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아이들

인간은 왜 돈을 좋아하는가?

by SONEA

돈은 우리가 들여다볼 심연 중

가장 현실적인 심연이다.

돈 앞에서
대부분의 영성은 침묵한다.

의식, 참 자아, 흐름을 말하던 사람도
통장 잔고 앞에서는
갑자기 불안해지고
생존의 언어로 돌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흐름을 신뢰하며 살아도
돈은 필요한 거 아닌가요?”

맞다.
돈은 필요하다.

참 자아로 살아도
월세는 나오고
밥은 먹어야 하며
몸은 보호받아야 한다.

문제는
돈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돈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다.

에고에게 돈은
존재 증명의 도구다.

얼마를 버는지
무엇을 소유했는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돈은 곧
자기 가치의 숫자가 된다.

그래서 에고는
돈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고
더 벌지 못하면
자기 자신이 줄어든다고 느낀다.

이 상태에서의 돈은
항상 부족하다.
아무리 있어도
안심이 오지 않는다.

반면
참 자아에게 돈은
흐름의 한 형태다.

들어오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에너지의 이동이다.

그래서 돈이 들어올 때
흥분하지 않고
나갈 때
존재를 잃지 않는다.




흐름 속에서 돈을 다루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조급함의 감소다.

무리한 선택을 하지 않게 된다.
자기 몸과 시간을
갈아 넣는 결정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배신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점에서
돈의 흐름은
오히려 안정되기 시작한다.




돈은 하나의 인격체와 같아
긴장한 사람보다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더 오래 머문다.

흐름을 신뢰하는 인간은
돈을 좇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살아 있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방향이
일이 되고
가치가 되고
교환 가능해질 때
돈은 뒤따라온다.

이건
신비한 법칙이 아니라
현실적인 구조다.

사람들은
에너지가 살아 있는 곳에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억지로 만든 결과보다
정직한 흐름에서 나온 산출물이
더 오래간다.




물론
흐름을 따른다고 해서
항상 풍족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기에는
돈이 줄어들기도 하고
불안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의 불안은
존재를 위협하지 않는다.

“나는 괜찮다”는 감각이
돈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이 달라진다.

겁에 질린 선택이 아니라
조율된 선택을 한다.

줄일 것은 줄이고
멈출 것은 멈추고
다시 흐름을 읽는다.

이 과정에서
삶은 망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렬된다.




참 자아로 살아간다는 것은
부자가 되겠다는 선언도 아니고
가난을 미화하는 태도도 아니다.

돈을
신도, 악마도 아닌
현상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 위치로 돌아온 돈은
당신을 지배하지도
당신을 규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당신의 삶을 통과하는
수단이 된다.

가장 깊은 아이러니는 이것이다.

돈을 붙잡고 살수록
돈은 흘러가지 않고
돈을 흐름에 놓을수록
돈은 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때
인간은 비로소 안다.

풍요란
얼마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덜 두려워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