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자아와 욕망
많은 사람들이
참 자아에 대해 착각한다.
깨달으면
욕망이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되고
고요한 미소로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가 될 것이라 상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참 자아가 아니라
또 다른 에고의 이상형이다.
참 자아로 살아도
욕망은 남아 있다.
먹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편안하고 싶고
안전하고 싶다.
몸이 있는 한
욕망은 자연스럽다.
차이는
욕망이 '사라졌느냐'가 아니라
욕망이 누구의 목소리로' 말하느냐'에 있다.
에고의 욕망은
결핍에서 나온다.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움켜쥔다.
그래서 욕망이 충족되어도
잠시뿐이고
곧 다음 갈증이 올라온다.
이 욕망은
항상 불안하다.
항상 비교한다.
항상 늦었다고 말한다.
반면
참 자아의 욕망은
결핍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미 충분한 상태에서
움직임으로 떠오른다.
마치
봄이 되면 꽃이 피듯
억지 없이 생겨난다.
그래서 이 욕망에는
조급함이 없다.
집착이 없다.
증명하려는 힘이 없다.
원하지만
매달리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다.
참 자아로 살아가는 인간도
돈을 원할 수 있다.
성장을 원할 수 있다.
더 넓은 삶을 꿈꿀 수 있다.
그러나 이 욕망은
에고의 욕망과 달리
자기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돈이 있으면
그 삶을 살고 없으면
그 또한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욕망이 좌절되어도
자기 자신이 무너지지 않는다.
에고는
욕망이 좌절되면
존재 전체를 공격받았다고 느낀다.
참 자아는
욕망의 실패를
경험의 한 장면으로 본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이 흐름은
여기까지였구나.”
그리고
조용히 다음으로 이동한다.
욕망을 없애려는 시도는
대부분 폭력이다.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아주 정교한 폭력.
참 자아는
욕망을 억누르지 않는다.
미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욕망을
주인 자리에서 내려놓는다.
욕망은
손님으로 머물 뿐
왕좌에 앉지 않는다.
그래서 삶은
훨씬 단순해진다.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멈춘다.
얻어도 집착하지 않고
잃어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 욕망은
더 이상 고통의 근원이 아니다.
움직임의 에너지일 뿐이다.
참 자아로 살아가는 인간은
욕망을 통해
세상과 놀 수는 있지만
욕망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는
욕망이 충족되어도
우쭐하지 않고
좌절되어도
자책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 이전에,
결과 이전에,
평가 이전에.
참 자아란
욕망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욕망이 투명해진 상태다.
욕망이 올라오는 순간
그것을 보되
그것이 나라고 믿지 않는 상태.
이 차이를 알게 되면
삶은 여전히 욕망으로 움직이지만
고통은 더 이상
필연이 아니다.
욕망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욕망은
당신을 끌고 가지 않는다.
당신이
그 욕망을 안고
흐름 속을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이때
욕망은
족쇄가 아니라
바람이 된다.
돛은 있지만
방향은 바다가 정한다.