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대한 시선
나는 일을 할 때나 어떤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오면
'감정'과 나를 분리하여 내게 주어진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한다.
어떠한 일이나 상황에 감정이 더해지게 되면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왜 그렇게 평온하니?'라고 하거나
'넌 로봇이 분명해' 라던지 '너 MBTI 완전 T다 맞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많이들 '어떻게 그렇게 결단력이 좋아? 침착해? 평온해?' 하고
질문을 한다. 그럼 나는 매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하고 대답한다.
어떠한 것이나 상황에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인간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슬픈 영화를 보면 나도 감정이입이 되어 슬퍼 눈물을 흘리게 되고,
재밌는 프로그램을 보면 즐거움을 느껴 크게 웃기도 하고,
누군가 사기를 당해 큰돈을 손해 보게 되었다는 뉴스를 보면 나도 덩달아 분노하게 된다.
나도 인간이기에 감정을 많이 느낀다. 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점.
'알아차림'과 '물러나기'를 한다는 점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마치 물감과 같아 누군가 감정을 강하게 표출하면 그 주위는 같은 색으로 물들게 된다.
누군가 화를 내고 있으면 주위에 있던 인간들은 해당 감정에 동화되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같은 감정의 색으로 칠하게 있다. 이는 주변에서 쉽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단적인 예시로 정치 관련 뉴스가 있다.
어떠한 정당에 대한 뉴스가 올라오면 해당 정당을 싫어하는 이들은 분노하며 댓글을 남긴다.
그럼 해당 정당을 좋아하는 이들은 분노하는 댓글을 보고 분노를 느껴 맞받아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들은 한 손에 들어오는 그 작은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엄청나게 거대한 감정 소비하며
싸우고 있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여기저기 나누며 공유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분노라는 감정에 매몰된
수십, 수백 명의 인간이 생기게 되고, 이 분노라는 감정은 인간을 통해 끝없이 퍼져나가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난 한 번도 이런 적 없어'라고 감히 확답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인간들은 이러한 감정을 끝없이 소비하며 주변으로 퍼트릴까?
우리는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바로 그들은 자신들이 감정에 매몰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곳을 탈출하겠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선 벗어나려고 애쓰면 안 된다. '코끼리를 절대 생각하지 말라'라고 이야기하면 코끼리가 생각나듯이
감정에서 벗어나려 계속 생각하면 그 감정은 생각이라는 먹이를 먹고 더욱 커지게 된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를 하면 된다. 바로 언어를 활용한 '이름' 붙이기이다.
어떠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자 당신은 화가 나기 시작한다.
심박수가 오르고 숨이 점 점 빨라지고 미간이 찡그려지기 시작한다.
이때 당신은 마음속으로 딱 한 문장만 의도해서 나에게 던지면 된다.
'아 지금 느껴지는 이 감정은 분노라는 이름을 가진 감정이구나'
감정을 알아차리고 감정에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감정의 파도 위에서 서핑 보드를 타고 있게 된다.
즉, 감정을 관찰하는 시점으로 한 발 물러나게 된다. 바로 앞서 이야기한 '마음'의 시점으로 말이다.
한발 물러나는 순간 순식간에 심박수가 떨어지고 숨이 차분해지고 평온해지기 시작한다.
흐르는 물을 아무리 손으로 막으려 애써도 물은 계속 흘러가며
이를 억지로 막고 있게 되면 결국 넘치게 된다.
하지만 손을 펼치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우리는 흘러가는 물을 온전히 느끼며 관찰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