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벗어나기 - 나 자신의 통일
인간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
내 이야기를 같이 따라온 독자라면 이제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분리와 경계이다.
나와 나 아닌 것들로 세상에 저마다의 경계를 구축하고 분리를 하기에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여전히 어딘가 불편하고 어색하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세상은 여전히 나와 다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물감으로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왜 달라지지 않을까?
아직 몸과 마음과 감정과 세상, 이 모든 것들의 분리와 경계가 허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부터 가장 낮은 단계의 경계부터 높은 단계의 경계까지
한 단계 씩 경계를 허물어 갈 것이다.
글을 읽는 당신들의 정신적 층에 따라 다음 단계로 가는 순간은 천차만별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알고 의식하고 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깨어났다는 감각은 당신의 뇌리에 꽂힐 것이고,
이 깨어남을 한 번이라도 느낀다면 다시금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와도 부드럽게 관찰할 것이다.
그럼 우리가 처음으로 허물어야 할 분리는 무엇일까?
바로 나 자신이다.
이 말을 들은 당신은 의아할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분리되어 있다고?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보통 대다수 인간들은 자신은 완벽하게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인간들은 세상뿐 아니라 자신의 몸의 모든 것을 분리시켜 놓고 있다.
당신은 자신의 몸에 관해 이야기할 때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의식한 적 있는가?
내 몸, 나의 몸, 내 머리, 나의 머리, 내 팔, 나의 팔, 내 다리, 나의 다리, 내 눈, 나의 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과 몸이 하나라고 생각하고 분리되어 있지 않다면
왜 인간들은 자신의 몸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내'와 '나의'와 같은 '소유격'을 이용하는가?
소유격을 사용한다는 것은 소유를 하는 대상자와 소유를 당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분리되어 있다는 전제 조건이 존재하게 된다.
즉,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와'몸'을 분리하여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내 차, 내 집, 내 돈과 같이 대다수 인간들은 '내 몸, 나의 몸'과 같은 소유격을 이용한다.
그리고 내 차, 내 집, 내 돈에 대해 불평불만을 이야기할 때랑 똑같이
내 몸에 대해 불평불만을 이야기한다. 참으로 아둔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대다수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왜냐? 내가 주인이고 몸은 내가 아니라 내가 가진 무언가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몸에 안 좋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긴다.
왜냐? 몸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만 즐기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들은 몸 안에 담배와 술과 같은 자극적인 것들에 적당히가 아닌 중독되어 버리고
운동을 하는 대신 늘어지게 누워 있거나 허리가 망가지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내 것이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와 내 몸의 분리가 일어나고, 불일치가 일어나기에
어느 순간부터 몸은 나의 즐거움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망가지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몸이 망가지는 순간부터 어느새 나 또한 즐기지 못하고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깨닫는다. '아 내 몸과 나는 하나구나'
하지만 이것을 깨닫는 순간이 대다수 늦은 시기이기에 후회를 한다.
'어릴 때 조금 더 해볼 걸, 젊을 때 좀 더 할 걸, 좀 더 소중히 여길 걸'
그렇게 그들의 인생은 후회로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이 후회가 쌓이고 쌓이면 후회를 넘어서 불평불만이 가득 채워지게 되고
그들의 인생은 불평불만으로 가득 채색된다.
그래서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나 뇌 과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이나 동서양의 신비가들이
항상 중요하게 여기는 기본기 중 하나가 운동이고 몸인 것이다.
자신의 몸을 알고 몸이 이미 '나'임을 알고 그 자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시작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도 분리되어 있고 잘 모르면서 어떻게 세상만사를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나 자신의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사실 방법은 모두가 알고 있다.
바로 의도된 호흡을 통한 명상이다.
명상을 하면 호흡을 통해 멈출 수 있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 있는데
그럼 질문을 하나 해보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호흡을 의도해서 해본 적 있는가? 아마 대다수 그런 적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호흡을 의도해서 하는 것이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가?
우선 호흡을 의도해서 하게 되면
들어오는 공기의 흐름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이 흐름을 바라보는 순간 생각이 멈춘다.
인간은 의도된 호흡과 생각을 같이 할 수 없다.
즉, 의도된 호흡을 하는 순간
그곳에 고요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들어오는 공기를 온전히 느껴보라.
코를 통해 들어와 기도를 통해 폐로 전달되고
그 폐로 전달된 공기와 에너지는
몸안 구석구석 전달된다.
명상을 해본 적 없는 단계에선
이를 바로 느끼긴 어렵다.
그래서 처음 해보는 이라면
자신의 폐 안에 가득 들어오고 나오는 숨을
온전히 느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과정이 익숙해졌다면 한 가지 깨달을 것이다.
어딘가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어디선가 올라오는 전율의 느낌.
이 느낌은 다음 단계로 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호흡을 의도하며 마시고 뱉을 때
그 숨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한 발 물러나
바라보기 시작하라.
그리고 그 숨을 관찰하는 '내'가 그 숨을 타고
몸의 구석구석 전달하는 상상을 머릿속으로 그리면 된다.
호흡을 하며 발 끝부터 타고 올라가기 시작하여
척추를 타고 올라와 팔과 손 구석구석
숨을 전달하고 다시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전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처음에는 집중이 중간중간 많이 깨질 것이고
흐름이 멈출 것이다.
전혀 개의치 않아도 된다.
멈춘 그 지점부터 다시 진행하면 된다.
그리고 반복하여 걸리는 구간이 있다면
그곳은 어딘가 불편하거나 아픈 부분이거나
자신과 분리가 가장 강하게 된 부분 일 것이다.
그렇게 우린 또 '알아차림'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호흡을 의도하고 주시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관찰하면 어느새 나는 그곳에 있게 된다.
길게 할 필요도 없다.
하루에 5분에서 10분이면 차고 넘친다.
내가 제시한 것은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
정답은 아니다. 저마다에게 잘 들어맞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매일 반복하다 보면
한 가지 깨달음이 찾아올 것이다.
호흡은 내 안에서 저절로 일어나고 있다 는 것을
그리고 이 저절로 일어나는 호흡을 바로
관찰자 시점의 내가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지금 따로 시간을 내어 명상하지 않는다.
신호를 기다리거나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필요를 느끼는 모든 순간에 의도된 호흡을 하고
모든 순간에 관찰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순간이 깨달음의 순간이고
깨달음은 저곳에 있지 않고 이곳에 있으며
우리는 항상 깨달음 속에 살게 되고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