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자아의 본질
참 자아로 산다는 말을 들으면
대중은 곧잘 오해한다.
현실을 외면하는 삶,
고통을 부정하는 태도,
삶이 무섭고 혹은
이를 깨닫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내려놓는 포기나 갈고닦음.
그러나 이것은
참 자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참 자아는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을 가장 정직하게 마주하는 존재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유전자에 각인된
일종의 생존 본능이기 때문이다.
몸이 위험을 감지하면
심장은 빨라지고 호흡은 얕아지며
마음은 움츠러든다.
이 반응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두려움을 느끼는 데 있지 않다.
두려움을 피하려 드는 데 있다.
에고는 두려움을 적으로 만든다.
없애야 할 감정,
극복해야 할 대상,
나약함의 증거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망친다.
그래서 통제하려 든다.
그래서 더 큰 공포를 만들어낸다.
반면 참 자아는 다르다.
두려움이 올라오는 순간
그것을 밀어내지 않는다.
분석하지도 않고
미화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 지금 두려움이 있구나”
라고 알아차릴 뿐이다.
이 알아차림의 순간,
두려움은 더 이상 주인이 아니다.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를 바꾼다.
저명한 신비가 들은
이 상태를 이렇게 표현해 왔다.
두려움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먹구름일 뿐이며
하늘 그 자체는
결코 흐려지지 않는다고.
참 자아는 구름이 아니다.
구름을 바라보는 하늘이다.
그래서 두려움이 와도
삶을 멈추지 않고 피하지도 않는다.
대신 두려움을 안은 채 걸어간다.
이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두려움을 피하는 인간은
자신의 삶을 점점 좁힌다.
안전한 것만 남기고
예측 가능한 것만 선택한다 착각하여
종국에는 아무것도 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인간은
삶 전체를 살아낸다.
기쁨이 오면 기쁨을
슬픔이 오면 슬픔을
두려움이 오면 두려움을
우주가 펼쳐 보이는 장면으로 받아들인다.
참 자아는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는다.
이 받아들임 안에는 감사의 씨앗이 숨어 있다.
감사는
좋은 일에만 반응하는 감정이 아니다.
모든 경험을
삶으로 인정했을 때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상태다.
참 자아로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삶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느끼되
그 어떤 감정에도
자기 자신을 빼앗기지 않는 삶이다.
그래서 참 자아는 조용히 말한다.
이 두려움마저도
우주가 나에게 허락한 경험이라고.
그리고 그 인정의 순간,
두려움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두려움에 지배되지 않는다.
인간은 그때 비로소
도망치는 존재에서
경험하는 존재로 이동한다.
삶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앞날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 불확실성마저 껴안고
한 걸음 내딛는 존재.
그가 바로
참 자아로 살아가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