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니아와 양파아저씨

레스토랑 '크라이세' , 셰프 '니아'

by SONEA

'하.... 시발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이러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닌데'

탁탁탁탁탁탁탁

이른 아침,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레스토랑 '크라이 세'의 주방 한편에서 도마와 칼이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띠리리리링

지난달에 큰 맘먹고 구매한 오른쪽 손목에 차고 있는 갤럭시 워치에서 알림 소리가 들린다. 이내 확인해 보니 레스토랑이 속한 리조트의 대표인 '임주상'이다.

'아 또 왜 아침부터 전화야, 또 뭔 이상한 개소리 하려고' 칼질 소리의 주인공인 셰프 '니아'는 발바닥부터 화가 끓어올랐다. 전 날 레스토랑이 평소보다 바빴던 터라 재료 준비할 양이 평소보다 많았기에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니아는 전화를 받아야 한다. 전화를 무시하더라도 임주상대표는 중요한 일이 아니더라도(본인한테는 중요한 일이겠지만) 전화를 받을 때까지 걸고 그럼에도 받지 않으면 직접 찾아오기 때문이다.

전화받기는 싫었지만 얼굴을 보는 건 더 싫었기에 올라오는 화를 잠시 꺼트리고 전화를 집어든다.

'네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 목소리에 불만이 묻어 나올까 평소보다 한껏 높여 대답한다.

'어 어 어 바쁘냐?' 임주상 대표는 늘 바쁘냐라는 말로 전화를 시작한다. 지금 바쁜 건 딱히 중요하지 않다. 바쁘냐?라고 묻는 문장에는 '바빠도 지금 내 부탁부터 좀 처리해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니아는 지난 5개월의 시간 동안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아 괜찮아요, 무슨 일이세요?' 어차피 바쁘다고 해봤자 결국 달라지는 건 없음을 알기에 애써 괜찮다고 대답을 한다.

'어 어 그럼 그 저기 뭐냐 우리 딸이 왔는데 아 이거 참 내가 갈 수가 없는데 스 어쩌지?'

그녀는 직감했다.

'아 이거 나보고 가라는 거네... 하... 시발 진짜'

임주상 대표 특유의 말 더듬기가 더해지니 니아는 괜히 더 짜증이 났다.

'하.. 지금 바쁜데 진짜..' 올라오는 화를 참고 니아는 임주상 대표가 원하는 대답을 해준다.

'아 그럼 제가 한번 가볼까요?'

그러자 임주상 대표는 마치 어린아이가 마트에서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넣은 듯 기뻐하며 대답했다.

'그 그 그럴래? 아유 씁 나 난 고맙지 그 뭐야 그 이거 내 차키 가져가라 어어 지금 바로 가면 될 거 같은데? 어어 지금 와라'

짧은 명령과 함께 니아가 대답도 채 하기 전에 전화는 끊겼다.

하던 일을 잠시 정리해 두고 토마토소스가 군데군데 튀고 하얀 밀가루가 조금 묻어있는 앞치마를 벗어둔 채 니아는 신발을 질질 끌며 1층으로 내려간다. 3층짜리 하얀 외벽을 지닌 건물의 2층에 레스토랑 '크라이세'가 자리 잡고 있고

1층은 카운터 겸 작은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1층을 통해 삐걱 거리는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오면 '크라이 세'가 자리 잡고 있다.

삐걱 거리는 계단을 내려가 1층 카페로 가니 임주상 대표가 의자인지 침대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기대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도대체 왜 갈 수 없다는 거지? 그냥 귀찮은 거 아냐?' 니아는 속으로 의문이 떠올랐지만 몇 번 있었던 일이라 구태어 묻지 않고 다가가 임주상 대표에게 차키를 받았다.

밖으로 나가니 이른 아침인데도 불과하고 제법 뜨거운 햇빛이 니아의 맑은 눈을 가볍게 때렸다.

자갈밭 위를 잠시 걸어가 임주상 대표의 차인 검정 벤츠 세단이 보인다. '오늘은 벤츠 타고 왔네'

임주상 대표가 이곳을 방문할 때 지니고 있는 차량이 여러 대인지 그날그날 바꿔가며 탔는데 제일 많이 타는 게 검정 벤츠 세단이고 다음으로 많이 타는 건 쥐색 국산 SUV였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거니 운전자 시트가 작은 니아의 몸에 맞게 세팅된다. '비싼 게 좋긴 좋아' 니아는 생각했다. 자동차 앞 유리를 통해 아침 햇살이 하얀 벽에 반사되어 글리터처럼 반짝이는 레스토랑 '크라이세'의 외관이 눈에 들어온다.

외관을 무심히 보던 니아는 생각에 빠진다.'나도 분명 저렇게 반짝였는데, 지금의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 보니 문득 이 일을 시작하기 전의 삶이 떠오른다.




명량한 새소리가 나지막이 울리는 산속에 위치한 어느 한 대학교 강의실에는 다른 강의실처럼 수업을 듣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유명한 대학교는 아니지만 나름 지역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대학이라 재학생이 꽤 많은

편이었다. 니아도 이들 중 한 명이다. 어릴 적부터 상상하며 그리고 만드는 걸 좋아하던

니아는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시절 미술에 빠져들었고, 지금은 옷에 빠져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165cm 정도의 적당한 키에 어깨 아래에 걸치게 내려오는 찰랑이는 생 머리카락, 적당히 흰 피부에

적당히 크고 맑은 갈색 눈, 연한 핑크빛이 도는 입술과 작지만 오뚝한 코의 조화로 엄청 이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못나지 않은 적당한 외모,

엄청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적당한 몸맵시의 니아는 지금까지 삶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적당히 남들처럼 평범하게 보냈다. 남들만큼 연애도 해보고, 남들만큼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여행도 가고 했지만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론 적당한 모든 것이 질린 나머지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하고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다.

찢어진 청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고 중고로 저렴하게 구매한 12인치 회색 노트북을 펼치고

여전히 가르마를 끝없이 만지며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다.

3시가 넘어가 오후 햇빛이 강의실 바닥에 내려앉을 즈음,

강의실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니아는 더 이상 수업 내용을 듣지 않고 있었다.
교수의 목소리는 소음처럼 흘러가고, 노트북 화면에는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았다.

‘이게 내가 원한 건가?’

질문은 처음이 아니었다. 다만 요즘들 점점 더 자주, 더 크게 떠올랐다.

강의실을 나와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과외 선생님 구함’

별 의미 없이 지나쳤다가, 문득 생각했다.

무난한 인생에서 잠깐만 옆으로 새면, 뭐가 보일까?

그날 니아는 검색창에 ‘알바’를 입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시작이었다.




'띠리리리리리리링'

니아의 핸드폰에서 전화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며

기억에 잠겨있던 니아는 다시 검정 벤츠 운전석으로 떠오른다. 핸드폰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니아는 혀를 쯧 차며 생각한다.

'하 그때 내가 그 알바만 시작 안 했으면 이 팀장의 전화도 받을 일도 없었겠지'

애써 불만을 숨긴 채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네~! 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어 니아야 지금 어디야?'

'저 지금 대표님이 시키신 일이 있어서 잠깐 차 타고 나갈 준비 중입니다!'

'아 그래? 음 딸내미 데리러 가는구나? 매번 네가 고생이 많다'

'하하 네 무슨 일이세요?'

'음 아냐 내가 이따가 다시 연락할게' 뚝.

임룡태 팀장과의 통화는 늘 이런 식으로 마무리된다.

'허 고생은 무슨, 지가 더 나한테 고생시키는 건 모르나 보네? 뭐 같네 진짜'

니아는 속으로 불평을 하며 차를 운전해 대표님의 딸이 기다리고 있는 버스 정거장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내가 지들 시다바리인 줄 아나,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하.. 할 거 많은데 진짜.. 난 셰프인데..'

니아는 한적한 도로 위를 거칠게 운전하며 생각한다.

레스토랑 '크라이세'는 대단지 펜션 단지 내부에 작년 12월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겨울

새롭게 오픈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피자, 파스타, 리조토, 스테이크, 와인 등 여느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파는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본연의 스타일로 약간 변형하여 판매하고 있는데 반응이 꽤 좋다.

화이트 앤 우드 톤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는 니은 자 형태의 레스토랑의 8인 테이블 1개 6인 테이블 2개 4인 테이블 4개 2인 테이블 4개가 있어 총 44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레스토랑의 정중앙에는 거대한 선인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제일 안 쪽 흰 벽에는 '로마의 휴일'이라는 흑백 영화가 상영되고 있으며 오른쪽으론 작은 화분들이 자리 잡고 왼쪽으론 오픈형 주방이 들어가 있어 손님들이 밥을 먹으면서도 내부를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흰 벽을 제외하곤 3미터짜리 거대한 유리로 되어있어 시원한 바깥 풍경이 그대로 보이며 바닷가가 보이는 면에는 슬라이딩 도어가 설치되어 날이 좋을 땐 시원하게 오픈하여 운영하기도 한다.

오픈한 슬라이딩 도어로 들어오는 비릿한 바다 냄새와 회색 대리석 바닥에 밝은 톤의 원목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갈색 라탄 조명은 마치 동남아 지역에 여행 와서 밥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타 지역의 동네 작은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던 니아는 작년 11월 이곳 펜션 단지의 팀장인 임룡태 팀장과 임현미 과장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

이곳 펜션 단지의 대표인 임주상 대표가 니아가 일하던 레스토랑의 사장님에게 컨설팅을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경험이 있고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임주상 대표는 팀장과 과장에게 지시해

니아를 이곳 크라이세의 메인 셰프로 데려오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호의적이고 따뜻하고 니아에겐 일종의 희망 찬 공간이었지만 최근 들어선 그 의미가 변색되어

지금 니아에게는 하루하루고 불평과 불만과 고통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었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다시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빠지며 순간 화가 울컥거리자

니아는 대표의 기름이라도 낭비시키겠다는 심보로 운전하는 차의 엑셀을 끝까지 밟으며

괜히 차에게 분풀이를 한다. 거세게 달리며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마셔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자 니아는 소리를 지르며 운전하게 시작한다.

'시발 시발 시이이이발 진짜 싫다 이것들!! 아아아악!!!!'

니아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차의 엔진 소리도 더더욱 거세진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