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세상에 감사하는 존재
여기 한 존재가 있다.
자신의 앞에 어떤 상황이 펼쳐지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느끼며
올라오는 감정들을
그저 바라보며 경험하고
이 경험을 선사해 준 우주와 세상에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 존재는 바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참 자아'이다.
에고가 통제를 멈추는 순간
그 자리에 공백이 생긴다.
대다수의 인간은 이 공백을 두려워한다.
붙잡고 있던 분노와 불만, 비교와 판단,
옳고 그름이라는 칼을 내려놓는 순간
'그럼 나는 무엇이 되는가'
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자들과 신비가들이 말해온 것은
바로 그 공백 속에
인간의 참 자아가 조용히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 참 자아는 무엇인가를 원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우주가 자신에게 펼쳐 보이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관찰하고
받아들이며 즐긴다.
이 참 자아는
비 오는 날에 비를 거부하지 않는다.
맑은 날에 맑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추운 날에는 추위를 느끼고
더운 날에는 더움을 느낀다.
느끼되 판단하지 않는다.
경험하되 해석하지 않는다.
대중이 말하는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은
이 참 자아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돈이 있으면 돈이 있는 삶을 살고
없으면 없는 삶을 산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경험하고
떠나면 떠나는 과정을 지켜본다.
여기에는 저항이 없다.
그래서 고통도 없다.
고통은 언제나
‘이래서는 안 된다’라는
주관으로 판단하는 생각에서 태어난다.
‘지금 이 모습이 틀렸다’라는
에고의 판단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참 자아는 안다.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이
우주가 허락한 유일한 장면이라는 것을.
참 자아의 눈으로 보면
삶은 시험도 아니고 훈련도 아니며
극복해야 할 과제도 아니다.
그저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하나의 파도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욕망의 배를 타고 이 파도를
억지로 바다의 방향으로 몰아가려 한다.
그래서 지친며 불만이 많다.
그러나 파도는 바다를 통제하지 않는다.
그저 바다 위에서
자신의 형태를 잠시 드러낼 뿐이다.
참 자아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 나은 인간이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깨달은 척하는 태도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세상을 평가하지 않겠다는 선택,
우주를 해석하지 않겠다는 선택,
자기 자신마저 고정된 이미지로
붙잡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그래서 참 자아는
항상 가볍다.
가벼운 존재는
흐름을 즐길 수 있다.
흐름을 즐기는 존재는
자연스럽게 감사하게 된다.
감사는
무언가를 얻었을 때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저항이 사라졌을 때
자연히 남는 상태다.
우주와 세상에 감사하는 존재란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장면을
있는 그대로 허락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허락의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에고가 아니다.
우주를 통제하려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를 경험하는 존재가 된다.
당신은 우주를 통제하려 할 건가?
아님 무한한 우주의 영광을
경험하는 존재가 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