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아이들

선택과 흐름

by SONEA

인생에서 흐른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묻는다.

“그럼 아무 결정도 안 하고

그냥 떠내려가라는 말인가요?”

이 질문 속에는 두려움이 내포되어있다.

책임을 지지 않는 삶이 될까

현실에서 도망치는 사람이 될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내면 깊은 곳으로 조금만 내려가 보면

삶에 있어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현실적인 태도인지

곧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이다.

회사에서 오랜 시간 버텨온 자리가 있다.

이미 지쳐 있고 몸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침마다 이유 없는 무거움이 쌓이고

퇴근 후에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에고는 말한다.

“조금만 더 버텨라.”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두면 실패다.”

“남들은 다 참는다.”

그래서 버티는 쪽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겉보기에는 책임감 있어 보이지만

실은 주변 평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반응이다.

반면 흐르는 자는 다르게 반응한다.

갑자기 사표를 던지지도 않고

충동적인 결단을 하지도 않는다.

그는 지금의 상태를

한 발 물러나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이 일이 내 생명력을 키우는지, 잠식하는지

이곳에 머무를 때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흐름이 분명해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미루는 것이 아니다.

도망치는 것도 아니다.

가장 깊은 차원의 책임이자 메타 인지이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와 함께 있어도

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고

사랑받기 위해

본모습을 접어야 한다면 에고는 말한다.

“이 정도는 다 참는다.”

“헤어지면 더 나쁠 수도 있다.”

“혼자가 되는 게 무섭다.”

그래서 붙잡는 쪽을 선택한다.

하지만 흐르는 자는 이 관계가 자신을

확장시키는지 축소시키는지

한 발 물러나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결론이 아니라

이동이 일어난다.

이별이든, 재정의 든

침묵이든, 그 어떤 형태든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깊은 내면에서 보면

선택과 흐름의 차이는

행동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어디에서 움직이느냐의 문제다.

두려움에서 움직이면 그것은 선택이고

알아차림에서 움직이면 그것은 흐름이다.

흐르는 자는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확실성 안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깊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게 된다.

이때부터 삶은 버텨야 할 대상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경험이 된다.

심연에 들어간 사람은 안다.

삶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정직한 응답을 기다릴 뿐이라는 것을.

흐르는 자는 그 응답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과 몸과 침묵으로 건넨다.

그래서 그의 삶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안쪽에서는 늘 움직이고 있다.

조용히, 그러나 거짓 없이.

삶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삶이 펼쳐 보이는 대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택하는 삶과

흐르는 삶의 차이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