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예전 내 주변 지인 중에 유난히 부정적이고 불평불만을 많이 하는 이가 있었다.
같이 밥을 먹던, 영화를 보던, 게임을 하던
항상 어딘가 불만족스럽고 불평을 끊임없이 뱉어냈다.
계속 듣다 보니 괜스레 나도 모르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 같은 질문을 한 적 있다.
'아니하면서 그렇게 불평할 거면 이거를 왜 하는 거야?'
그러자 그 지인은 '아니 짜증이 나잖아 짜증이 어? 화가 왜 안나?'라고 대답하였고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딜 가나 불평불만의 기운을 쉴 틈 없이 내뿜는 인간들을 주변에서 흔히들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어딘가 모르게 늘 화나있고, 어딘가 늘 불편하고, 어딘가 늘 불만족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기운들을 주변이나 세상에 아무 거리낌 없이 맘껏 내지른다.
그들이 왜 그런지 물어보면 10명 중 9.7명은 세상을 탓한다.
세상이 화나게 하잖아.
세상이 더럽잖아.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잖아.
세상이 너무 불안정하잖아.
어쩔 수 없어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정말 세상이 그렇기에 그들이 그런 것일까?
그들의 말처럼 세상이 정말 그런 것들로 가득하다면
우리는 모드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하루를 긍정으로 가득 채우고
어떤 이는 기회로 가득 채우고
어떤 이는 돈으로 가득 채우고
어떤 이는 후회로 가득 채운다.
즉, 사람마다 하루와 세상을 채색하는 물감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우리에게 드러난 세상은 나와 분리된 별개의 세상, 다른 무언가가 아니다.
펼쳐진 세상은 눈을 통해 나와 '나'에게 관찰되고
관찰된 세상은 나와 '나'에 의해 해석하고 받아들여
내 안에 펼쳐진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즉 이 세상은 나의 인식과 나의 마음작용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같이 보내더라도
누군가는 긍정의 물감으로 채색하고
누군가는 불만의 물감으로 채색하여 받아들이고
그렇게 그들은 '동상이몽'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이를 알기 전에는 불안 불만이 많고 불평도 많이 했다.
하지만 마음공부를 하며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세상에 대한 반응을 바꾸자 세상이 다르게 펼쳐졌다.
늘 두렵고 무서운 것들로 가득하고 불안으로 가득했던 세상이
매일을 감사하고 감동하고 긍정하자
세상은 감사하고 감동하고 긍정할 일들을 펼쳐주었다.
옛 인연이 찾아와 선물을 주기도 하고
뜻밖의 양보를 받기도 하고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세상에 대한 반응을 바꾼 지금
세상은 나에게 하나의 거대한 놀이터가 되었고,
어디를 가던 늘 영감이 가득하고 긍정이 가득하고 친절하다.
다시금 불평불만의 감정이 올라와도 그저 바라보고 온전히 즐길 뿐이다.
우린 감정과 행동(action)에 변화를 주고
세상을 새롭게 다시 반응해야 한다(re-action)
세상은 그저 펼쳐질 뿐이다. 그저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펼쳐진 세상에 어떤 감정의 물감을 뿌리는가에 따라
인간마다 전혀 다른 색의 세상이 펼쳐진다.
이 글을 읽은 그대의 오늘 세상은 어땠는가?
즐겁고 긍정적이었는가?
아니면
불안하고 불평을 많이 했는가?
불평불만이 많이 느껴진 세상이었는가?
그럼 혹 자신이 먼저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는가?
그럼 혹 자신의 내면에 불평과 불만의 물감을 가지고 가득 칠하지 않았는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자신이 먼저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는지 잘 살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