을 쓰면서 살 수 있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 생각에 매몰되지 않고, 생각을 관찰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머리를 자르고 산으로 들어가 수양해야 하나? 신선들처럼 도를 닦아야 하나?
가장 많이들 착각하는 것이 깨달음은 저기에 있지 않다. 이미 이곳에 있다.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은 간단하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가 떠오르는 생각을 관찰하고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이 전부이다. 아닌 것 같다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떠오른 그 생각. 멈춰라.
따라가지 말고 '어 지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네'하고 한 번만 알아차려 보자.
어떤가? 이젠 내 안에 또 다른 '나'의 시점을 분명하게 느꼈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깨달음 속에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