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뜬 맹인
나는 돌아다니면서 세상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바깥 날씨가 지금처럼 뜨거워지기 전엔 산책도 자주 가고 드라이브도 자주 나갔다.
눈으로 움직일 때마다 변화하는 공간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숨은 크게 들이마시며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걸을 때마다 발바닥을 통해 바닥의 촉감과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을 집중해서 느끼면
어느새 내가 사라지고 세상과 하나 된 느낌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모든 것과 연결되어 그곳에 온전히 있게 된다.
이렇게 돌아다니며 많은 인간들도 관찰한다.
그렇게 관찰을 하다 보니 한 가지 괴리감을 느꼈다.
그들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고, 영혼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마치 게임 속 NPC 캐릭터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마음공부를 하고, 세상 공부를 하다 보니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뜬 눈으로 잠들어 있었고, 눈 뜬 맹인이었다
그들은 이 순간 이곳에 존재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은 굉장히 혁신적인 물건이다. 현대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사람과 연락을 할 수 있고,
여행을 직접 가지 않아도 그곳에 간 것처럼 느낄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인간은 한 층 더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동시에 갇혀버리게 되었다.
밥을 먹으면서 무언가를 보고,
볼일을 보면서도 무언가를 보고,
지하철을 타서도, 운동을 하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산책을 하면서도
늘 인간들은 작은 화면을 통해 끝없이 어떤 정보를 취득한다.
그래서 화면 너머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고, 영혼이 없어 보인다.
이것은 단순 스마트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들은 이곳에 존재하지 못할까?
간단하다. 마음과 생각과 몸의 존재 상태가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지금 펼쳐지는 세상의 온전함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느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생각과 몸은 감각을 통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쾌락을 원하거나, 즐거움을 추구한다.
단적인 예시를 들어보겠다.
아침에 피곤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나니
어젯밤에 넷플릭스를 보다 늦게 잔 나에게 짜증이 난다.
침대에서 힘들게 나와 화장실로가 씻기 시작하였지만 출근 생각에 또 짜증이 난다.
옆자리에 자리한 김대리가 또 화나게 할 것만 같아서 이다.
출근을 위해 지하철에 타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재미있는 무언가 없나 하고 찾아본다.
출근을 해선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한다.
점심을 먹고 나선 언제 퇴근 시간이 찾아오나 하고 속으로 불평을 한다.
퇴근 시간이 찾아와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탄다.
또다시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고 재미있는 무언가 없나 또 찾아본다.
집으로 들어와 씻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켠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보지 않고 그 소리를 배경 삼아 스마트폰은 꺼내 또 무언가를 찾아본다.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자 스마트폰을 보면서도 내일 출근 생각에 또 짜증 나기 시작한다.
내일 출근을 생각하니 피곤하지만 일찍 잠들기 아까워진다.
그래서 어제 보다 만 넷플릭스 시리즈를 다시 켠다.
하지만 이것을 보면서도 늦어지는 시간을 보니 또다시 짜증이 나고 피곤해진다.
그렇게 잠에 들고 다음 날이 시작된다.
어떤가? 혹시 읽다가 움찔하지 않았는가?
전형적인 '대중'들이다. 아니라고?
당신은 오늘 하루 펼쳐진 세상을 다 기억하는가?
마주친 것들을 정말로 보았는가?
그렇다면 왜 그들은 어딘가 영혼이 없어 보일까?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몸과 생각과 마음 3가지 요소의 불일치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곳에 있지만 이곳에 있지 않고,
눈앞에 있는 것을 보고 있지만 보고 있지 않다.
그래서 마음이 우리의 생각과 몸에 신호를 보내준다.
바로 어딘가 불편한 듯한 그 감각이다.
마음은 이곳에 있고 싶고, 이곳에 있어야 한다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에게 불편이라는 감각으로 신호를 보낸다.
무언가를 할 때 마음이 불편한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멈추지 않고 이곳에 존재하기를 거부한다.
왜? 그동안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의 습관 때문이다.
이 습관은 그동안의 기억을 바탕으로 나오는 행동들이다.
그래서 내가 앞서 마음, 시간, 세상에 대한 관찰자 시점을 제시하고 일러준 것이다.
나는 산책을 나갈 때 스마트폰을 들고나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꺼내는 순간이 종 종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부터 들고나가지 않는다.
그럼 길을 걷는 동안 온전히 세상을 느끼고 관찰할 수 있게 되고
비로소 내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언가 하는데 마음이 불편의 신호를 수신하면
그 즉시 한 발 물러나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문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하는 것을 멈추고 눈을 돌린다.
마음이 보내는 이 '불편'이라는 신호를 잘 알아차리자.
신호를 알아차리기만 해도, 신호를 알아차리는 순간
당신은 잠에서 깨어나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